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이후 한국해운산업의 신뢰 붕괴로 국내 해운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해 컨테이너 선사들은 이에 더해 동남아항로의 심각한 운임 하락으로 올 한 해 농사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동남아항로 물동량은 시장 환경과 달리 꾸준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발 동남아행 해운물동량은 2007년 90만4500TEU에서 지난해 121만4800TEU 로 34.3% 늘어났다. 올해 1~3분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 성장한 95만500TEU를 기록했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주요 지역은 10%대 안팎의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선사들은 지속적으로 척박해지는 시장환경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선사들의 신규 진출과 파나마운하 확장 이후 쏟아지고 있는 대형선 공습이 시황 침체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지난 10년 새 국적선사 중 남성해운과 천경해운 동영해운 동진상선 범주해운 등이 동남아 시장에 새롭게 진출했다.
한진해운 대체한 근해선사들 집화경쟁 가열
최근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현대상선과 근해선사들로 구성된 미니얼라이언스가 대체선박을 대거 투입함으로써 새로운 경쟁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은 현대상선과 협력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항로, 인도네시아항로, 태국·베트남항로를 잇따라 개설했다.
환경 변화는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던 다른 선사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동진상선은 한진해운을 대신해 장금상선과 베트남 하이퐁 항로를 개설한다. 이달 29일부터 1060TEU급 컨테이너선 <페스코트레이더>가 처녀 취항에 나설 예정. 평택·인천 취항이 신항로의 특징이다.
남성해운은 고려해운과 손잡고 대만과 필리핀 마닐라를 잇는 노선에 진출했다. 이 항로는 인천과 대산항을 취항함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했다.
한진해운이 빠진 빈 자리를 근해 선사들이 채우면서 오히려 경쟁은 격화되는 형국이다. 선사 관계자는 “과거 한진해운은 원양항로가 주력이었기에 동남아항로를 서비스하더라도 기존 근해선사들과 심한 경쟁을 벌이진 않았다”며 “하지만 대체노선을 투입한 근해선사들은 주력이 동남아항로라 아무래도 집화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 같다”고 전했다.
국적근해선사 재무구조 중국, 대만보다 취약
공급과잉이 심해지면서 지난해 이후 동남아항로 운임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록 한일항로와 한중항로에 이어 지난 7월부터 운임공표제를 도입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화주들은 속속 시장운임보다 매우 낮게 신고되면서도 인터넷에 공표는 되지 않는 계약운임으로 갈아타고 있다. 운임공표제를 도입하면서 계약화주들의 자율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장운임만 인터넷사이트(www.sis.go.kr)에 공표하고 장기계약운임은 신고만 하도록 한 정부 규정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화주들은 특히 제도 도입으로 마이너스 운임이 금지되자 한중항로의 마이너스 운임을 플러스로 끌어 올리는 대신 동남아항로 운임은 인하해 줄 것을 선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일종의 풍선효과가 동남아항로에서 기승을 부리며 시장 하락을 부채질하는 모습니다.
그 결과 2014년까지 20피트 컨테이너(TEU) 기준 200달러대를 호가하던 이 항로 운임은 최근 5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2년 새 4분의 1 토막 난 셈이다. 정부에 신고한 공표운임 150달러에 비해선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취항선사 관계자는 “예전엔 하반기에 시장이 올라오면서 선사들의 수익성도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올해엔 하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시황이 지속될 경우 올해 많은 근해선사들이 흑자 경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국적선사들의 재무환경은 대만이나 중국선사에 비해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해선사들의 부채비율은 고려해운을 제외하고 모두 200~400%대에 이르는 반면 중국 SITC는 46.1% 대만 완하이는 13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사들은 시장상황이 악화되자 결국 운임회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근해선사들은 오는 29일부터 태국 방콕, 베트남 호치민·하이퐁 항로에 대해 TEU당 100달러의 운임인상(GRI)을 실시할 예정이다. 선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컨테이너 1개당 120달러대까지는 동남아항로 운임을 끌어올리겠다는 심산이다. 이 역시 공표운임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다.
자율적으로 실시되는 GRI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선사들은 홈페이지에 운임회복을 공표하는 한편 화주들에게도 인상 폭을 적극 공지하고 있다. 특히 고려해운 흥아해운 장금상선 등 동남아항로 주요선사뿐 아니라 경영위기 이후 동남아항로에서 저가영업에 치중해왔던 현대상선도 GRI 동참을 공식선언한 상태다.
만약 이번 운임회복이 성공한다면 지난 2012년 이후 4년 만에 동남아항로에서 운임회복의 결실을 거두게 된다. 선사 관계자는 “현재 근해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도 벼랑 끝에 선 상황”이라며 “GRI의 성공적인 정착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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