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막 도착해 휴대전화 전원을 켜는 순간 벨이 울렸다. 공항대합실의 소음에 섞여 가물가물 들리는 저 너머 소리에 너무나 놀란 나는 주저앉을 뻔 했다.
“중학교 동창 미숙인데, 미국으로 이민 간 태이가 널 찾고 있어.” 그 즈음 나는 소식을 모르는 태이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었다.
“미숙아, 30년만인데 어떻게? 그것도 내 휴대 전화번호를!!!”
그리고 2014년 여름휴가를 미국의 시카고, 뉴욕거리를 그 친구와 함께 밤늦게 활보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이것은 내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 친구는 혀 꼬부라지는 발음이 아닌 우리가 헤어질 때 그대로의 한국 발음과 호기심 많고 똘똘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뿌리 내리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그 30년 안에는 바르질라 가족으로 생활해 온 20년이 있다. 회사는 꾸준히 다이내믹하게 변화해 왔고, 내 삶의 좌충우돌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나 자신이 친구와의 해후에서, 마치 숙제를 자신감 있게 제출하는 학생의 떳떳함 같은 것은 둘 사이 긴 시간의 공백이 주는 서먹함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2014년의 악몽, 세월호 사건. 정말 가슴을 쥐어뜯고, 어른으로서의 죄책감을 오랜 시간 동안 온 국민이 경험한 슬픈 기억은 두고두고 마음의 욕창으로 남겨졌다. 얼마 전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합동영결식에서 “고인들을 가슴에 묻고 일상생활에 돌아 갈 것이라고” 했다. 가슴에 묻을수록 떠나간 이들은 더 가까이 있다. 내 엄마처럼.
나는 내 몸의 혹덩어리 제거로 평생 엄마라 불리지 못할 처지가 됐다. 그 절망스러움은 생떼 같은 혈육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유가족들에 비할 수 없겠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내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용기 낸 것이 ‘장기기증등록’과 후원금을 내는 것이었다. 내 것을 기증하고자 할 때에도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닌 것 같다. 보존을 잘 해야 한다. 이제 내 몸은 소중하고 예쁘다.
2015년에 유가족들이 기운을 내시도록 그분들을 더욱 더 응원하자. 그리고 모든 사회분야에서 실질적으로 좀 더 견고한 안전시스템과 안전교육이 생활화 될 수 있도록 관계자 분들이 앞선 노력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젠 우리 모두 선진화된 마인드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2015년에는 규칙적인 봉사활동을 다시 시작해야지. 2015년에도 바르질라는 또 변화할 것이다. 그 변화에 대응해 바르질라코리아의 조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우리들의 저력을 다시 한 번 기대해본다. 또 그 변화 속에서 요구되는 학습의 기회에 기쁘게 참여해야지. 후배들이 업무적인 질문과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말고, 나의 노하우도 나눠야지.
이제 100세 시대란다. 허~, 또 다른 30년 후의 내 모습을 예측할 수 있을까? 행여 있을 지도 모를 기적 같은 또 다른 해후 앞에서 내 자신이 당당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야지. 오래 전 어느 기고문에서 처음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 라고 적어봤다. 다~시, 그래, 그 동안 수고했어.
나는 ‘여전히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 그것은 내 삶의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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