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컨테이너시장이 3위권 선사들의 경쟁으로 다시 들썩이고 있다. 중국 코스코가 홍콩 OOCL을 인수하며 일약 세계 3위 선사로 도약하자 프랑스 CMA CGM은 2만TEU급 초대형선 9척 발주로 맞대응하며 순위 탈환을 노리고 있다.
신흥 공룡선사들이 몸집 싸움을 본격화한 가운데 신용평가기관들은 국내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의 사업전략 설정을 두고 엇갈린 견해를 내놨다. 정부의 빠르고 집중적인 지원을 토대로 선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외형보다 수익성 확보와 재무안전성 강화가 먼저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7대 선사 과점체제 마무리
나이스신용평가는 한진해운 사태 1주년을 맞아 발행한 보고서에서 단기간에 대규모로 현대상선을 지원할 것을 주문했다. “주요 국가가 자국선사에 대규모 지원을 수년간 적극적으로 진행해 온 상황에서 한진해운 퇴출로 현재 국적 원양컨테이너선사와 글로벌 상위 선사 간 경쟁력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는 이유다.
반면 한국기업평가는 적극적인 비용절감 노력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정상적인 수익성을 확보하라고 현대상선에 조언했다. 대형선사로 성장하는 게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중형선사로 사업지위를 설정해 아시아와 미주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고 얼라이언스 내 역할과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재 세계 컨테이너시장의 변화를 보면 현대상선의 방향 설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상위권 선사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 과점화를 마무리 지은 상태다.
1위 기업인 덴마크 머스크는 독일 선사인 함부르크수드를 40억달러에 인수했다. 인수절차는 지난 4월 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얻으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EU는 함부르크수드를 유럽-중동, 유럽-중남미 등 일부 운송로에서 철수시킨다는 조건으로 승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함부르크수드가 머스크와 MSC가 결성한 2M에 합류하면서 얼라이언스(전략적제휴)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코스코는 지난 7월 홍콩선사인 OOCL 지분 100%를 63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2015년까지 선복량 기준 글로벌 6위권이었던 코스코는 지난해 2월 자국 경쟁선사였던 차이나쉬핑을 합병한 뒤 이번에 OOCL까지 인수하면서 세계 3위권으로 도약했다.
MOL NYK 케이라인 등 일본 3대선사는 7월 원양컨테이너사업부문을 통합한 ONE(Ocean Network Express)을 출범했다. 10위권 밖이던 일본선사들의 통합법인은 6위권 선사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경쟁적인 공급 확대 전략으로 7대선사의 시장점유율은 2015년 말 53%에서 올해 8월 67%로 상승했다. M&A가 마무리될 경우 시장점유율은 75%로 더 커진다. 아울러 올해 들어 해운 얼라이언스(전략적제휴)가 2M CKHYE O3 G6 등 4개 체제에서 2M 오션 디얼라이언스 3개 체제로 재편되면서 개별 얼라이언스 점유율도 높아졌다.
시장을 장악한 상위 7개선사의 과점화와 얼라이언스 축소 등으로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선사들의 교섭력이 높아졌으며 이 같은 시장 변화는 원양 컨테이너 운임의 상승 또는 안정화로 이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중화권, 자국 선사 지원 강화
나신평과 한기평은 이 같은 시장 변화를 상반된 시각으로 해석했다. 나신평은 해외 경쟁선사들의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단계적으로 인도되면 국적선사들의 경쟁력은 더욱 뒤처질 것으로 예상했다.
연장선상에서 중화권 선사의 최근 행보에 주목했다. 코스코의 급성장은 자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중국정부는 지난해 8월 자국 선사의 해외 M&A를 지원하기 위해 180억달러의 금융지원 제공을 발표했다. 중국선사는 이를 배경으로 7월 63억달러짜리 OOCL 인수를 확정했다. 중국은행은 이 거래에 65억달러의 브리지론을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도 지난해 11월 자국 컨테이너 선사인 양밍과 에버그린에 통상 대출금리인 6~7%보다 대폭 낮은 2.9% 금리의 19억달러 구제금융을 발표했다. 특히 재무안정성이 떨어진 양밍엔 16.9억대만달러 증자를 단행해 기존 33.3%인 정부지분율이 36% 수준으로 상승했다. 대만정부의 높은 지분율과 적극적인 지원정책으로 양밍의 경영환경은 크게 안정됐다는 평가다.
나신평은 경쟁국의 자국선사 지원에 대응해 국적선사는 대규모 물적 투자와 더불어 대외 신인도 회복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선박, 항만시설, 연계물류, 영업망 등의 대규모 투자와 별도로 컨테이너운송 서비스의 적시성, 안전성 등이 요구되고 화주와 거래처에 대한 신인도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신정부 출범 이후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해운업 관련 지원 내용은 대부분 기존 방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기평은 현대상선이 리스크 관리와 재무건전성 강화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해외 경쟁선사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익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은 올해 들어 전 세계 주요 컨테이너선사들의 영업실적이 크게 개선되는 상황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손실을 내 영업경쟁력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수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엔 코스코의 외형 확대 정책이 있다. 코스코는 OOCL 인수와 별도로 14척 23만4000TEU의 초대형선을 발주하는 등 대형화 경쟁을 본격화했다. 이른바 코스코 발(發) 치킨게임의 서막이다. 코스코의 행보에 가장 빨리 반응한 건 같은 오션얼라이언스 소속의 프랑스 CMA CGM이다.
세계 3위 선사 지위와 얼라이언스 맹주 자리를 동시에 내준 CMA CGM은 수 년째 검토만 해오던 2만2000TEU급 초대형선 발주를 9월 확정지었다. 2M이 아닌 오션얼라이언스가 컨테이너선 경쟁의 뇌관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기평은 “현대상선이 초대형 선박 건조와 M&A를 통해 단숨에 대형선사와 겨룰 위치에 올라선다는 건 언감생심”이라며 “얼라이언스 내에서 파트너 선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다각적으로 영업망을 공유하는 한편 시스템과 물류망 결합도를 높여 장기적인 공생 관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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