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인이 선하증권을 발행할 때에는 운송물의 내용에 관하여 송하인으로부터 통지받은 종류, 수량, 중량 등과 운송물의 외관 상태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여 한다(상법 제853조).
그런데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받은 컨테이너 내 운송물의 내용을 개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을 때, 운송인은 추후 운송물이 선하증권의 기재와 다름으로 인한 법적책임을 면하고자 “송하인에 의하면(영문으로는 said to contain)” 또는 “송하인이 적하 후 수량을 셈(영문으로 shipper’s load & count)”의 형태의 문구를 선하증권 전면에 기재하거나, 선하증권의 전면 혹은 이면에 약관으로 운송물의 내용 등에 관하여 “운송인이 알지 못함(영문으로 unknown clause)”을 표준화된 형태로 기재하기도 한다.
선하증권 전면 및 이면에 기재되는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상기 두 가지 기재 방식은 효력에 있어 차등이 없는 것으로 이해되며, 실무상으로도 구분 없이 모두 ‘부지약관’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운송인은 위와 같은 부지약관을 왜 기재하는 것일까?
컨테이너로 운송이 이루어질 때, 현실적으로 운송인에게 운송물의 포장을 뜯어서 그 내용물과 관련한 사항을 모두 파악하여 기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운송인이 전달받은 운송물의 내용을 무조건 신뢰하여 그 내용을 기재한 선하증권을 발행하면, 선하증권의 추정적 효력에 의하여 그 내용대로 화물이 선적되었다고 보게 될 것이고, 만일 선적될 당시부터 화물에 하자가 있었던 경우 운송인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과실과 무관하게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운송인은 자신의 법적 책임을 경감하고자 부지약관을 관행적으로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과 송하인 사이에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개품운송계약이 체결되고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되고,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에 대하여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혹은 선적한 것으로 보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인으로서 책임을 진다(상법 제854조, 소위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
이처럼 상법 제854조에서 운송인과 송하인 혹은 운송인과 선하증권의 소지인 사이에 특별한 채권적 효력을 인정함에 따라, 운송인이 기재하는 부지약관이 상기 채권적 효력에 반하는 성질이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위 대립에 관하여, 대법원은 “선하증권상에 위와 같은 부지문구(약관)가 기재되어 있다면, 이와 별도로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되었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다 하여 이에 의하여 컨테이너 안의 내용물의 상태에 관하여까지 양호한 상태로 수령 또는 선적된 것으로 추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경우 선하증권 소지인은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인도하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01년 2월9일 선고 98다49074 판결, 2008년 6월26일 선고 2008다10105 판결 등 참조).
위 대법원 판결을 보면, 선하증권에 기재된 내용은 송하인이 제시한 바대로 적었을 뿐이고 운송인이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는 취지로, 부지약관의 효력을 인정할 시 손해의 입증책임의 법리는 원칙대로 돌아가 송하인이 선적시의 상태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을 만들어 놓고, 그러한 영역 내에서 부지약관이 유효할 수 있다는 점을 판시하여 대립하는 부분을 조화롭게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해상운송의 관행상 운송인이 부지약관을 기재하는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할 시 타당한 해석으로 사료된다.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 경험을 쌓았다. 배에서 내린 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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