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8 16:00

더 세월(70·마지막회)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62. 뭉쳐라


미수습자 다섯 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선체조사는 끝났지만 미수습자 수색은 계속됐다. 기관실에서 뼈 조각이 발견돼 모두들 흥분하는 순간이 있었다. 정밀수색이 성과를 올린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유전자 검사 결과 이미 수습된 희생자의 팔다리뼈로 확인됐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수색팀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으려고 세월호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다섯 명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2018년 9월 2일 대법원은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에게 실형 4년과 추징금 19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디자인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관계사로부터 24억 원을 부당 지원받은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그동안 검찰의 출석 통보를 받고도 불응하다가 프랑스 경찰에 체포된 장녀는 송환 결정을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버티다 1년 3개월 전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국내로 강제송환됐다.

서정민은 이 소식을 들으면서 국민의 4분의 1이 전과자인 대한민국에서 그녀가 전과자가 된다고 해서 그녀의 신상에 큰 변화가 생길 일은 없겠지만 4년 동안 해외서 버텨온 노력이 아까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장녀의 재판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은 아직 찾지 못한 차남에게로 옮아갔다. 사람들은 차남이 멕시코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9월 3일 진도 팽목항 분향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 4년 5개월 만이다. 분향소 자리엔 당초 계획됐던 여객터미널이 들어선다. 팽목항 내 ‘기다림의 등대’와 추모 조형물은 계속 보존되는 것으로 결정됐고 분향소 내 희생자 사진·유품과 추모 상징물들은 안산시 고잔동 ‘4.16기억저장소’로 옮겨졌다.

기무사가 세월호 유가족을 개별 조사하고, 해수부가 특조위 동향을 ‘청와대 단톡방’을 통해 직접 보고했다는 정황이 나오자 유가족은 다시 들썩였다. 당황스럽게도 416가족협의회는 참사 전체를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주제를 놓고 서정민의 의문도 계속됐다. 첫째 왜 침몰했는가? 둘째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전개된 상황이 너무 상식 밖이어서 선원도, 해경도, 청와대도, 심지어는 전문가도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신(神)도 해답을 비켜 가는 것 같았다.

서정민이 항해사 출신의 경험과 지식, 직관에 의해 침몰 원인을 내인설이라고 말하고, 구조를 고의적으로 회피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해도, 국민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 모든 의구심을 명쾌히 풀어주고 국민을 하나로 화합시킬 결론이 나오길 기대할 뿐이었다.

최근 이순정의 몸이 이상한 조짐을 보였다.

“배를 한번 만져 보세요.”

“배가 아픈 건 아니지?”

“생명이 움직이고 있는 거 안 느껴져요?” 

둔감한 서정민의 대답에 실망한 듯 이순정이 샐쭉거렸다.

“뭐? 아기가 생겼단 말이야?”

그는 예상치 못한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가란 예비 시어머니의 호출에 서정민의 집에 들른 이순정은 새생명의 잉태 소식을 이야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늘 오전에 병원에 갔다 왔는데, 임신이래요.”

이순정은 임신한 지 4주 정도 되었다고 했다. 정신이 돌아온 서정민은 비로소 웃음을 보였다. 곧 마흔이 되는 여성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또 다른 2세가 생명으로 움튼다는 사실에 두 배의 경이로움을 맛 봤다.

불현듯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지적한 전문가 칼럼이 떠올랐다. 우리나라가 0.9명이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극복하려면 40대 여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서정민은 임신 소식을 듣자 아이의 이름부터 생각했다.

“태어나는 아이가 왕자님이든 공주님이든 ‘화’나 ‘해’ 글자 중 하나를 택하면 어때요?”

 “화 해? 아 화해를 주제로 아이 이름을 짓자는 말인가요?”

서정민은 국민들이 화해를 통해 세월호 사고를 치유하고 극복하길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순정이 사랑스러웠다.

“결혼 전 임신을 아버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실까?”

서정민은 한편으로 이팔봉 회장이 행여 ‘속도위반’을 질책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

“걱정 마세요. 아빠는 평소에도, 프랑스에서는 미혼모가 50퍼센트 이상이라면서 약혼한 사람이 애를 갖는 게 무슨 흉이냐고 하시더라구요. 우리 아빠 진짜 신식 아닌가요?”

안도한 서정민은 기쁜 마음이 더 커졌다. 

9월 18일, 흰 뭉게구름이 떠 있는 가을 하늘은 맑디맑다. 땅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뭉게구름을 향해 손짓한다. 두 사람은 창경궁 옆 평양냉면집을 찾았다.

이순정이 갑자기 냉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기가 원하는 것 같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자 서정민은 토를 달지 않았다. 입덧하는 예비신부의 행동을 모두 받아주고 싶었다. 

“냉면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날씨가 쌀쌀해질 때 먹는다지.”

그는 이순정의 선택에 호응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세 번째 만나는 날에 남한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것도 의미가 크다는 말도 덧붙였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느냐’는 북한 통일위원장의 농담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냉면은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서정민은 대통령 전용기가 서해를 경유해 평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잔뜩 고무돼 아이는 태어나서 통일국가에서 평양 배우자를 만날지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결혼식 날짜를 12월 둘째 금요일로 서둘러 정했다. 임신 4개월이 넘으면 드레스를 입어도 표시가 나기 때문에 그 전에 예식을 올리는 게 좋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해외 신혼여행을 뒤로 미루는 대신 국내 휴양지에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살림집은 한남동 빌라로 정했다. 이팔봉 회장이 5년 전 사뒀던 것을 임대 기간이 끝나자 딸의 신혼집으로 내놓았다. 딸의 결혼을 기회로 전 가족을 이 집으로 모으려는 뜻도 숨어 있었다. 그의 희망대로 가족회의에서 합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사별하고, 이혼하고, 사고당하고, 결혼하고… 끝없는 소용돌이를 오로지 뭉쳐야 헤쳐나갈 수 있다는 어른의 굳은 의지에 가족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살림을 합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서정민의 어머니, 윤수조 여사였다.

이팔봉보다 세 살 많은 그녀는 말수가 적고 성실한 편인데 한 집에서 바깥사돈과 어찌 함께 지낼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아들 서정민한테 내비쳤다. 이런 사실을 안 이팔봉 회장이 가만히 뒷짐만 지고 있을 리 없었다.

“사돈마님, 이제 우린 사돈 사이면서 아픔을 나누는 가족입니다. 제가 집밥을 좋아하는데 가끔 밥도 좀 퍼주시고요. 사돈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 지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손자들도 함께 있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손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시는군요. 저는 손녀만 있어서 그런지 준호, 준서 이 녀석들이 친손자같이 정이 들어요. 저를 위해서라도 같이 계셔주십시오.”

“사돈어르신께서 불편….”

뒷말을 끝맺지 않아도 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돈마님만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

얼마 전 재판에서 인정된 ‘묵시적 청탁’이 이날에도 통용되는 순간이었다. 윤수조 여사는 테이블 위에 있는 이팔봉 회장의 커피를 생강차로 바꿔줬다. 건강을 챙겨주는 그녀의 호의에 이팔봉 회장은 감격하면서, 두 가정을 합치는 일이 순조롭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빌라는 2층 구조로, 1층에 방 4개, 2층에 방 3개가 자리잡고 있다. 대가족이 거주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규모다. 1층엔 이팔봉 서정민 이순정 홍소라 4명이 지내기로 했다. 이순정이 출산하면 식구 한 명이 더 늘어난다.

2층 거주자는 윤수조 서준호 서준서 3명이다. 집이 크다고 하지만, 혼밥 혼술 졸혼 등의 시대에 9명이 한 지붕 밑에서 산다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었다. 대단한 모험이기도 했다. 

이팔봉 회장은 대가족 문화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밑거름이라 믿었다. 세월호 참사는 희생이 컸던 만큼 사회와 국가에 큰 충격을 주었고 국가 시스템 작동에 파열음을 일으켰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갈등도 심해졌다. 가정에서는 부부의 대화가 줄어들고 직업이 무너지고, 사회는 규범을 지키는 자가 손해 본다는 피해의식이 커져 가며, 이념 지역 세대 갈등이 증폭됐다. 화해와 배려의 정신이 절실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담장 위 외로운 고양이를 따라 걷는 것 같은 위태로운 기분이 들었다.

이 회장은 세월호로 고통 받는 자들의 치유는 공동체의 협력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가족은 물론 사회와 국가가 함께 나서 유가족이 소속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구성원 간 소통과 교감이 중요했다. 가족 간 대화와 격려, 사회적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그들이 정상으로 회복하는 데 힘이 된다.

“대가족을 이룬 우리 집이 심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순정이 말했다. 가족은 치유요 웃음이고 눈물이며 감동이다. 가장 기쁜 순간, 가장 슬픈 순간, 가장 힘든 순간 가장 먼저 의지하는 곳이 가족이다.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다시 꽃피우는 곳도 가족이다.

“당신 말을 들으니 아버님의 바람이 이뤄질 거란 희망이 생기네.”

서정민과 이순정은 대가족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쁜 점보단 좋은 점이 많을 거라 기대해도 좋겠군. 소통이 트라우마를 완화시켜 줄 테니.” 

“그래도 걱정은 돼요. 어른 두 분이 너무 가까워지면….”

“노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외로움이야.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면서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내 딸이 잘했니, 니 아들이 못했니 하고 싸우는 것보단 나을 것 같군요.”

이번에는 화제를 아이들로 바꾸었다. 

“소라가 너무 예뻐서… 좀 그렇죠?”

형제자매 간에도 남녀유별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순정이 조카 걱정부터 한다. 다락방에서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대화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대학생 고등학생이 된 오빠들이 하나뿐인 중학생 여동생을 잘 보살피는 신사도를 발휘하리라 믿어.”

대화를 하면서 두 사람은 애들이 참 빨리 큰다고 생각했다.

이순정은 강릉 경포대로 가서 파란 바다를 보자고 서정민을 꼬드겼다. 20년 전 한 바리스타가 문을 연 카페가 지금은 젊은 연인들의 커피거리로 발전한 곳이다.

하우스에서 커피를 직접 재배하는 데 성공한 강릉은 체계적인 커피 교육이 이뤄지고 커피 박물관이 들어선 커피 문화의 메카로 탈바꿈했다.

“커피 한잔 사 주실래요. 거리의 커피향이 좋네요.”

며칠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은 사람처럼 이순정이 어리광을 부렸다. 그들은 테라로사 카페에서 바다 야경을 즐기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태아에게 안 좋지 않나?”

“하루 한두 잔은 괜찮대요, 의사 선생님이. 커피를 좋아하지만 한동안 조심하긴 해야 할 거 같아요. 안 그래도 며칠 동안 커피를 안 마셨어요.”

“태아에 대한 산모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걸.”

“아이에게 집중할 거니까 너무 질투하지 말아요.”

“우리 사이를 아기가 훼방놓을까봐 벌써부터 걱정되네. 후.”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생전 먹지 않던 음식을 먹고, 생전 고치지 않던 습관을 바꾸기도 한다.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것도 곧 사랑의 힘이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화합으로 태어나는 아이가 세월호로 인해 상처 받은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치유하는 데 조그만 디딤돌이 되길, 이들 예비부부는 마음 가득히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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