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7 16:02

더 세월(67)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59. 침몰 원인 논쟁


해양수산부는 선체가 똑바로 일어선 2018년 5월 10일 이후 45일간 선내 진입을 위한 준비 작업을 벌였다. 무너진 천장을 끌어내 작업자들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조명을 설치했다.

드디어 6월 25일 오전, 진입로가 확보되자 5명의 미수습자를 찾는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

‘마지막 수색’을 위해 해수부와 해양경찰청, 국방부, 보건복지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남도, 목포시 등이 합동으로 현장수습본부를 설치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의 티끌 같은 흔적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며 다시 목포신항을 찾았다. 

희생자 304명 가운데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와 권재근 혁규 부자 등 5명. 4년 하고도 두 달이 흘렀지만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복숭아씨처럼 단단하고 굳은 결과를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기관실 내부가 가족들에게 최초로 공개됐다. 그동안 입구가 막혀 접근이 어려웠던 곳이다. 처참하게 찢어진 철판을 보면서 가족들도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수습본부는 구석구석에 낀 진흙을 퍼내 옮겨 담으며 기관 구역 수색을 본격화했다. 수색은 선체 내부 진흙을 대형 자루에 담아서 꺼내 세척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선체가 찌그러져 바닥과 맞닿아 있던 왼쪽 객실 구역도 집중 수색 대상이었다.

이곳은 정밀수색에 앞서 내려앉은 천장 끝 부분을 절단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졌다. 선체 좌현은 참으로 처참했다. 비교적 온전한 우현과 달리 침몰 과정에서 짓눌려 형체를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짓눌린 협착 부분은 2층에서 3층 4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4층 객실과 기관실에서 유류품이 발견됐다. 휴대전화와 교복 등 130점이 쏟아져 나왔다. 선체 직립 후 수습한 유류품은 239점으로 늘어났다. 

장마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수색 작업은 이어졌다. 인양 초기 각종 유류품과 펄로 가득 찼던 선체 내부는 어느덧 텅 빈 모습으로 변했다. 4년이란 세월의 흔적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갈라지고 찢겨지고, 녹슬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애들이 마지막으로 뛰놀았을 객실이 이렇게 앙상한 철골로 남았다니….”

한 학부모의 무거운 한숨이 텅빈 세월호 내부를 침울하게 울렸다.

미수습자 수색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에서도 침몰 원인을 둘러싼 의혹은 점점 커져갔다. 세월호는 들어 올렸지만 진실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진실은 물보라 속으로 자신을 영영 감추려는 건가. 미수습자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선체조사위 내에서 침몰 원인을 놓고 논쟁이 불꽃을 튀긴다는 얘기만 흘러 나왔다.

일직선으로 가야 할 배가 지그재그로 간 원인은 뭘까? 조타기 고장이 원인이라는 의견과 앵커나 외력이 사고에 영향을 줬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여론에 밀려 선체조사위는 잠수함 충돌설을 합리적 의심에 포함시켰다. 네덜란드 모형시험에서도 외력설은 검증 대상이었다.

그러나 유의미한 결론을 얻지 못한 것을 두고 현대 과학의 한계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렇다 보니 진실이 너무나도 무시무시해서 천안함이나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나면 보수정권은 향후 50년간 집권이 불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바다는 이 세상에서 위장이 가장 큰 놈이라 걸리는 건 다 삼켜버리지.”

50년 집권 운운하는 게 듣기 싫었던지 서정민 옆에 있던 친구가 삐딱하게 한마디 했다.

그러던 중, 서정민의 한 선배가 나름의 침몰 원인을 밝힌 책 한 권을 펴냈다. 선박검사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이 책 속에 오롯이 녹아 있었다. 선배가 추정한 세월호 사고 원인은 이랬다.

평형수 과다배출 + 화물과적 + 미고박 승용차 40대 → 선체 10도 경사, 미고박 승용차 이탈 → 고박 화물 강타 도미노 붕괴(1분12초) → 좌현선체 강타 추가 경사(30도) → 발전기 윤활유 저압 안전장치 작동 → 전력공급 중단, 배터리 전원공급(3분36초) → 비상발전기 구동(AC전원) → 항적도 재등장 → 우현 주기관 프로펠러 수면 위 노출(횡경사 10~20도) 과속방지 작동 → 우현주기 최저속력, 좌현주기 전속운전 → 편심(4.9미터)에 의한 선체 우회두력 → 윤활유 저압안전장치 작동 최저속운전 → 항적도 항행

결론적으로 GM(중심과 부심 간 거리)이 마이너스 1.13미터에 이르면서 전복력이 복원력을 웃돌아 전복 침몰했다는 주장이다. 

미수습자 수색이 한창이던 7월 19일 국민들은 색다른 재판 결과를 접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년여 만에 법원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정부와 청해진해운의 과실로 참사가 발생했다며, 희생자 1인당 2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위자료는 모두 723억 원에 달했다. 청해진해운은 과적과 고박 불량 상태로 세월호를 출항시킨 점, 국가는 승객 퇴선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을 지적했다. 다만 국가 재난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이 참사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정민한테 재판 사실을 들은 이순정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우리는 소송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죠?”

“그건 어쩔 수 없지. 소송에 참여한 사람만 해당되니까. 세월호 특별법에서 정한 금액과 형평성을 맞췄다고 하니까 우리가 받은 배상액과 큰 차이는 없을 거야.”
3년 전인 2015년 9월 350여 명의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에서 제시한 배상을 거부하고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우리도 배상을 거부하는 건데…” 

이순정은 순간 억울함을 표시하면서도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빨리 탈출하려는 가족의 염원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자위했다.

“정부가 항소한다고 하니까 좀더 지켜봐야겠지.”

서정민이 위로했다.

재판부는 침몰까지 긴 시간이 걸렸음에도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희생자들이 장시간 공포감에 시달리다 극심한 고통 끝에 사망했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했다. 유가족 역시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속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도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배경이 됐다.

유가족들은 법정에서 “향후 2심에서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잘못했는지 밝히겠다”며 울먹였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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