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최대 관건이라고 봐야죠.” 북방물류시장에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의 넋두리다. 이 업체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중앙아시아(CIS), 몽골 등을 중심으로 물류 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주요 포워더들은 현재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서방 경제제재와 유가하락 장기화로 인한 루블화 가치하락 등이 북방물류시장을 강타한 지 2년이 흘렀지만, 도무지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이 되면 나아지겠거니하고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포워더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다.
저유가·루블화 가치하락 장기화
산유국들의 유가 안정화 노력은 북방물류시장의 시황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다. 산유국이 석유 생산량을 늘리면 유가하락으로 인해 루블화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국제유가는 지난 2014년 배럴당 평균 100달러대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50달러대, 올해는 30달러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년 만에 약 70%가 하락했다.
궤를 같이해 올해 미국 달러당 루블화 가치도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1월 말에는 달러당 83루블을 찍으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해 러시아 경제에 강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이후 5월23일 현재 기준 러시아 루블은 66.99달러에 거래되며 소폭 상승했지만 2014년 1월 33루블 수준이던 점을 고려하면 루블화 가치는 반토막 났다.
러시아 정부와 기업의 대금지불 능력이 어려워지고, 현지 구매력이 크게 저하되자 국내 수출물량은 고꾸라졌다. 물량 급감은 이 지역을 주력으로 하는 포워더들의 수익성 악화로 번졌다. 지난해 유니코로지스틱스, 서중물류, 우진글로벌로지스틱스 등의 포워더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하락했다.
포워더들은 물량이 줄다보니 업체간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고 토로했다. 올해 진행된 입찰 역시 마이너스 운임 등 저가입찰이 대부분이었다고 한탄했다. 포워더 관계자는 “화주가 돈을 벌어야 물류기업이 수익을 거둘 텐데, 지금 상황에서 어느 누가 많이 줄 수 있겠느냐”며 “물량이 크게 줄어 마진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수금도 포워더들 사이에서 문제다. 루블화 가치하락으로 현지 수입업체들의 현지 구매력이 크게 떨어져 많은 업체들이 고생하고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방지역 화주들의 미수금 발생으로 일부 포워더는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방물류시장을 넘나드는 운송수단의 운임하락도 표면화됐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TCR(중국횡단철도)을 통한 한국발 카자흐스탄 알마티 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FEU)당 4000달러 초반으로 급락했다. 3년 전에 비해 1000~1500달러가 하락했다.
우즈베키스탄향 운임 역시 5000달러 중반으로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TSR(시베리아횡단철도) 운임은 루블화 가치하락으로 TCR 운임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TSR(시베리아횡단철도)을 이용한 러시아향 운임은 3000달러에 그쳤다.
화물이 채워지지 않다보니 운송사들은 화차를 채우기 위해 현지 출발을 지연하기도 했다. 일부 블록트레인(BT 전세화물열차) 계약도 62량에서 45량으로 줄였다. 손실을 떠안고서라도 출발지연을 막겠다는 의도다. 포워더 관계자는 “과거 80대20의 비율로 TCR 이용비중이 높았지만, 루블화 가치하락으로 상황이 역전돼 TSR 이용이 대폭 늘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북방물류를 타깃으로 하는 업체들에게 그나마 작은 불씨와 같다.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중단된 러시아와 몽골에 비해 그나마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우선 우즈벡에서는 ‘칸딤 가스처리시설’과 ‘탈리마르잔 복합화력발전사업’, ‘수르길 가스’ 프로젝트 등이 있다.
이밖에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정수장 등이 유망사업으로 꼽힌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대형 프로젝트가 미수금 문제와 루블화 가치 등 여러 요인으로 중단된 상황에서, 우즈벡과 투르크 지역에서 발생하는 프로젝트들이 그나마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컨 매매시장도 ‘요동’
북방물류시장의 침체는 컨테이너 매매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실정이다. 컨테이너 수요가 많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의 경기침체로 중고 컨테이너 매매업체들의 피해가 큰 상황이다. 특히 북방물류지역의 현지 구매력 저하로 이 곳으로 들어가는 컨테이너 박스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요저하로 컨테이너 박스가격도 급락했다. 2010년 약 3000달러에 달했던 40피트 컨테이너 박스는 올해 1000달러대를 밑돌고 있다. 신조 컨테이너 매매가격 역시 10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영국 포트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10년 2200~2500달러대를 유지했던 20피트 신조 컨테이너 박스는 최근 TEU당 1700~1800달러로 떨어졌다.
북방지역에서의 물량이 줄다보니 컨테이너 가격도 덩달아 하락했다. 물류비 절감을 위해 포워더들은 해운선사로부터 직접 중고 컨테이너 박스를 구입하는 일이 늘었다. CY(부두내 장치장)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꺼내오면 물류비가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 자체 가격이 많이 떨어져, 매매업체들이 상당히 힘들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워더들은 북부물류시장의 전망을 어둡게 내다봤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까지 시황침체가 계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북방지역 사업비중이 높았던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거나, 제2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포워더 관계자는 “포트폴리오 구성이 되지 않은 기업들은 더 많이 힘들 것”이라며 “극심한 침체 속에서 버티는 사람 만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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