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커피숍이 오늘따라 분주하다.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혹은 광장의 노란 물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매장 안이 욱적북적댔다. 20분 전 이순정이 합류해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진실이 규명돼야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요?”
이순정은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힘주어 말했다. 양원석은 현실적이지 못한 답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총체적 부실인데, 파고든다고 별수 있나요. 노환인데 수백만 원을 들여 종합검진하는 거와 다를 바 없지요.”
“배상은 정의를 성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진실이 규명돼야 그 바탕 위에서 배상액을 결정할 수 있는 거고요.”
이순정의 말에 양원석은 단호하게 응수했다.
“순정 씨, 배상액은 벌써 결정됐습니다.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걸요.”
화물차가 질주하니 승용차는 알아서 피하라는 식의 주장이다. 이순정은 에펠탑에서 시위하듯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건 피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체의 권리라니까요.”
“아니, 특별조사위원회는 가동도 못하고 있는데… 난 트라우마 치료받기 전에 돌아버릴 것 같아요.”
대화하는 두 사람이 너무 진지해 서정민은 일부러 커피잔을 그들 쪽으로 살짝 밀었다. 커피를 마시며 열기를 가라앉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의 배려와 상관없이 논쟁은 계속됐다. 이순정이 또 스타트를 끊었다.
“배상금 문제는 우리 사회의 품격 문제죠. 돈과 바꿀 수 없는 인간 존중의 가치문제고요.”
프랑스에서 인간 심리 디자인을 공부했나. 이순정은 속이 찬 목소리를 내었다. 서정민이 한마디 하고 싶어 나섰다.
“아까 노란 띠에 적힌 것 봤지요. 우리의 공통 감정은 ‘잊지 말자’입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을 공통의 것으로 현재화해서 함께 추모하는 게 바로 기억이지요. 망각에 맞서 올바로 기억할 때만 우리는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순정은 서정민의 눈을 쳐다보았다. 지성이 살아있었구나. 그가 트라우마라는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같이 보였다. 좋은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저녁 먹고 영화 봐요. 서 사장님. 그리고 양 선생님도 같이요.”
끝없는 대화를 재치 있게 멈춘 이순정은 역시 명석하다. 양원석은 저녁은 몰라도 영화관까지 같이 갈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심리치료를 구실로 이순정의 제안을 사양했다. 내일 심리치료 예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날 영화까지 못 볼 만큼 대단한 일정은 아니었다.
저녁식사가 늦게 끝났다. 이순정은 영화를 포기할 만했지만 끈질기게 제안했다.
“심야영화도 있잖아요.”
영화 <뷰티풀라이>는 삶을 포기하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서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단 내전을 피해 조국을 탈출한 5남매가 험난한 미국 이민생활을 하면서 혈육을 만나는 장면은 상처받은 세월호 피해자에게도 용기를 줄 거라고 각본을 읽듯이 그녀는 말했다. 티켓을 구입한 그녀는 커다란 팝콘 통을 겨드랑에 끼고 왔다. 서정민은 놀랐다.
“이렇게 큰 통을?”
“서 사장님, 완전 맹탕이시네. 저기 젊은 사람들 보세요. 보통 이 정도예요.”
‘글쎄, 그러네.’ 다들 머리통보다 큰 통을 들고 있었다. ‘우리가 20대야?’라고 말하려다가 그녀의 기분을 맞추려고 서정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팝콘 통에 손이 들어갔을 때 서정민은 멈칫했다. 팝콘 대신 이순정의 손이 잡혔던 것. 이순정의 몸속 발전기에서 만들어낸 전류가 손가락을 타고 서정민 심장으로 흘러들어 오는 것 같았다. 어둠을 통과하는 그녀의 눈빛을 느꼈다. 순간의 어색함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래서 통이 컸구나.’ 서정민은 혼자 미소를 머금었다.
여자의 머리카락 향내가 그의 어깨를 타고 코끝을 건드렸을 때 그는 그동안 여자를 잊고 지내왔음을 깨닫고 스스로 놀랐다. 심야라는 시간적 암전 상황과 자신을 어떻게 타협시켜야 하는지 적잖이 난감해지기도 했다. 그의 왼쪽 어깨에 약간의 땀이 뱄다. 그녀가 머리를 그에게 기댔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한 시간쯤 되자 그녀는 평형수가 작동하지 않는 배처럼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세월호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혼자 생각에 그는 웃었다. 이제 ‘기운다’는 단어만으로도 불안이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느낌이다. ‘전문가적 노이로제’, 그렇게 작명하고 의식적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두 사람은 감상문을 교환했다.
“고통스러운 삶에서도 희망을 봤잖아요.”
이순정이 자신의 감상에 동의하라는 듯 서정민의 팔을 잡았다. 그렇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새벽에 영화관을 나온 그들은 집으로 가는 대신 광화문 사무실로 갔다. 남은 밤을 와인으로 붉게 보낼까 하다가 딱, 그래 딱 한 잔씩만 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야전침대와 3인용 소파가 있어 밤을 보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야전침대는 두 사람을 수용할 만큼 충분한 공간과 상당한 무게를 견뎌내는 충분한 탄력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문법이 아닌 불문법에 의거해 각자 따로 침대와 소파를 쓰기로 했다. 서정민의 역할은 그녀를 안아서 야전침대에 눕히는 것까지가 전부였다. 이팔봉 회장이 부부의 날인 ‘5월 21일’을 기념해도 좋다고 허락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두 사람은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1주년 4월 16일 서울 도심이 애도와 분노가 가득 찬 분향소로 변했다. 저녁 7시 서울광장에서는 유가족 200여 명을 비롯해 3만 명이 모인 가운데 ‘4.16 약속의 밤’이란 이름을 달고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서정민과 이순정은 가족협의회 소속으로 분향에 참여했다.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가 여성 대통령을 ‘철면피 괴물, 얼음덩어리 야수’에 비유하곤 했지만, 서정민은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800여 개 시민단체 모임의 수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존재감을 표출하는 행위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첨예한 갈등으로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땐 어느 한쪽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와 함께 세월호 모형을 들어 올리는 인양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이 광경은 가족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문화제가 밤 9시쯤 마무리된 뒤 참가자들은 각자 들고 온 국화 한 송이를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이후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세종대로 차벽에 막혀 청계천로로 우회한 행진 대열은 경찰이 쏜 캡사이신 최루액을 뒤집어썼다.
밤 10시가 넘어 종로거리에서 몸싸움은 계속됐다. 일부는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를 인양하라. 정부시행령을 폐기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광화문광장으로 다시 모인 유가족들은 밤샘 농성을 벌였다. 농성 장면을 지켜보는 일부 사람들의 대화가 광화문의 현재를 말하는 것 같았다.
“광화문에 있던 좋은 나무들 뽑아내고 광장을 만들어 놓았더니 천막 치고 시위만 하는 거 같아 쓸씁하다.” “이제 좀 천막 좀 철거하면 안 되나.” “아이고, 데모는 대통령도 못 막는다.”
그러나 광화문이 시위만 하는 곳은 아니다. 한국 정치와 문화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합동유세나 연예공연으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종교행사로 순화된 모습으로 보일 때는, 아, 이래서 광장이 필요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4년 8월 16일 가톨릭 시복미사. 2015년 5월 16일 불교 무차대회. 서정민과 이순정은 광화문에 사무실을 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이유를 또 하나 찾은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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