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9 16:38
외국은 해운위기 어떻게 극복했나
덴마크, 클러스터 효과 및 정부의 제도적 지원 위기 벗어나
●●●우리나라의 선박량은 1980년 514만GT에서 2008년 2,138만GR로 증가했다. 동기간 세계 전체 선박량은 4억1,991만GT에서 8억3,070만GT로 증가했다. 우리나라 선박량의 증가 속도가 세계 전체 선박량 증가속도보다 2배 이상 빨랐던 것이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얼마나 빠른 성장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지표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운산업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11,703까지 치솟았던 발틱건화물운임지수는 6개월만에 663까지 폭락했고 전 세계 많은 해운회사들이 지급불능상태에 빠졌다. 이에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해외의 사례를 들어 위기극복을 어떻게 해왔는지에 연구했다.
우선 일본은 서비스 및 기술혁신을 통해 불황을 극복했다. 1960년대 시작된 컨테이너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대됐다. 머스크, 에버그린, 하파그로이드 등 대형 컨테이너 선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위해 선박 대형화와 선대 확충을 가속화했다. 일본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도 계획조선이나 선박건조 보조금 제도를 운영하며 저가의 신조선 생산을 확대했다.
세계적으로 저가 생산 조선소가 확대되고 컨테이너 제조사와 리스사 증대로 컨테이너 박스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이런 현상은 컨테이너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춰 신규 해운 회사들의 컨테이너 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했다. 선박 금융시장에 대규모 자본이 유입돼 동아시아 국가의 국적 선대가 빠르게 증가했다. 이런 해운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결국 선복공급 과잉을 초래해 해운 불황을 야기시켰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의 해운기업들은 해운불황을 맞아 다각적으로 경영 및 재무구조 개선을 시도했다. NYK는 불황 극복을 위해 2단 적재 열차운송 서비스를 미국 내륙운송 서비스에 확대해 복합운송사업을 본격화했다. 기술혁신도 지속적으로 추구해 냉동컨테이너 운송서비스를 확대해 농수산물 윤숭시장 점유율을 높여 갔다.
컨테이너 터미널과 북미지역 물류센터 및 배송 기지도 확충했고 부동산업, 관광서비스업, 제조업, 항만창고업 등에도 진출하는 등 경영다각화로 불황대응력을 강화했다. 일본은 유럽과 달리 1980년대초 해운 불황기에도 원자재 수입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건화물선에 대한 물동량은 어느 정도 유지됐다.
불황기에도 대형 컨테이너 선사들은 해운동맹을 통해 운임협정을 체결해 운임상승을 시도했다. 이런 노력으로 태평양 및 대서양 항로의 선박공급량을 줄이고 동일한 운임요율을 적용해 9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운임이 상승했다. 해운동맹은 선주 상호간의 경쟁을 조절하고 장기간에 걸친 시장질서 및 운임의 안정화를 도모했다.
일본정부도 국적선대 유지와 보호를 목적으로 자국화물을 국적선에 유보하는 국적선화물유보제도와 국적선보조금지급을 실시했다. 일본은 운항보조금제도와 유사한 형태의 원양항로보조금제도를 시행한 적 있다. 또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계획 조선제도를 정책적으로 추진해 일본 해운기업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유럽은 1980년대 초 해운불황 이전에 전 세계적으로 항만시설이 확충돼 항만 생산성이 크게 증대했다. 특히 컨테이너 전용부두가 크게 늘어났다. 이후 물동량이 감소하고 선박공급이 증가하면서 해운불황이 찾아와 유럽국가의 정부는 보조금, 세금감면 등 직접적인 지원 정책을 추진했다.1980년대 대부분 선주들은 일시적인 계선을 통해 해운불황 극복을 시도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노후선박에 대해 1985~1986년 사이에 3천만DWT의 선박이 해체됐다. 운임이 하락하는 불황기엔 선박해체 가격과 중고선가도 동반 하락해 선사들은 선박 매각 결정이 더욱 어려워졌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해운산업에 대해 보호주의를 취하는 미국과 달리 해운기업 및 시장의 자율성, 독립성을 존중하며 해운 자유화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영국정부와 금융권은 해운불황기에 직접 개입이나 지원을 하지 않고 자유시장원리에 따라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연히 퇴출되도록 했다.
한편 영국 정부는 영국 내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신조 선박과 관련된 정부보증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심을 갖고 개선 노력을 시도했다. 1970년대 영국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선박을 대상으로 융자보증을 확대한 반면 불황기에 영국 해운 기업에게는 지원이 없어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정부의 신조선융자보증으로 해운기업의 부채가 증가해 보증 기한을 기존 7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해 3년간 정부보증에 관련된 부채 상환을 유예했고금리도 동결했다.
이런 영국 정부의 지원은 영국 조선소에 발주된 선박에 한정했고 중소 부정기선 선주에 적용됐다. 규모가 상당한 P&O, Ocean Transport, B&C 등 대표적인 영국 정기선사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이나 우대조치가 없었다.
이들 대형 해운기업에 대해서는 시장 자유경쟁과 공정을 요구했다. 1980년대 불황기 이후 중국이 선원공급을 확대하면서 고임금의 영국 선원 경쟁력이 크게 약화돼 영국 부정기선 사업이 크게 쇠퇴했다.
그리스는 1970년대 초 세계 최대의 선박 보유국으로 부상하며 세계 해운 1위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 선주들은 195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는 동안 지속적으로 중고선박을 매입하면서 선대를 확장했다.
1980년대 해운불황을 거치면서 외국 선주들이 은행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채권단에 넘어간 선박을 그리스 선주들은 저렴하게 매입했다. 동시에 1980~90년대에도 낮은 신조선가를 바탕으로 소규모의 신조선을 꾸준히 발주해왔다.
특히 그리스는 유조선 분야의 선대를 크게 늘렸다. 대형석유 메이저회사들이 원유운반선을 직접 소유하며 운항했지만 1980년대 중반 원유 물동량 감소와 선박공급 과잉현상으로 자사선의 처분이 본격화되면서 선박을 매각하는 대신 중장기 재용선계약을 체결했다. 그리스 선주들은 과거 건화물선 위주의 선대운영에서 유조선, 특수선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과감히 확대했다.
노르웨이는 1980년대 해운불황으로 운임이 바닥이었으나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로 오일달러가 넘쳐났다. 1983~1984년 건화물선이 대량으로 발주되고 1986년에는 이 신조선들이 대거 인도돼 해운선사들이 부도나고 중고선가는 급락했다. 이런 급매물에 대해 투기성이 가미된 자산투자가 성행했다.
노르웨이 선박투자회사제도인 K/S(Kommandit Selskap) 제도가 일반투자자들을 상대로 선백거래를 활성화해 노르웨이 K/S 투자사들의 보유 선박이 크게 늘었다. 또 노르웨이 정부는 1987년 6월에 제2선적제도인 노르웨이국제선박등록(NIS) 제도를 도입해 선대증강 및 편의치적 방지 노력을 강화했지만 K/S 펀드는 1992년부터 조세 혜택이 없어져 규모가 크게 줄었다.
덴마크가 1980년대 이후 해운불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머스크의 주도적인 역할, 클러스터효과(코펜하겐),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들 수 있다. 덴마크는 해운중심국가 건설을 위해 1996년 덴마크 해운클러스터 조성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덴마크 정부는외국 기업 및 해운 전문 인력을 자국에 적극 유치하고 유럽의 해운 선도 국가로 발돋움해 궁극적으로 글로벌 해운중심국가가 된다는 계획이다. 해운 관련 해상 및 육상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고 국적에 대한 제한보다 자유 해운시장 체제 형성을 도모하고 경쟁력있는 해운관련 산업에 대해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해 클러스터 효과를 증진시킨다는 계획이다.
핵심산업, 관련산업, 보조산업, 지원기구로 분류해 체계적으로 관리·지원·육성하는 방안이 모색됐다. 덴마크 클러스터 모델은 이후 독일, 노르웨이, 영국 등에서 벤치마킹된 세계적으로 성공한 유럽의 전형적 사례로 평가된다. 덴마크는 제2선적제도 등의 제도적 뒷받침으로 클러스터 효과를 제고해 해운산업을 국가 중심산업으로 발전시켜 블루 덴마크를 구현하고 있다.
이와함께 코펜하겐을 석유화물 교역 중심지로 발전시키고 조선소, 선용품공급, 건박관리 등의 클러스터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본유입을 통해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덴마크는 전폭적인 정부지원과 산업 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해운산업의 발전을 도모해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라인과 주요 선사들의 본사가 위치한 코펜하겐을 선사와 해운업계에 대한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허브로 건설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금융, 법률 및 보험 서비스 개선과 유럽 최고 수준의 선박운항 및 해운 보조 서비스 환경을 제공해 해외 유수 선사들을 유치할 계획이다.
머스크 이외에 주요 덴마크 선사들은 해외선사들과 제휴를 확대하고 선박운영과 관리의 전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톰(Torm)사는 풀(pool)제도를 석유제품선 시장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세계 주요 선사들과 풀 형성을 통해 톰은 선대 확장과 파나막스 및 아프라막스급 석유제품선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이 가능해졌다.
1990년대 초 LR1(파나막스급) 풀 설립을 시작으로 1998년 LR2(아프라막스급) 및 MR 풀을 형성해 선대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외 노르덴은 부정기선에 특화하며 1997~8년 동아시아 해상물량감소와 금융위기로 일본의 핸디막스급 건화물선들을 아주 저렴한 용선료로 선박매입조건부 장기용선을 했다. 이런 선박으로 2002년 중국발 건화물선 호황기에 큰 수익을 실현했다.
2008년 해운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독일 정부는 2009년 10월 하파그로이드에 12억유로에 대한 정부 대출보증을 제공했다. 독일정부의 대출보증은 하파그로이드가 금융권을 통해 조달할 계획인 12억유로에 대해 90%를 보증했다. 정부 보증 이외에 하파그로이드 주주들이 추가로 7억5천유로 출자 지원을 약속했다. 한편 2009년 3월 하파그로이드의 모회사인 TUI사는 하파그로이드의 통제권을 함부르크의 Albert Ballin 컨소시엄에 44억유로에 매각했다. 하파그로이드의 소유주인 함부르크 컨소시엄의 대 주주는 함부르크시 정부로 하파그로이드의 유동성 위기 이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해운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독일 선주들은 풀을 구성해 영업력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 선주들은 선박의 공유, 공동운항을 통한 풀제도를 적극 활용해 불황기에 생존과 리스크 분산을 위해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선사간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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