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부터 미국 서안 최대 항만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도 화물을 빼가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된다. 미국 산페드로만에 소재한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 두 항구는 극심한 혼잡을 완화하려고 수수료 카드를 꺼내들었다.
LA항만청과 롱비치항만청은 기록적인 물동량으로 항만 적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화물 이동을 개선하고자 수입 컨테이너가 부두에 머문 기간이 기준을 넘기면 화물을 수송한 운송사에게 ‘컨테이너적체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항만 측은 부과 대상을 해운사(ocean carrier)로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벌금을 내야 하는 곳은 현지 수입 포워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사 관계자는 “과거엔 해운사들이 화주 문전까지 짐을 갖다 주기도 했지만 물류대란 이후 항만터미널까지만 화물을 수송하고 있다”며 “현지 항만에서 화물을 인수해가는 수화주 쪽에서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미널에 머문 시간이 트럭으로 반출되는 화물은 9일, 철도로 반출되는 화물은 6일째 되는 날 컨테이너 1개당 100달러(약 12만원)의 벌금이 매겨진다. 철도 화물의 경우 기준이 당초 3일에서 2배 연장됐다. 벌금은 체류기간이 하루씩 늘어날 때마다 100달러가 추가된다.
주의할 점은 벌금이 누진제로 계산된다는 사실이다. 트럭 화물의 경우 9일째 되는 날 100달러지만 10일이 경과했을 땐 200달러가 아니라 300달러를 물어야 한다. 11일엔 600달러, 12일엔 1000달러, 13일엔 1500달러의 벌금 폭탄이 날아온다.
철도 화물도 터미널에 체류한 지 7일이 경과하면 300달러를 내야 하고 10일이 지나면 1500달러를 물어야 한다. 그 이후로도 화물 반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벌금은 매일 100달러씩 무제한으로 증액된다.
LA·롱비치항은 적체료 부과 정책을 11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다만 현장의 혼란을 우려해 실제 부과 시기는 15일로 연기했다. 거둬들인 적체료는 효율성 제고와 화물 이동 속도 향상 등의 물류 개선 프로그램에 재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진 세로카 LA항만청장은 “두 항만에서 처리되는 컨테이너의 40% 정도가 적체료 부과 대상에 포함된다”며 “장기 적체 문제가 해결되면 더욱 많은 수출화물을 처리할 수 있고 항만 장치 능력도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의 항만 특사인 존 포카리는 “LA와 롱비치 항만터미널에 머물러 있는 컨테이너의 과징금을 운송사에 부과하는 조치를 지지한다”며 “이로써 화물 이동이 빨라지고 항만 적체도 개선될 거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해운업계, 탁상행정 반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심각한 서안 항만의 물류 적체를 해소하려고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LA·롱비치항은 지난달부터 연중무휴 24시간 운영 체제에 돌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지난달 13일 발표한 긴급 성명에서 야간과 주말에 문을 닫는 미 대표항만이 앞으로 일주일에 60시간 더 운영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도입되는 적체료 부과는 항만당국 차원의 두 번째 물류 적체 해소 프로젝트인 셈이다.
LA·롱비치항의 트럭 반출 컨테이너 평균 체류기간은 코로나19발 보복소비로 미국 내 수입화물이 늘어나기 시작한 지난해 중반까지 4일 이내였다. 철도로 반출되는 화물이 터미널에 머무는 기간은 2일이 채 안됐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화물 적체가 가속화하면서 체선도 동반 악화하고 있다. 미국 수입화물의 40%를 담당하는 두 항만의 물류 적체는 현지 유통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해운업계에선 이번 조치를 두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의 물류대란이 코로나19에 따른 항만터미널 일손 부족과 물동량 증가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것이지 선사나 물류기업이 늑장을 부려서 일어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물류현장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며 “찾아가기 싫어서 안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항만이 꽉 막혀서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인데 책임을 이용자 측으로 돌리려 한다”고 벌금 부과 정책 도입을 비판했다.
미 정부가 잇따라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체선 현상은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달 2일 현재 LA·롱비치 항만에서 입항을 기다리고 있는 컨테이너선은 77척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긴급 성명을 내놨던 날보다 21척 늘어났다. 특히 롱비치항은 40척을 넘어서는 등 LA항보다 상황이 악화하는 모습이다.
지난 6월 10척대에 머물던 산페드로만 2개 항만의 대기선박은 북미항로 성수기인 8월부터 급격히 증가해 8월20일 40척을 넘어섰다. 9월 들어선 더욱 적체 속도가 가팔라져 9월10일 50척, 9월15일 60척, 9월20일 70척을 연이어 돌파했다. 10월21일 79척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70척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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