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자에 이어>
마. 결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법행위청구소송에 대한 국제재판관할은 분쟁사안과 대한민국과의 실질적 관련의 유무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실질적 관련’이라 함은 우리나라 법원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 또는 분쟁 대상이 우리나라와 관련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되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실질적 관련 유무를 판단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경우 그 판단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위에서 살펴본 관련판례들, 특히 미쓰비시 강제징용사건에 대한 2012년 대법원판결과 이에 따른 2013년 부산고등법원판결은 실질적 관련성 및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에 관한 일응의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불법행위분쟁의 국제재판관할 문제는 국제사법 및 민사소송법 관련규정 및 판례의 취지를 종합해 사안별로 개별적,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국제적 불법행위와 준거법
가. 불법행위지법주의
국제사법 제32조 1항은 “불법행위는 그 행위가 행해진 곳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해 불법행위의 준거법에 대한 불법행위지법주의, 즉 행위지원칙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준거법의 사후적 합의가 있는 경우(위 법 제33조),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국가안에 상거소가 있는 경우(제32조 2항),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법률관계에 관해 별도의 준거법이 존재하는 경우(32조3항)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위지법이 준거법이 된다.
대법원 82다카1533 전원합의체판결은 불법행위지의 개념과 관련해, 행위지와 결과발생지가 상이한 경우에 대해 “섭외사법 제13조 제1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로 인해 생긴 채권의 성립 및 효력은 그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여기에서 원인된 사실이 발생한 곳이라 함은 불법행위를 한 행동지 뿐만 아니라 손해의 결과 발생지도 포함하므로 화물을 운송한 선박이 대한민국의 영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손해발생이 계속되였다면 대한민국도 손해의 결과발생지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이 경우 대한민국의 영역에 이르기 전까지 발생한 손해와 그 영역에 이른 뒤에 발생한 손해는 일련의 계속된 과실행위에 기인한 것으로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통틀어 그 손해 전부에 대한 배상청구에 관해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할수 있는 것이다”라고 판시해 지금은 개정된 구섭외사법 규정에 대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불법행위지를 행동지뿐만 아니라 손해의 결과발생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나. 불법행위지주의의 예외
국제사법 규정에 의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국가안에 상거소가 있는 경우 그 국가의 법이 준거법이 되고(제32조 2항),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법률관계에 관해 별도의 준거법이 존재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의 준거법이 준거법이 된다(32조3항). 국제사법이 상거소에 근거한 속인법의 채택과 법률관계에 따른 종속적 연결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국제사법은 선박충돌의 경우 충돌지법에 의하되 공해상의 충돌의 경우 선적국법(가해선박과 피해선박의 선적국이 다른 경우 가해선박의 선적국)에 의하도록 규정하고(제61조),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그 침해지법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제24조), 이 법에 의해 지정된 준거법이 해당 법률관계와 근소한 관련이 있을 뿐이고 그 법률관계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른 국가의 법이 명백히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 다른 국가의 법에 의하도록 규정해 준거법지정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고(제8조), 외국법에 의해야 하는 경우에 그 규정의 적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명백히 위반되는 때에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공서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므로(제10조), 이러한 규정들이 적용되는 경우 그 범위에서 불법행위지주의는 그 적용이 없게 된다.
다. 준거법에 의한 손해배상액의 산정과 제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액의 산정은 불법행위의 준거법에 따라야 할 것이나, 국제사법은 외국법이 적용되는 경우에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그 성질이 명백히 피해자의 적절한 배상을 위한 것이 아니거나 또는 그 범위가 본질적으로 피해자의 적절한 배상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는 때에는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제32조 4항). 그러나, 위 조항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내국관련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라. 외국법의 적용과 공서의 원칙
앞에서 살펴본 국제계약분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법행위분쟁의 경우에도 외국법이 적용돼야 하는 경우 외국법의 적용이 우리나라의 공서(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명백히 반하는 경우 국제사법 제10조의 공서의 원칙에 따라 그 적용을 배척해야 할 것이며, 여기서의 공서개념은 민법 제103조의 국내적 공서보다 좁은 국제적 공서의 개념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미쓰비시 강제징용사건에 대한 2012년 대법원판결이 위 공서의 원칙을 적용해 일본법에 따라 구 미쓰비시가 해산하고 피고가 설립됐다는 이유로 피고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해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대한민국법을 적용해 구 미쓰비시와 피고의 동일성을 인정한 점은 앞에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V. 미쓰비시 강제징용판결의 핵심내용 및 의의
1. 위 판결의 의미
미쓰비시 강제징용 판결은 일제하에서의 강제징용에 대한 외국기업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로서 역사적인 판결로 평가되며, 국제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그 파장이 큰 획기적인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위 판결은 국제소송에 대한 법리의 중요부분이 대부분 판결이유에 포함돼 있어 국제소송법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나,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정치 외교 문제, 역사 문제, 보상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위 판결을 학문적으로만 검토하고 평석하는데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2. 위 사건의 진행경과 및 내용
위 사건은 일제 강제징용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일본법원에 손해배상 및 미지급임금청구소송을 제기해 패소한 후 부산지방법원에 다시 동일한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사건으로, 2007년 1심법원인 부산지방법원은 대한민국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은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 소가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또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국교가 수립된 1965년 6월22일부터 10년이 훨씬 경과해 제기돼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금채권과 임금채권은 시효로 소멸했다는 취지로 판시하면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고, 2009년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도 대한민국 법원이 일본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고 일본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반한다고도 할 수 없어 일본판결은 대한민국에서 그 효력이 승인되므로 일본판결의 기판력에 의해 힌국법원이 그와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해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한 일본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임이 분명하므로 우리나라에서 위 일본판결을 승인해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면서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위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그후 2013년 환송심인 부산고등법원은 위 대법원의 판결취지에 따라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해 원고들 일부승소로 판결을 선고했고(원고들은 당초 피해자 1인당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 1억 원 및 미지급 임금 100만 원을 청구했다가 위 환송심에서 미지급 임금청구 부분은 취하하고 피해자 1인당 위자료 1억 100만 원을 구하는 것으로 청구취지 및 원인을 변경했다), 위 판결은 2018년 대법원판결로 최종 확정됐다.
3. 위 판결의 핵심사항
위 판결의 핵심사항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나라 법원은 피고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고, 불법행위 청구에 대한 준거법은 대한민국법이 된다.
2)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판결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해 승인될 수 없다.
3) 일본법에 따라 불법행위자인 구 미쓰비시가 해산하고 새로이 피고가 설립됐다고 하더라도 그 동일성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법의 공서에 반해 허용될 수 없고 대한민국법에 의하면 그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다.
4) 피고가 소멸시효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5) 한일간에 청구권 포기 등의 조약이 있더라도 이러한 국가간의 조약으로 개인의 권리를 소멸시킬 수 없다
6) 피징용자 1인당 위자료액수는 8천만으로 정하고 지연손해금은 변론종결시점부터 기산한다.
4. 위 판결의 의의
위 미쓰비시 강제징용 판결은 국제재판관할, 준거법, 공서의 원칙 등의 국제소송에 대한 일반 법리는 물론 국제적 불법행위책임의 판단기준, 외국판결의 승인 집행 문제, 시효문제 등에 대한 우리 법원의 입장을 자세히 설시하고 있어 그 의의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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