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영국해상보험법상의 근인설에 따른 근인관계보다 그 범위가 넓은 광의의 개념이라는 최근의 판례를 중심으로
<2.7자에 이어>
다. 부보위험(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보험목적물에 손해가 발생한 것인지 여부
(1) 영국해상보험법 제55조 제1항에 의하면, 보험증권에서 달리 정하지 아니하는 한, 손해가 담보위험을 근인(proximate cause)으로 하는지 여부가 보험자의 책임 유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여기서 근인이란 손해와 가장 시간적으로 근접하는 원인(proximate in time)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의 발생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원인(proximate in efficiency)을 말한다. 무엇이 근인이 되는가는 전반적인 관점에서 광범위한 상식에 따른 법원의 사실인정 문제이다[AA v. AB (1918) A.C. 350 등 참조].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 제4조 제1항 제1호에서 부보위험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해상 고유의 위험(perils of the seas)이란 해상에서 보험의 목적에 발생하는 모든 사고 또는 재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상에서만(of the seas) 발생하는 우연한 사고 또는 재난만을 의미한다. 우연성이 없는 사고, 예컨대 바람이나 파도에 의한 통상적인 손상, 자연적인 소모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영국해상보험법과 관습에 의하면, 보험의 목적에 생긴 손해가 그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한다. 선박에 바닷물이 침수(incursion of sea-water)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이를 해상 고유의 위험에 의한 손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피보험자는 비일상적인 기상조건 등 우연한 사고로 인해 선박이 침수됐음을 증명해야 한다[AC v. AD, AE (1985) 1 W.L.R 948 참조]. 그 증명의 정도는 피보험자와 보험자가 서로 상반된 사실이나 가설을 주장할 경우, 그 양자의 개연성을 비교해 이른바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에 의한 증명으로 충분하다. 이는 사고 원인에 관한 사실이나 가설의 개연성을 교량했을 때(on the balance of probailities), 보험사고가 부보위험에 의해 일어났을 개연성이 그렇지 않을 개연성보다 우월할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 만일 부보위험과 미부보위험 또는 부보위험에서 제외되는 위험(a non-insured or an excepted peril) 중 어느 것이 보험사고의 근인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경우에는 피보험자가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위 AE 판결 참조)(이상 대법원 2017년 6월19일 선고 2016다270407 판결등 참조).
한편, 영국 해상보험법 제55조 제2항 a호는 ‘보험자는 피보험자의 고의적 불법행위에 기인하는 모든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보험증권에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 한 보험자는 담보위험을 근인으로 해 발생하는 모든 손해에 대해 비록 그 손해가 선장이나 선원의 불법행위 또는 과실이 없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그 책임을 져야한다(The insurer is not liable for any loss attributable for any loss attributable to the wilful misconduct of the assured, but unless the policy otherwise provides, he is liable for any loss proximately caused by a peril insured against, even though the loss would not have happened but for the misconduct or negligence of the master or crew)’고 규정해, 고의의 불법행위가 아닌 이상 손해의 발생에 선장이나 선원의 과실이 개입됐다고 하더라도, 보험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2) 이 사건 사고는, ① 이 사건 선박의 운항 도중 해양 기상상황의 악화에 따른 강풍과 높은 파도로 인해 이 사건 선박과 부선들을 연결한 예인줄(線) 간의 잦은 간섭현상이 발생해 부선 중 한 척의 예인줄이 끊어져 그 부선이 이탈했고, ② 이에 선장 및 선원들이 충분한 충돌방지조치 없이 이탈된 부선을 회수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선박이 부선들과 충돌해 선박 외판에 파공이 발생했으며, 그 파공을 통해 타기실로 해수가 유입됨으로 인해 타기장치의 고장으로 조종불능상태에 빠졌다가, ③ 며칠 후 강풍과 높은 파도에 의해 선박의 선미부가 풍상(風上)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파공 부위로 해수가 유입돼 선미부가 점차 침하되고, 파공 부위가 수면 아래로 잠기면서 대량의 해수가 일시에 타기실에서 홀드와 샤프트터널을 거쳐 기관실까지 유입돼 침몰에 이르렀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봄이 타당하다.
(3) 이 사건 선박은 비일상적인 기상조건과 선장 및 선원들의 과실이 경합해 부선들과의 충돌로 생긴 파공에 대량의 해수가 유입돼 침몰한 것으로서 담보위험인 비일상적인 기상조건이 근인이 되는 우연한 사고로 인해 침몰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 제6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서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의 부보대상에 해당하고, 그 손해의 발생에 선장 등의 과실이 개입됐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 그러므로 피고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에서 정한 보험금과 공제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라. 고의침몰 개연성에 관한 피고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
이 사건 선박이 원고의 지시에 따른 선장 F 등의 고의적인 행위로 침몰됐을 개연성은 희박하거나, 적어도 그와 같은 개연성보다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기상악화로 인해 부선들과 이 사건 선박의 충돌로 발생한 파공을 통한 침수로 말미암아 침몰했을 개연성이 더욱 우월한 정도로 증명됐다고 봄이 타당하다.
마. 이 사건 선박의 엔진 출력에 관해
이 사건 선박에 장착된 엔진 2기의 실제 출력이 1기당 2,500마력으로 총 5,000마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갑 9, 14, 29, 30, 38, 39, 45, 56 내지 59, 72, 74, 80 내지 83호증의 각 기재 또는 영상과 제1심법원 및 이 법원의 사단법인 R회장에 대한 각 사실조회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해 인정되는 사실 및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선박의 엔진 출력이 1기당 3,600마력 총 7,200마력이라고 추단될 만한 다수의 증거 및 정황이 아울러 존재하고, 달리 원고가 엔진 출력에 관한 선박공부상 기재에 대한 허위의 외관을 작출했다고 볼 직접적인 자료가 없는 이상, 위 인정사실 및 피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선박의 실제 엔진 출력이 총 5,000마력에 불과함에도 원고가 선박공부 등에 7,200마력으로 허위 기재되도록 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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