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5 09:30
판례/ “반쪽 침수가 부른 전체 배상?”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1.11자에 이어>
평석
1. 시작하며
이번에 소개하는 판례는 해상운송 중 컨테이너의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유입된 빗물로 일부 화물이 젖어 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해 판단한 사례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가. 주식회사 D는 주식회사 P에 통기성 필름 800롤을 DAP(Delivered at Place, 도착장소 인도) 조건으로 $78,840.32에 매도했다.
나. 주식회사 D는 피고(주식회사 H)와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고, 피고는 선하증권을 발행했다.
다. 주식회사 D는 원고(주식회사 B)와 해상화물보험계약을 체결했다 ($86,724.35).
라. 운송 중 화물이 훼손돼 검정을 실시했고, 그 원인으로는 이 사건 컨테이너의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유입된 빗물로 의해 위와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마. 이 사건 화물은 위생 상태가 중요한 유아용 위생용품의 재료로 쓰일 예정이라는 이유로 수하인이 화물 인수를 전부 거절해 폐기됐다.
3. 주요쟁점 및 법원의 판단
가. 주요쟁점
1)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 여부
2) 선하증권 이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귀속 주체
3) 손해배상의 범위 및 상법상 운송인의 책임제한 적용 여부
나. 법원의 판단
1)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 여부: 운송인은 자기 또는 선원이나 그 밖의 선박사용인이 운송물의 수령·선적·적부·운송·보관·양륙과 인도에 관해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했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멸실·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상법 제795조 제1항). 이 사건에서 피고가 이러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했다고 볼 만한 증거나 사정이 없고, 상법 제796조가 규정하는 운송인의 면책사유가 있다고 볼 증거나 사정 역시 없으므로, 피고는 운송인으로서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2) 선하증권 이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의 귀속 주체: 피고의 주장과 같이 주식회사 D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이 사건 선하증권에 화체돼 주식회사 P에 이전됐다고 보더라도, 주식회사 D가 DAP 조건에 따라 주식회사 P에게 이 사건 화물 전체의 가액에 관해 신용전표를 발행해 주식회사 P가 입은 손해를 전부 배상한 이상, 주식회사 D는 주식회사 P가 피고에 대해 갖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취득했다(민법 제481조). 그리고 원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라 주식회사 D에게 이 사건 화물 전체의 가액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위 손해배상청구권을 다시 대위취득했다. 따라서 원고가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취득하지 못했다는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3) 손해배상의 범위 및 상법상 운송인의 책임제한 적용 여부: 나아가 이 사건 화물의 특성 및 사용 용도, 이 사건 화물이 훼손된 경위 및 범위, 이 사건 보고서가 손해액에 관해 밝힌 의견 내용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화물 중 일응 침수되지 않았다고 보이는 부분 역시 습기 및 오염에 노출돼 사실상 제품소재로서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보이므로, 피고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은 이 사건 화물 전체의 가액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화물 전체의 가액인 78,840.32 달러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다만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은 당해 운송물의 매 포장당 또는 선적단위당 666.67 계산단위의 금액과 중량 1kg당 2 계산단위[국제통화기금의 1 특별인출권(SDR)]의 금액 중 큰 금액을 한도로 제한할 수 있고(상법 제797조 제1항), 이 사건의 경우 매 포장(40팰릿)에 의해 산정한 금액보다 중량(20,576kg)에 의해 산정한 금액이 더 큼은 계산상 명백하다. 또한 위 계산단위를 소송상 국내통화로 환산하는 시점은 실제 손해배상일에 가까운 사실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하는데(대법원 2001년 4월27일 선고 99다71528 판결), 당심 변론종결일(2016년 9월2일) 기준 1 계산단위는 1,563.76원임이 법원에 현저하다(www.imf.org).
4. 검토 및 시사점
본 판례는 상법 제795조 제1항에 따른 운송인의 책임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운송인은 자신과 선원, 기타 선박사용인의 주의의무 이행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운송물의 멸실·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이는 운송인에게 상당히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해상운송 실무에서 운송인은 운송 전 과정에서의 주의의무 이행에 대한 증거를 철저히 확보·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컨테이너 운송의 경우, 운송 과정에서의 컨테이너 상태, 온·습도 관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 유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본 판례는 선하증권의 이전과 손해배상청구권의 관계에 대해서도 중요한 법리를 제시한다. 선하증권이 수하인에게 이전돼도, DAP(도착장소 인도 조건) 조건 하에서 송하인이 수하인의 손해를 배상한 경우 민법 제481조의 변제자대위에 따라 손해배상청구권을 다시 취득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는 국제무역거래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DAP 조건의 법적 효과와 당사자들의 권리관계를 명확히 한 것으로, 실무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수출기업들이 운송 중 화물 손상 시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사건 화물의 손해의 판단에 있어서는, 단순히 외형적 훼손 여부가 아닌, 해당 화물의 특성과 사용 용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제시했다. 특히 이 사건 화물이 위생 상태가 중요한 유아용 위생용품의 재료로 쓰일 예정일 것이라는 특성상 일부 침수되지 않은 부분도 습기와 오염에 노출돼 제품 소재로서의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화물의 성질에 따른 손해 판단의 탄력적 적용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평가된다.
본 판례는 상법 제797조 제1항의 책임제한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 국제통화기금의 SDR을 기준으로 한 계산방식과 환산시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SDR을 국내통화로 환산하는 시점을 사실심 변론종결일로 한 것은 기존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1년 4월27일 선고 99다71528 판결 등)을 재확인해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포장단위당 한도와 중량당 한도 중 높은 금액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헤이그 비스비 규칙, 함부르크 규칙 등 국제해상운송 실무에서 널리 인정되는 원칙을 반영한 것으로, 우리나라 상법 뿐만 아니라 국제적 정합성을 고려한 판단으로도 평가할 수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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