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30 12:59
논단/사정변경으로 인한 용선계약의 해지가 가능한가?
정해덕 파트너변호사/법학박사 법무법인 화우
■계약존속이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 해지가 허용돼야
<4.6자에 이어>
4. 일본
일본 최고재판소는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당사자를 당해 계약에 구속하는 것이 신의형평상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계약당사자에게 해제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례에 있어서는 사정변경을 주장하는 측에 귀책사유가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 해제권을 인정한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급심 판례 중에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급부의 등가성상실에 대하여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하여 계약해제권의 행사를 인정한 사례(東京地判 昭和 25. 4. 4., 大阪高判 昭和 38. 1. 17.)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5. 기타
사정변경을 계약수정의 근거로 인정하는 법제로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폴란드, 이집트 등을 들 수 있다.
Ⅲ. 우리나라 판례의 검토
1.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지를 부정한 판례
경제사정변경(물가변동)과 관련하여 종래의 우리 판례는 사정변경의 원칙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견해에 입각하여 왔다.
즉, 우리 대법원은 매매계약을 맺은 때와 그 잔대금을 지급할 때와의 사이에 장구한 시일이 지나서 그 동안에 화폐가치의 변동이 극심하였던 탓으로 매수인이 애초에 계약할 당시의 금액표시대로 잔대금을 제공한다면 그 동안에 앙등한 매매목적물의 가격에 비하여 그것이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이행이 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민법상 매도인으로 하여금 사전변경의 원리를 내세워서 그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고하고(대법원 1963. 9. 12. 선고 63다452 판결), 매매계약체결 후 9년이 지났고 시가가 올랐다는 사정만으로 계약을 해제할 만한 사정변경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매수인의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이행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도 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대법원 1991. 2. 26. 선고 90다19664 판결).
2.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지를 인정한 판례
최근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판례가 나오고 있으므로 이하에서 살펴본다.
(1)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이른바,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계약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라 함은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으로서, 일방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또한, 계약의 성립에 기초가 되지 아니한 사정이 그 후 변경되어 일방당사자가 계약 당시 의도한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됨으로써 손해를 입게 되었다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계약내용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할 것이다.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 사건 토지에 대한 개발제한구역 지정이 해제됨에 따라 원고가 건축 등이 가능한 토지로 알고 당시의 객관적인 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이 사건 토지를 피고로부터 매수하였는데, 그 후 피고에 의하여 이 사건 토지가 공공공지로 지정되어 건축개발이 불가능해지고, 공공공지 개발계획에 따라 이 사건 토지가 수용될 상황이 되는 등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에 원고가 예상하지도 않았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생겼고, 이러한 사정변경은 원고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것으로서, 이로 인해 원고에게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게 되어 이 사건 매매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보아 원고는 사정변경 또는 신의칙을 사유로 하여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수긍할 수 없다.
원심이 인정한 사실과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매매계약은 일반 매수예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피고의 공개매각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것으로서, 공개매각조건에는 이 사건 토지가 개발제한구역에 속해 있고, 이 사건 토지의 매각 후 행정상의 제한 등이 있을 경우 피고가 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으며, 이 사건 매매계약에서도 피고는 이 사건 토지의 인도 후에 발생한 일체의 위험부담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을 뿐 당시 이 사건 토지상의 건축가능 여부에 관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토지상의 건축가능 여부는 원고가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게 된 주관적인 목적에 불과할 뿐 이 사건 매매계약의 성립에 있어 기초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 후 이 사건 토지가 공공공지에 편입됨으로써 원고가 의도한 음식점 등의 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변경은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할 만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할 것이고, 이러한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원고가 의도한 주관적인 매수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어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매매계약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이 변경된 사정이 계약해제권을 발생시키는 사정변경에 해당한다거나, 이 사건 매매계약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보아 원고에게 이 사건 매매계약에 대한 해제권이 발생한다고 판단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사정변경이나 신의칙에 의한 계약해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다.
(2) 서울고등법원 2008. 5.20. 선고 2007나10421 판결(이른바 ‘로또복권 판결’)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른 일부 해지권을 행사하였다는 피고의 주장에 관하여 보건대,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해지권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법률행위 성립 당시 그 기초가 되었던 사정이 현저하게 변경되고, 사정의 변경이 당사자에 의하여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어야 하며, 사정변경이 당사자의 귀책사유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당초의 계약내용대로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 내지 공평에 반하는 결과가 되어야 할 것인데, 로또복권 판매액이 예상 판매액을 훨씬 초과하게 되어 피고가 그 판매액에 비례한 수수료를 지급받게 되었다는 점만으로 신의칙 내지 공평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의 이 부분 주장 또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없이 이유없다.
<6.1자 계속><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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