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 수출입액은 3억달러(3400억원)에서 11억달러(1조2500억원)로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가시적인 경제 성장의 배경에는 52개국과 체결한 15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
FTA가 국내 통상정책에 도입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경제 지표 이면의 현상에 대해 들여다 볼 때라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1일 한국무역협회는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타워에서 FTA 15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통상 전문가와 수출기업 관계자 등 120여명이 참석해 FTA를 통해 거둔 성과와 앞으로의 정책 발전방향을 토의했다.
정량적 경제효과 ‘흡족’ 정성적 효과 ‘물음표’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배찬권 연구위원 |
주제발표를 맡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배찬권 연구위원은 “현재까지 정부가 실시해온 FTA 성과평가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FTA 체결을 시작한 후 지난 15년동안 국내 경제 지표 추이만 살펴보면 FTA가 긍정적인 효과만 낸 것으로 평가되지만, 이는 정성적 평가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2004년 한-칠레 FTA 체결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경제적 변화 양상은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3~2018년까지 수출입은 글로벌금융위기 시기(2008~2009년)를 제외하고는 줄곧 증가했다. 2003년 3억7000만달러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11억4000만달러를 신고했다. FTA 체결국 간 교역량 역시 대체적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관측이다.
최초의 FTA 체결국인 칠레의 경우 체결 후 교역 규모가 3.4배 이상 늘어났으며, 미국 유럽연합 아세안 등 주요 체결국과의 교역량 역시 모두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FTA 체결 5년차에 시행되는 ‘이행 상황 평가’에도 잘 반영되고 있다.
이행 상황 평가의 주요 평가 척도는 ▲FTA 체결 후 5년간 증가된 실질 GDP(%) ▲소비자 후생 누적금액 ▲국내 생산금액 ▲누적 일자리 증가 개수 등이다. 하지만, 평가 요소가 정량적 수치로만 이뤄진 탓에 FTA가 국민에게 제공한 구체적인 실익의 규모나 계층별 배분의 공평성 등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배 연구위원은 “FTA 정책 개선을 위해서는 거시적인 경제지표 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분배의 공평성이나 소비자 체감도 등의 미시적인 평가 요소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중소기업 배려 필요
향후 FTA 정책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도 앞선 발표와 일맥상통하는 의견들이 나왔다. 한국소비자원 문성기 국장은 FTA가 국내 소비자에게 어떤 효과를 제공하는지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국장은 “국외 상품 수입 경험이 있는 소비자 3000명을 대상으로 FTA 영향 인식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FTA로 소비자 후생이 증가했다고 판단했다”면서도 “FTA를 통한 관세 인하가 일부 유통 및 수출기업에만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따져보는 한편, 실제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어느 정도인지 품목별 후생 효과를 정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제원산지정보원 송경원 실장은 “우리나라 무역 구조의 영향으로 대기업의 FTA 활용도가 중소기업보다 훨씬 높다”며 상대적으로 FTA 활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송 실장에 따르면, 현재 체결된 15개 FTA의 양허 품목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약 4~5만개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절반 이상(약 2만7000개)은 FTA 활용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FTA 활용 기업을 보면, 단일 협정을 활용하는 기업의 비중은 전체의 64%(3만개)를 차지했다. 반면, 복수 활용 기업들의 80%는 15개 협정 중 7개 이상을 모두 활용하고 있었다.
이는 대기업들에 FTA 활용률이 편중됐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라는 설명이다. 송 실장은 “대다수의 신생·중소기업들은 여전히 FTA 활용에 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며 “정부가 신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중소기업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 산업연구원 오영석 본부장은 “미국 유럽연합 중국 아세안 등 주요 FTA 체결국과의 교역량 분석 결과, 양허 품목을 중심으로 교역량이 크게 늘었다”면서도 “지금까지는 관세 인하로 인한 가격경쟁력 제고를 통해 무역 흑자를 창출했지만, 이젠 기술경쟁력을 높여 산업구조와 무역구조의 고도화를 촉진하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대학교 안덕근 교수는 “최근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거대 경제권들이 주도해 새로운 통상규범과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 등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 FTA 재편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같은 신규 협정들이 새로 도입한 디지털교역, 국영기업, 고용 관련 규정들은 기존 FTA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이다. 국내 FTA 정책에도 이런 새로운 통상정책 흐름이 반영되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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