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04 15:53
‘선박 밸러스트수 규제협약’ 13년만에 최종 확정
유해 해양생물종, 병원균 이동 예방ㆍ제거 발판 마련
10년 넘게 끌어오던 밸러스트수 규제협상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엔전문기구인 국제해사기구(IMO)가 지난달 13일 73개 회원국 대표와 정부간 및 비정부간 기구 대표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협약 채택을 위한 외교회의를 개최하고 선박 밸러스트수 및 침전물의 배출 규제와 관리에 관한 협약(이하 ‘선박 밸러스트수 규제협약’)을 최종 확정했다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밝혔다.
이로써 IMO는 1990년대 초 호주의 요청에 따라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밸러스트수 규제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한지 13년 만에 정식으로 협약을 채택하여 시행할 수 있게 됐다.
그 동안 IMO는 선박의 밸러스트수를 통해 이동하거나 전염되는 해양생물종과 병원균을 규제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1997년에는 결의서를 채택하여 회원국에 대한 선박 밸러스트수 규제 시행을 권고한 바 있다. 외래 생물종의 유입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미국과 호주 등은 자체적으로 법률을 제정해 입항하는 외국선박에 대해 공해상에서 밸러스트수 교환을 의무화하는 등 일정한 배출 규제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 협약이 채택됨에 따라 IMO는 국제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기준에 따라 선박 밸러스트수의 무단 배출을 규제할 수 있게 됐다. 협약 채택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에피시미우스 미트로폴로스(Mitropoulos) IMO 사무총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IMO는 선박의 밸러스트수를 관리하고 규제할 수 있는 국제규범을 갖게 됐다”고 밝히고 이를 통해 전세계 해양에서 유해한 해양생물종과 병원균의 이동을 예방 또는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이를 제거할 수 잇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국제사회의 합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이 협약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IMO 회원국들이 이 협약을 조기에 이행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현재 이 협약은 일반적인 예상보다 빨리 발효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 이유는 이 협약이 채택되기 직전인 지난달 3일 유럽연합(EU) 회원국과 가입예정국, 노르웨이 및 아이슬란드 등 27개국이 브뤼셀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협약 제정 대책과 조기 시행방안을 논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협약은 세계 상선대의 35%를 점유하는 30개국이 비준한 날부터 1년이 경과하면 국제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로이스리스트지에 따르면 이 같은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선사들은 IMO가 협약채택에 급급한 나머지 시행에 따라 야기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세계 곳곳서 외래 생물종으로 인한 피해 발생
IMO가 이 협약을 제정한 것은 그 동안 결의서 채택 등 국제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박의 밸러스트수를 통해 유해한 해양생물종의 이동이 확산되는 등 문제가 더욱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밸러스트수가 선박의 안전에 중요하지만 그 속에 포함돼 있는 생물종이 다른 나라에 배출돼 토착생태계를 파괴하는 등의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선박 밸러스트수는 해양환경을 파괴하는 주요 오염원으로 인식돼 왔다.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선박의 밸러스트수가 끊임없이 주입ㆍ배출되기 때문에 이른바 ‘원하지 않는 유해 해양생물종이나 병원균’이 전세계적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밸러스트수가 외국의 항만이나 연안지역에 배출되는 경우 토착 생태계가 크게 피해를 입는 등 환경ㆍ경제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IMO 자료에 따르면 연간 130억톤의 밸러스트수가 각국의 항만 등에 배출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1일 평균 300여종의 유해한 해양생물종과 병원균이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연안경비대(USCG)에 따르면 오대호의 경우 유럽산 홍합의 유입으로 1989년부터 2000년까지 모두 7.5억~10억달러의 피해를 입었다. 특히 미국 오대호에 있는 발전소와 공장의 경우 유럽산 홍합의 유입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미국의 경우 아시아에서 주로 서식하는 대합조개와 녹색 게가 유입됨에 따라 이를 처리하는 비용으로 연간 10억달러와 4,400만달러를 각각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나 뉴질랜드, 지중해 국가 등도 밸러스트수의 배출에 따른 피해를 입고 있다. 호주의 경우 1980년대 중반부터 태즈메이나와 빅토리아 연안에 외래 생물종인 패독성 쌍편 모조류가 발생하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한 바 있다. 이 조류(藻類)가 양식어장에 치명적인 적조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호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류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 검역청은 자국 해역에 대략 170여종의 외래 생물종이 몰래 들어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남부 산호초 지역이 외래 생물종의 유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뉴질랜드도 1980년대 후반에 아시아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적조로 패류 양식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조치를 취한바 있다.
2009년부터 밸러스트수 배출 전 처리 의무화
지난 13일 채택된 협약은 두 가지고 구성돼 있다. 밸러스트수의 배출을 규제하는 일반적인 원칙과 기준을 정한 본협약 그리고 이 협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부속서가 그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협약은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모든 선박에 적용된다. 선박의 종류를 불문하고 해양에서 운항하는 모든 잠수정, 부양 플랫폼, 원유 운반저장선(FSU 및 FPSO) 등에 적용된다. 특히 400톤(GT)이상의 선박(플랫폼, 원유 운반저장선은 제외)은 관할관청에서 발급한 국제협약 적합증서를 비치하고 있어야 운항할 수 있다.
둘째, 각 선박은 관할관청에서 승인한 밸러스트수 관리계획을 선박에 비치하고 시행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협약에서 정한 바와 같이 밸러스트수 처리에 종사하는 선원이나 선박의 안전절차, 밸러스트수나 퇴적물의 처리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 이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선원의 지정 등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해야 한다.
셋째, 유해한 해양생물종의 국경간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2가지 관리기준을 정하고 있다. 밸러스트수의 공해상 교환과 처리시스템을 통한 배출 전 선박 내 처리 등이다. 밸러스트수 교환은 육지에서 200마일 떨어진 수심 200미터 바다에서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일시적인 경과조치에 불과하다. 2009년 이후에 건조되는 선박은 사실상 처리장치를 통한 처리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리방법에 대해 특기할 사항은 반드시 기계적인 처리장치에 한정하지 않고 환경적으로 무해한 화학약품 등을 통한 처리도 허용하고 있는 점이다.
넷째, 이 협약은 밸러스트수뿐만 아니라 그 탱크에 포함돼 있는 침전물을 제거?처리토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박을 건조할 때는 이 같은 침전물을 쉽게 제거하고 샘플링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하고 항만에는 이 물질을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수용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체약국은 자국선박 및 외국선박에 대해 협약의 준수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 하나가 자국선박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국제적인 적합증서를 발행하는 업무이며 또 다른 하나는 여타 IMO 협약과 마찬가지로 입항하는 외국선박에 대해 항만국통제를 시행하는 일이다.
선박 밸러스트수 처리기술 확보 시급
선박 밸러스트수 규제협약의 채택으로 세계 각국은 IMO라는 다자간 기구를 통해 유해한 해양생물종과 병원균 등의 국제적 이동을 차단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특히 그 동안 유해 해양생물종의 유입으로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큰 피해를 입은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지중해 연안국가의 경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국제공조체제를 구축해 유해 생물종의 이동을 최소화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제거할 수 있는 계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이 협약을 이행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는 면이 있다. 선박 밸러스트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이 선진국의 2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 같은 기술의 조기 확보가 협약의 이행여부를 판가름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해양수산부에서 용역으로 밸러스트수 처리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나 아직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몇몇 연구기관 등도 연구에 착수했으나 아직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일본해사신문의 발표에 따르면 이 협약의 제정이 논의되던 1990년대 초반부터 연구에 들어가 현재 실선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동 신문에 따르면 일본해난방지협회와 해양개발기술연구소는 일본재단의 지원으로 1991년부터 선박 밸러스트수 처리장치에 관한 기술개발에 착수, 2003년 하반기에 북미항로를 운항하는 컨테이너선을 대상으로 실용화 시험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연구팀은 ‘특수 파이프’에 밸러스트수를 통과시키는 처리시스템을 개발,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 가장 큰 선사의 하나인 일본우선(日本郵船)도 프라즈마 관련기업과 선박용 엔지니어링 회사와 공동으로 밸러스트수를 환경적으로 무해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처리장치는 선박에서 나오는 열(증기)을 활용하여 밸러스트수를 1차 처리한 뒤 남아 있는 미생물 등은 오존 멸균방식으로 2차 처리하는 방식으로 동경해양대학에서 실시한 시험가동에서 100%에 가까운 처리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이 개발한 2건의 처리장치는 7월부터 밸러스트수 처리를 의무화하는 미국(워싱턴 주)의 규제에도 대비한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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