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발생한 철광석광산 댐 붕괴 사고로 해운시장의 불투명성이 커지고 있다. 철광석 물동량 감소폭이 얼마나 될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사고의 심각성을 반영해 벌크선 운임의 하락세도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세계 1위 광산기업인 브라질 발레(VALE)는 현지시각으로 29일 브라질 정부가 상류형 공법(upstream method)으로 지어진 댐들을 모두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5일 남부 미나스제라이스주 브루마지뉴의 페이장(feijão) 광산에서 댐 붕괴 사고가 발생한 뒤 내려진 조치다. 댐 붕괴로 주변 마을 일대가 흙더미에 매몰되면서 지금까지 99명이 사망했다. 250여명이 실종된 상태여서 사망자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댐은 광물 찌꺼기를 저장하는 시설로, 상류형 공법으로 지어졌다. 한국자원공학회에 따르면 상류형 댐은 경제적이어서 광물 찌꺼기 적치장으로 선호되지만 집중호우나 지진에 취약해 붕괴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 이 같은 이유로 페루와 칠레는 상류형 댐 건설을 금지하고 있다. 발레는 과거 브루마지뉴에서 19개까지 상류형 찌거기저장댐을 갖고 있었지만 안전과 환경 문제로 현재는 10곳만 운영 중이다.
발레, 세계 철광석 물동량 26% 장악
발레가 세계 해운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까닭에 이번 사고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 철광석 생산량은 3억8800만t으로, 전 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26%, 해상물동량의 7%를 차지했다.
사고가 난 페이장 광산은 발레의 파라오페바(Paraopeba) 철광석 생산단지에 위치한 4개 광산 중 하나다. 브라질 기업은 지난해 파라오페바 생산단지에서 2630만t, 페이장 광산에서 850만t의 철광석을 생산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전체 물량의 2%를 페이장 광산에서 담당한 셈이다.
사고 초기엔 페이장 광산의 점유율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해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NH투자증권 정연승 연구원은 사고가 전체 벌크선 업황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페이장 광산의 생산량은 전 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0.5%, 벌크선 물동량의 0.14%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사고의 여파가 다른 광산으로 확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브라질 당국에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주변 광산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안전 점검을 벌일 거란 소식이 불거져 나왔다. 정 연구원은 파라오페바 전체 생산량이 반 토막 날 경우 세계 철광석 물동량은 0.9% 줄어들고 전체 벌크선 물동량은 0.2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연간 벌크선 물동량 예상 증가율이 2.3%인 점에 미뤄 적지 않은 규모다.
댐 폐쇄 3년 걸려 ‘생산시설 9곳 가동 중단’
댐 폐쇄조치로 시장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발레는 10곳의 댐을 빠르고 안전하게 해체하기 위해 해당지역 광산과 펠릿 플랜트의 제품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전했다. 가동을 멈추는 생산시설은 ▲바르겜그란드 생산단지의 아보보라스 바르겜그란드 카피탕두마투 타만두아 ▲파라오페바 생산단지의 장가다 파브리카 세그레두 주앙페레이라 알투반데이라 등 9곳이다.
발레의 생산단지(complex)는 광산과 펠릿 플랜트로 구성된다. 바르겜그란드 생산단지엔 아보보라스 카피탕두마투 타만두아 등 세 곳, 파라오페바 생산단지엔 사고가 난 페이장과 장가다 카팡샤비에르 마르아줄 등 네 곳의 광산이 위치해 있다.
이번 조치로 감산되는 철광석 규모는 연간 400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발레가 올해 생산 목표로 정한 4억t의 10%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들 광산은 댐 해체 작업이 종료된 뒤 가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발레는 댐들을 해체하는 데 50억레알(약 1조5000억원)의 비용과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JP모건은 댐 붕괴사고가 올해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벌크선시장에 또 다른 역풍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운송거리가 긴 브라질 철광석 물동량이 줄어들 경우 단순한 수요 감소 그 이상의 영향을 끼칠 거란 우려다. 브라질산 철광석의 평균 운송거리는 9548해리(1만7683km)로, 경쟁하는 호주산 철광석의 3451해리(6391km)에 비해 3배 가까이 길다. 발레는 톤-마일 기준으로 전 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45%, 해상물동량의 13%를 점유하고 있다.
노어 파켓 연구원은 철광석 4000만t 감산이 현실화활 경우 톤-마일 기준으로 전 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4.7%, 벌크선 물동량의 1.3%가 사라진다고 분석했다. 브라질산 철광석이 호주산 철광석으로 대체되더라도 철광석 운송수요는 3.1%, 벌크화물 운송수요는 0.8% 위축될 거란 관측이다.
벌크선 운임은 댐 붕괴 사고 이후 약세를 거듭하고 있다. 30일자 벌크선운임지수(BDI)는 8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띠며 721까지 떨어졌다. 800포인트선이 무너진 건 2017년 2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철광석 운송에 이용되는 케이프사이즈 선박의 평균 일일 용선료는 1만3000달러선까지 하락하면서 지난해 11월 말 1만800달러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번 사고 전에도 철광석 광산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면서 해운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5년 11월5일 발레와 BHP빌리턴이 공동출자한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주 마리아나시의 철광석 광산에서 댐 붕괴 사고가 일어나 2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바 있다. 당시 케이프 운임은 공급과잉에 사고까지 더해지면서 2000달러선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1월5일엔 BHP빌리턴이 운영하는 서호주 광산에서 화물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해 해운 시황 침체로 이어졌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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