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헤이그-비스비 규칙은 헤이그규칙상 해상운송인의 책임제한액이 1포장당 100파운드가치의 금화라는 것을 전제로, 해상운송인의 책임제한기준을 푸앵카레 프랑(fran poincare)으로 변경한 것이고, 1푸앵카레 프랑은 순도 0.900의 금 65.5mg을 의미하므로 푸앵카레 프랑 역시 금화가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 후 금의 국제적인 통화가치로서의 역할이 쇠퇴하자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금조항에서 벗어나 고정된 가치를 가진 계산단위로서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 이하 ‘SDR’이라 한다)을 창설했고, 이에 따라 헤이그-비스비 규칙을 개정해 SDR을 해상운송인의 책임제한기준으로 삼게 됐다. 이처럼 SDR이라는 계산방식이 금화기준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도입됐다는 점은 종래 헤이그규칙과 헤이그-비스비 규칙에서 금화가 책임제한액의 기준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1988년 영국 법원이 ‘The Rosa S’ 사건에서 헤이그규칙 제5조 제4항에서의 ‘100 pounds sterling’은 금화 100파운드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한 이래 각국의 법원에서 동일한 취지의 판시를 했는데, 이러한 다른 나라 법원들의 해석론은 우리나라에서도 참작될 수 있다고 보인다.
(5) 위와 같은 헤이그규칙 제4조 제5호 및 제9조의 규정, 두 차례에 걸친 헤이그규칙의 수정경위 및 그 수정내용, 그리고 헤이그규칙상 책임제한조항의 해석에 관한 영국을 비롯한 외국 판례의 태도 등을 종합하면, 헤이그규칙 제4조 제5항에서 해상운송인의 포장당 책임제한액으로 정하고 있는 ‘100파운드(100 pounds sterling)’는 금화 100파운드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6) 그럼에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헤이그규칙 제4조 제5항의 책임제한액이 영국화 100파운드를 의미한다고 보아 이 사건 화물 중 손상된 4포장에 대해 상법상 책임제한액인 4,614,053원만을 인용했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이 사건 운송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주장은 이유 있다.
라. 판결의 의의
위 대법원 판결은 앞서 본 서울지방법원 판결과는 달리 지상약관으로서 헤이그규칙이 적용되는 경우 포장당 책임제한액의 통화단위인 100파운드가 현재의 영국 화폐단위인 영국화 100파운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금본위제도하에서의 금화 100파운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IV. 관련문제
1. 불법행위책임에의 적용여부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이 동시에 불법행위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과 함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도 성립하는가, 채무불이행책임만이 성립하는가에 대해 청구권경합설과 법조경합설이 대립돼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법원은 일관해 청구권경합설에 터잡아 판결하고 있어 실무상으로는 청구권경합설로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 상법은 명문으로 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규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도 이를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상법 제798조) 법 해석상 포장당 책임제한규정이 계약책임에 적용됨은 물론 그 청구근거가 일반불법행위에 의한 것이든 사용자책임에 기한 것이든 관계없이 불법행위책임에도 적용된다는 점에 대해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선하증권에 손해배상액을 포장 또는 선적단위 등을 기준으로 일정한 금액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배상액제한약관(책임제한약관)을 두는 경우, 동 약관이 불법행위책임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으로 볼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책임제한약관을 불법행위에도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계약해석 및 당사자의 의사해석의 문제라 할 수 있으나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약관을 불법행위책임에도 적용하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이 약관의 합목적적 해석에도 부합하고 당사자의 의사에도 부합할 것이다.
2. 포장 또는 선적단위의 개념
해상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한도를 포장 또는 선적단위를 기준으로 정하는 경우에 있어 포장의 법적 의미와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특히 컨테이너의 등장과 더불어 컨테이너 안에 들어있는 운송물의 포장 또는 내용물을 기준으로 손해배상책임한도를 결정할 것인가,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책임한도를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법문에 명확한 규정이 없으므로 헤이그-비스비 규칙의 입법취지 및 각국의 판례를 통해 합리적인 해석원칙과 기준을 찾아야 할 것이나, 포장의 의미는 크기, 형태, 무게와 상관없이 운송취급을 용이하게 하도록 다소 짐을 꾸려놓는 정도의 화물 부류를 말하는 것이고 반드시 내용물을 볼 수 없도록 밀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carton, box, barrel, bale, crate, case, bag, sag, drum 등은 물론 Skid, Pallet도 하나의 포장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포장이 없는 경우에는 단위에 따른 기준에 따라야 할 것이며 일반적으로 포장되지 아니한 화물에는 선하증권이나 이에 대체되는 문서에 표시돼 있는 개개 선적단위(shipping unit)가 단위로 간주된다. 미국해상물품운송법에서는 당사자가 운임을 결정함에 있어 취급한 단위, 즉 관행적 운임단위(customary freight unit)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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