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사람이든 사회든 허리가 튼튼해야 건강한 법이다. 우리나라가 중산층을 가꾸고 키우는 데 큰 관심을 갖는 이유다. 물류시장도 마찬가지다. 견실한 중소물류기업의 육성이 곧 국내 물류시장을 건강하게 한다. 올해 설립 17주년을 맞은 다이호해운항공의 선장이 중소물류기업의 육성 전략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다이호해운항공의 이영호 사장은 최근 ‘중소물류기업의 차별화와 협력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무역물류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사장의 논문은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중소물류업체들의 발전 방향을 국내 최초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사장은 최근 물류서비스 흐름이 종합물류서비스, 원스톱 물류서비스를 지향하면서 조직이 영세한 데다 자원도 부족한 중소물류기업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류환경변화로 중소물류기업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차별화와 틈새지역 공략마저 무용지물이 돼 버린 셈이다.
‘열일’하는 중소물류기업 어려움 가중
“현재 우리나라 물류기업 중 중소기업은 99.6%에 이릅니다. 종사자 수도 중소물류기업이 77%를 차지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물류서비스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만 매출액 규모는 대기업이 65조원, 중소기업이 61조원 정도예요. 대형물류기업은 대부분 대형화주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어 안정적인 물동량 창출이 가능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시설 투자, 소프트웨어 개선 등으로 많은 물량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가고 있죠.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경쟁하면서 물량을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화주들은 물류입찰 조건을 연매출 500억원 이상의 기업만 응찰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어요. 출발부터 영업이 원천봉쇄 되는 구조죠.”
그는 정부에서 중소물류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자체적으로 수익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정책적으로 중소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은 한계가 있는 까닭이다. 이 때 필요한 게 중소기업간 협력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같이 경쟁하는 건 승산이 없어요. 중소기업은 경쟁에서 뒤처진 물류 역량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투자보다는 필요한 역량을 갖춘 기업과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봐요. 궁극적으로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하고 중소기업은 전문영역을 갖춘 강소물류기업으로 발전하는 큰 틀이 우리나라 물류산업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입니다.”
그는 중소물류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인터뷰 한 결과 차별화와 협력이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 전략이지만 차별화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사실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물류 수요가 종합물류서비스로 확장되면서 특정 영역의 전문성만으로는 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중소기업들은 차별화를 통해 물류역량을 확보한 뒤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서비스 범위를 넓히는 한편 전문물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이 사장은 지적했다.
“통관 검역 물류센터 운영 등에서 차별화에 성공한 중소기업들이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을 활용해 덩치를 키운다면 대기업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형화주 물류입찰에서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면 매출액 기준 등을 충족할 수 있고 물류역량도 확장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다만 중소기업으로 이뤄진 컨소시엄이 입찰에 참여했을 때 이를 받아주는 공정한 룰이 필요합니다. 정부에서 중소기업 지원책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어요.”
영세물류기업 난립하는 구조 바꿔야
그는 영세한 물류기업이 무한 세포분열하는 현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세기업의 난립은 곧 전체적인 물류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포워딩 시장은 영업사원들이 회사 지원으로 확보한 화물을 기반 삼아 자기 사업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중소기업들의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데도 제도는 자본금 최대 3억원만 보유하면 물류기업이 창업 가능하도록 해 영세한 물류기업이 계속 양산되고 있습니다. 제조회사에선 기술유출이 큰 범죄입니다. 물류업계도 화물 가로채기나 고객 유출 행위를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제도적으로 규제해야 합니다.”
다이호해운항공은 비록 중소포워더지만 독일 굴지의 물류기업인 레누스를 파트너로 두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물류기업과의 파트너십은 국내 포워더에겐 큰 힘이 될 수밖에 없다. 창립한 지 104년이 된 레누스는 전 세계에 500개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연간 매출액은 46억유로(약 5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 사장은 또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들이 설립한 SRI인터내셔널 한국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VR) 드론 홍채인식 등의 최첨단 기술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만 양밍라인과 조양상선을 거쳐 지난 1999년 다이호해운항공을 창업한 이 사장은 박사학위 논문을 계기로 국내 물류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소물류기업 경영자로서 업계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다.
“양극화는 큰 문제입니다. 동네 구멍가게가 다 망하고 대기업 프렌차이즈만 득세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운과 물류도 마찬가지예요. 예전 같으면 중소물류업체가 대기업 영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해요. 중소기업들이 건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해운도 국적선사를 살려서 외국기업과 경쟁토록 해야 국부유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