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예정돼 있던 선사들의 대대적인 GRI(운임인상) 계획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당초 주요 선사들은 동남아항로에 20피트 컨테이너(TEU)당 100달러를 인상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화물을 조금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선사들이 운임을 인상하기보다 유지하거나 인하하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하면서 이 같은 계획은 유야무야됐다.
한국발 운임은 지난달에 이어 비슷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19일 현재 한국발 홍콩행 공표운임은 TEU당 10~50달러, 필리핀 마닐라행은 30~100달러, 태국 램차방행은 20~200달러, 말레이시아 페낭 파시르구당행은 200달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수라바야행은 230~570달러, 베트남 하이퐁 호찌민, 태국 방콕행은 100~350달러대를 형성하고 있다. 해운업계는 이 항로 시황이 여름 이후부터 하향세를 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인상할 수 있는 전환점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유가와 용선료 하역료 인건비 등이 크게 오르면서 이 항로 취항선사들은 CRC(비용보전할증료) 부과로 채산성을 회복하고 있다. 할증료 규모는 TEU당 50달러다. 외국적선사들은 CRC 대신 EBS(긴급유류할증료)나 BRS(유류비보전할증료)란 명칭으로 부대비용을 화주에게 청구하고 있다.
특히 7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유가는 최근 80달러(두바이유·브렌트유)까지 돌파했다. 구매력에서 밀리는 역내항로 선사들로선 유류비 인상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부산항의 벙커링(급유) 비용은 t당 520~530달러로 과거 400달러 대비 100달러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선사들의 부대운임 청구서를 화주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특히 대형화주들은 비딩(입찰)조건을 내걸며 비용부담에 인색한 모습이다. 해운업계는 실화주들이 선사들과 상생하는 차원에서 최근의 유류할증료 부과를 이해해주길 바라고 있다.
새해에는 CRC 대신 유가변동에 따른 새로운 방식의 유류할증료인 ‘플로팅 FAF’가 도입될 전망이다. 역내항로에서 통용되는 FAF는 원양항로에서 불리는 BAF와 같은 뜻으로, 과거 이 항로의 협의협정이었던 아시아역내협의협정(IADA)에서 자주 언급됐다.
다만 할증료 책정을 유가에 연동해 부과하겠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근 정기선업계 선두주자인 머스크라인과 CMA CGM이 급등하는 유가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할증료를 모델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업계는 현재의 유가수준이 내년에도 유지된다면 FAF 규모가 TEU당 약 60~70달러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할증료 부과는 분기(3개월)마다 새롭게 책정할 전망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2020년부터 저유황유 도입으로 유류비 인상이 불가피한 만큼, 해운물류업계가 유가연동 유류할증료를 사전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새로 개정될 FAF는 과거 IADA에서도 부과된 사례가 있는 만큼, 실화주들이 해운업계의 어려움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항로 소석률(화물적재율)은 지난달과 대동소이한 70~80%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장들이 동남아에 추가 개장하면서 일부 항로는 수요가 꽤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외국적 선사는 4분기부터 적재율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고 낙관적인 입장을 전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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