세계 1~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라인과 스위스 MSC가 결성한 2M얼라이언스가 슬로스티밍(감속운항) 카드를 꺼내들었다. 2M은 최근 몇 개월 동안 아시아-구주항로의 스케줄 정시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선박을 추가 투입하는 대신 운항속도와 기항지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특히 2M은 정시성 악화를 두고 항만에 원인을 돌렸다. 선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선박 몸집 불리기에 나섰지만, 전 세계 주요 항만들이 하역시설 현대화를 늦추면서 신형 선대인 2만TEU급 선박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항만 터미널업계는 최근 급등한 유류비로 수익성이 악화된 2M이 애먼 터미널을 문제삼고 있다고 반발했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즈리스트에 따르면 2M의 아시아-구주 서비스 정시성은 최근 몇 개월 동안 크게 악화됐다. 선사 측은 구주항로에 투입되는 초대형선박들의 하역작업이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기상악화와 항만노조의 태업, 사이버테러에 따른 자동화시설의 작업 중단 등이 정시성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몰린 것과 대비된다.
머스크라인 앤더스 보내스 네트워크관리부문 최고책임자는 “현재 화주들에게 제공되는 정시성은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고 반성하면서 “대형 항만 한 곳에서 선박 입항이 늦어지면, 접안을 기다리는 다른 선박들이 줄줄이 지연되는 도미노 사태를 빚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터미널들은 선박들이 대형화되는 만큼 하역생산성을 개선하지 않았다. 결국 부두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며 “해상에선 초대형선박이 상당히 효율적이지만, 터미널 측면에선 기대만큼의 경제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MSC 디에고 아폰테 CEO(최고경영자)도 과거 “선박이 예정일자에 도착하는 게 중요하다. 대부분 입항일정을 지키지 못해 화주들의 불만이 상당하다”고 말한 바 있다.
2M, 기항지 18곳 줄이고 감속운항 나서
2M은 아시아-구주노선의 정시성 악화에 따른 대책으로, 기항지 일부를 없애고 감속운항에 나서는 대신 선박 한 척의 추가투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노선에 마련된 6개 서비스에서 기항지는 18곳을 없앴다. 기존 기항지는 모두 들르지만 일부 노선에서 중복되거나 비주력인 기항지는 거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구주항로에 실리는 화물들이 대체로 유럽향 수출화물보다 중간 기항지에서 하역되는 환적화물이기 때문이다.
앤더스 최고책임자는 “유럽행 6개 노선 중 상하이-로테르담 항로가 4개다. 만약 이 항로의 4번째 서비스에서 화주들의 화물이 2%대밖에 실리지 않는다면 굳이 운항에 나설 필요가 없고 제거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에도 정시성 회복을 위해 아시아-구주항로의 네트워크를 합리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평균 운항속도는 18노트에서 1노트를 줄인다. 이에 대해 항만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급등한 유류비를 절감하기 위한 선사들의 자구책일 것으로 해석했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머스크의 결정은 최근 급등한 유류비를 절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유류소모량은 속도의 세제곱에 비례하다보니 입출항이 지연되면 다음 기항지까지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속도를 늘릴 수밖에 없다”며 “노트를 줄이는 대신 추가 선박을 투입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스케줄 정시성도 개선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간기항지 부산신항, 초대형선 수용 문제없다
국내 최대 항만 부산신항에서는 선박 대형화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주항로는 부산항이 최종 출항지가 아닌 중간 기항지라는 지형적 특성을 안고 있어 하역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분석이다. 선박이 대형화되면 자연스레 컨테이너 적재 높이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하역작업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선박 가득 화물을 선적하거나 하역하는 곳은 중국 상하이항이나 칭다오항 등에 국한돼 부산신항은 높이문제와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10년 전후로 본격 개장에 나선 부산신항과 달리 해외 구항은 하역인프라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초대형선박의 접안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가하면 세계 해운업계가 초대형선박과 소형선박을 적절히 배합하지 않고, 초대형선박으로만 많은 항구를 기항하면서 정시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의견도 나왔다. 한 터미널업계 관계자는 “선사들이 선박을 대형화하는 목적은 기항지를 줄이고, 소형선박이 중소항만으로 환적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세계 주요 선사들은 기존 취지와 달리 중소항만에도 초대형선박을 투입하고 있어 입항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박이 대형화되는 만큼 터미널들이 하역생산성을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머스크의 주장에 터미널업계는 선박이 대형화된만큼 물동량도 비례하게 늘어나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 터미널업계 관계자는 “2만TEU급 선박이 접안하면 앞뒤 줄잡이까지 합쳐서 430~450m의 안벽공간이 필요하다. 부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셈인데 척당 물동량은 1만TEU급 미만일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물량만 많다면 하역작업이 훨씬 빨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선박이 대형화됐지만 공간만 차지할 뿐 실속은 크지 않다는 게 터미널업계의 시각이다. 초대형선박에 LOA 서차지(길이할증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길이할증료는 초대형선박에 한해 계약한 물량을 하역하지 않으면 청구하는 부가비용이다.
한편 2M은 아시아-구주항로에서 정시성이 개선되면 대서양항로와 환태평양항로에서도 운항속도 줄이기에 나설 예정이다. 목적지까지 도착이 늦어져도 정확한 일정을 화주에게 보장한다는 게 2M의 입장이다. 앤더스 최고책임자는 “화주들이 신뢰할 수 없는 기항일정을 기대하기보다 기존보다 2~3일이 늦어져도 보장된 일정에 도착하는 걸 선호할 것으로 본다”며 개편안에 대한 입장을 전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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