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자에 이어>
<평석>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사안은 예인선이 사석(沙石)을 적재한 부선을 예인해 목적항으로 항해하던 중 강한 바람을 만나 출항지에서 2.5마일 거리에 있는 다른 항구로 침로를 변경해 항해하던 중 약 1.5m인 저수심대를 지나다 예인선이 좌초했고, 선장이 예인선으로 부선의 이초작업을 시도하다 예인줄이 끊어져 결국 부선이 최초 좌초된 지점에서 약 300m 떨어진 지점까지 표류해 부선이 파손된 사안에서, 부선 소유자가 예인선 소유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2. 사실관계의 요약
원고는 이 사건 부선의 50/100 지분 소유자이고, 피고들은 이 사건 예인선을 공유하고 해상운송업 등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주식회사 H(이하 ‘H’라고 한다)은 사석 운송업무를 위해 2018년 7월1일 원고로부터 이 사건 부선을, 2018년 7월11일 피고 D으로부터 이 사건 예인선을 각 용선했다(이하 이 사건 예인선에 관한 용선계약을 ‘이 사건 용선계약’이라고 한다).
이 사건 예인선의 선장은 2018년 7월22일 울산 ○○항에서 이 사건 예인선으로 사석 약 1,700㎥가 적재된 이 사건 부선을 예인해 포항시 J 부두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던 중 선장은 이 사건 부선이 좌우로 요동하고 바람이 강해지자 더 이상의 항해가 어렵다고 판단해 정박을 위해 당시 위치에서 약 2.5마일 거리에 있는 △△항으로 침로를 변경해 항해하던 중 이 사건 부선은 수심 약 1.5m인 저수심대를 지나다가 △△항 인근 해상에서 좌초됐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 선장은 이 사건 예인선의 엔진을 이용해 자력으로 이 사건 부선의 이초작업을 시도했는데, 이 사건 예인선에서 이 사건 부선에 연결된 예인줄이 끊어짐에 따라, 이 사건 부선은 최초 좌초된 지점에서 약 300m 떨어진 지점까지 표류해 △△항 인근 육상으로부터 약 25~30m가량 떨어진 암초가 산재돼 있는 곳에 좌초됐다. 결국 이 사건 부선은 선박구난업체에 의해 구조돼 포항에서 화물을 하역한 뒤 부산으로 예인돼 수리됐다.
원고는 이 사건 부선의 공유자들로부터 손해배상채권을 양수해 피고들에게 이 사건 부선의 파손으로 인한 수리비 등 244,528,940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3. 법원의 판단
가. 이 사건 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해
우선 이 사건 용선계약의 실질을 파악해야 한다. 법원은 이 사건 예인선의 점유,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임면권과 이 사건 예인선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이 피고들에게 있으므로, 이 사건 용선계약은 선원부 선체용선계약 또는 특수한 용선계약이 아니라 상법상 정기용선계약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법원은 이 사건 사고는 선박 항행 및 관리에 관한 해기적 사항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므로 이 사건 사고에서 선장의 실질적 사용자는 피고들이라고 했다. 법원은 이 사건 사고는 상사적 사항이 아닌 해기적 사항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점, 이 사건 용선계약에서 용선자가 선장 등에 대한 교체요구권을 가지지 않은 점, 선장이 이 사건 예인선의 운항 등 해기적인 사항에 관해서는 용선자의 지시를 받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이 사건 사고에서 선장의 사용자는 용선자가 아닌 피고들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참고로, 대법원 2003년 8월22일 선고 2001다65977 판결, 대법원 2009년 6월11일 선고 2008도11784 판결에서 법원은 타인의 선박을 빌려 쓰는 용선계약을 선박임대차계약, 정기용선계약 및 항해용선계약으로 구분했다. 법원은 선박의 점유,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임면권, 그리고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이 모두 선주에게 있는지 여부에 따라 용선계약을 위와 같이 분류하고 있으며,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이 사건에도 그대로 유지됐다.
참고판례 대법원 2003년 8월22일 선고 2001다65977 판결
정기용선계약에 있어서 선박의 점유,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임면권, 그리고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은 모두 선주에게 있고, 특히 화물의 선적, 보관 및 양하 등에 관련된 상사적인 사항과 달리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적인 사항에 관한 한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휘·감독권은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로지 선주에게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행 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용선자가 아니라 선주가 선장의 사용자로서 상법 제845조 또는 제846조에 의한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고, 따라서 상법 제766조 제1항이 유추적용될 여지는 없으며, 다만 정기용선자에게 민법상의 일반 불법행위책임 내지는 사용자책임을 부담시킬 만한 귀책사유가 인정되는 때에는 정기용선자도 그에 따른 배상책임을 별도로 부담할 수 있다.
참고판례 대법원 2009년 6월11일 선고 2008도11784 판결
[1] 정기용선계약은 선박소유자 또는 선체용선자(이하 ‘선주’)가 용선자에게 선원이 승무하고 항해장비를 갖춘 선박을 일정한 기간 동안 항해에 사용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용선자가 이에 대해 기간으로 정한 용선료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으로서 용선자가 선주에 의해 선임된 선장 및 선원의 행위를 통해 선주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을 요소로 한다. 이는 선박 자체의 이용이 계약의 목적이 돼 선주로부터 인도받은 선박에 자기의 선장 및 선원을 탑승시켜 마치 그 선박을 자기 소유의 선박과 마찬가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관리권을 가진 채 운항하는 선체용선계약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편,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행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용선자가 아니라 선주가 선장의 사용자로서 구 상법(2007년 8월3일 법률 제85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45조 또는 제846조에 의한 배상책임을 부담한다. 그러나 정기용선자에게 민법상의 일반 불법행위책임 내지는 사용자책임을 부담시킬 만한 귀책사유가 인정되는 때에는 정기용선자도 그에 따른 배상책임을 별도로 부담할 수 있고, 정기용선된 선박의 항해와 관련해 용선자에게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른 형사책임을 부담한다.
나. 이 사건 예인선 소유자의 사용자책임 발생
선박 운항을 관리하는 선장은 선박의 출항 전에 항로 및 항해계획의 적정성과 선박의 감항성 등을 점검하고, 항해 중 수심이나 수중 장애물 등 항해 위험요인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으로 선박을 안전하게 조선해야 할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 이 사건 사고에서 선장은 ○○항을 출항하면서 항해계획 수립, 감항성 점검 등 필요한 사전점검을 하지 않았고, △△항으로 침로를 변경한 이후에는 이 사건 사고현장이 수심이 얕고, 암초가 산재돼 있어 선박의 좌초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해수면 위로 노출된 장애물이 있는지 육안으로만 확인하면서 수심이 얕은 연안쪽 해역으로 항해했으므로 법원은 선장이 위와 같은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로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따라서 법원은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행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선박소유자의 선장에 대한 사용자로서의 지위는 그 정기용선기간 중에도 유지되므로, 선박소유자는 민법 제756조에 따른 사용자책임을 부담한다고 했다. 참고로, 이 사건 용선계약에서 용선자가 책임을 지기로 했다거나 이 사건 사고에 용선자가 적극적으로 과실을 범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용선자에게 선장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19년 6월20일 선고 2018가단206464 판결 - 한편,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행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용선자가 아니라 선주가 선장의 사용자로서 구 상법(2007년 8월3일 법률 제85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845조 또는 제846조에 의한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지만, 정기용선자에게 민법상의 일반 불법행위책임 내지는 사용자책임을 부담시킬 만한 귀책사유가 인정되는 때에는 정기용선자도 그에 따른 배상책임을 별도로 부담할 수 있다(대법원 2009년 6월11일 선고 2008도11784 판결, 대법원 2003년 8월22일 선고 2001다65977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이러한 법리는 정기용선계약의 선박소유자나 선장의 지휘·감독을 받는 선원이 선박운항상의 과실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도 같다. 즉, 용선자는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 다만 용선계약에 의해 용선자가 책임을 지기로 한 경우, 또는 용선자가 적극적으로 과실을 범했거나 용선선박의 운항업무를 담당했을 때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용선자가 자신의 행위로 인한 선원의 사망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보아야 한다.
다. 이 사건 부선이 상법 제878조의 선박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에게 민법 제756조에 따른 사용자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나, 만일 원고가 청구원인으로 상법 제878조를 특정한 경우 원고의 청구가 인용될 수 있을지 문제된다. 대법원 2010년 4월29일 선고 2009다99754 판결에서 법원은 “선박의 충돌이란 2척 이상의 선박이 그 운용상 작위 또는 부작위로 선박 상호 간에 다른 선박 또는 선박 내에 있는 사람 또는 물건에 손해를 생기게 하는 것으로 직접적인 접촉의 유무를 묻지 아니하며, 예인선과 자력항행이 불가능한 부선인 피예인선 상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라는 판시해 자력항행이 불가능한 부선도 선박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선박법 제1조의2 제1항에서 선박을 “수상 또는 수중에서 항행용으로 사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배 종류를 말하며…” 라고 정의하고 제3호에서 부선을 선박에 포함시키고 있으므로 자력항행 여부와 무관하게 부선도 선박의 일종으로서 이 사건 사고도 상법 제878조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4. 결론에 대신해
결과적으로 원고는 일부 승소했다. (피고들이 이 판결에 항소했다가 항소심이 피고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 사건 용선계약은 용선자가 선주로부터 단순히 선박 그 자체를 임차하는 것이 아니라 선주에 의해 선임된 선장 및 선원의 행위를 통해 선주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을 본질적 요소로 하고 있다. 따라서 용선자가 선장에게 실질적인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박 항행 및 관리에 관한 해기적 사항은 선주의 지배·관리 영역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해기적 사항에 대한 선장의 과실로 발생한 이 사건 사고에 대해 피고에게 사용자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단은 일응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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