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1 19:49

“육상근로 주52시간으로 단축됐는데 선원은 그대로”

선원이 육상직보다 주 20시간 더 일해
예비원제도 ‘유명무실’ 선주 형사처벌 우려


 
 
육상근로자와 달리 선원은 선원법에서 규정한 직무나 복무, 근로기준, 복지 등의 적용을 받는다. 선원법은 이를테면 해상노동자들을 위한 근로기준법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근로기준법이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한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으로 개정됐음에도 이를 반영한 선원법 개정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육상 근로 환경과 해상 근로 환경의 간극이 더욱 커지면서 선원 노동계의 반발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지난 9일 거제도 한화리조트 벨버디어에서 열린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춘계정책토론회에선 선원법상의 연장근무와 휴일, 예비원 제도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항해당직선원 최대 72시간 근무
 
선원법은 제60조 1항에서 근로시간을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으로 정하고 선주와 선원이 합의해 1주간 16시간을 한도로 시간외근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별도로 2항에선 선주가 1주간 항해당직근무선원에게 16시간, 그 밖의 선원에게 4시간의 시간외근로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선원법대로라면 항해당직선원의 1주 최대 근로가능시간은 근로일 56시간(정상근로 40시간과 시간외근로 16시간)과 이틀의 휴일근로시간 16시간을 더해 총 72시간에 이른다. 육상근로자보다 최대 20시간 이상 더 일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날 발표를 맡은 노무법인 해마루의 황미나 노무사는 “선원들의 근로 기준은 육상근로자의 제도 발전에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해 왔다”며 “최근 가장 발전적인 근로기준법적 성과인 근로시간 단축을 선원법에도 적용시키는 데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간외근로를 강제화한 선원법 규정을 바꿔 선원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두영 해운노조협의회 의장은 “(선주와 선원이) 합의해서 연장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놓고 (별도로) 연장 근무를 강제화하는 규정을 넣은 건 법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홍성화 교수는 “선박은 토요일에도 근무해야하는 점 때문에 해사안전을 위한 타협의 산물로 (선원법에서) 시간외근로의 거부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이를 근로기준법에 맞춰 바꾸려고 한다면 선원법의 큰 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원 휴일 제대로 안 지켜져
 
이날 선원법의 휴식시간 규정도 논의의 대상이 됐다. 선원법 60조 3항은 선원에게 24시간마다 10시간 이상, 1주일마다 77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8항에선 선박이 정박 중일 때 선원에게 1주에 1일 이상 휴일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근로기준법은 휴식을 휴게 휴일 유급휴가로 구분한다. 근로시간 8시간 기준 1시간, 4시간 기준 30분의 휴게시간을 부여하도록 한다. 휴게란 근로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 명령에서 완전히 해방돼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황 노무사는 해사노동협약(MLC)에서 휴게를 권고하고 있고 독일 해양노동법에서도 6시간 근로 이후 반드시 중간휴식(휴게)을 제공하도록 강제하는 점에 미뤄 우리 선원법도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운노조협의회 박상익 본부장은 “MLC를 국내 도입할 때 휴게 부분도 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경제적인 논리와 선박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어 휴게 규정을 빼자고 했고 노동계가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선은현 씨엔에스 선원노조위원장은 “(선내 근무) 중간에 커피타임 비슷한 시간이 있다”며 “다른 나라 제도를 끼워 맞추기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춰서 (선원의 휴식시간을) 제도화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황 노무사는 선원법의 휴일 규정도 근로기준법과 달리 유급인지 무급인지 명시하지 않아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정박 중인 선원에게 육상근로자와 달리 무급휴일을 부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선원법에서 유급휴일임을 분명히 해 해석상의 혼란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권기흥 에이치라인해운 선원노조위원장은 “입법 취지는 일주일에 1일 이상은 선원을 쉬게 해주자는 것”이라며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포괄임금으로 초과근무수당을 주고 있기 때문에 휴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선원 노동 현실을 전했다.
 
박찬홍 부산지방해양수산청 근로감독관은 “해양수산부에선 (선원의 휴일이) 유급이란 유권해석을 내렸다”면서도 “선원에게 휴일을 줘야 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금전적인 부분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해양대 홍성화 교수는 TV에서 본 일본 마구로 선단을 소개하며 “이 선박은 6일 일하고 1일은 선원들이 마구로가 있어도 조업을 안 하고 샤워도 하고 맥주도 마시면서 무조건 쉬더라”며 “시간이 되니 조업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고 (선원 휴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박상익 본부장은 “법상에선 고용자가 거부할 수 있음에도 사용자의 요구에 타협하고 있다”고 말했고 김두영 의장은 “중요한 건 법을 어겨도 처벌 규정이 없어서 선원이 모르면 회사가 맘대로 시킬 수 있다는 점”이라고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예비원제도는 고용창출의 문제
 
이날 토론회에선 선원 예비원제도를 놓고도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선원법은 선주가 전체 승무 선원의 10% 이상을 예비원으로 확보하고 유급휴가자나 교육·훈련자 등을 제외한 예비원에게 통상임금의 70%를 지급하도록 의무화했다. 예비원이란 승선하지 않은 선원을 뜻한다. 근로기준법엔 아예 없는 내용으로, 승무 선원의 휴가나 휴일 휴직을 보장해 주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노조에선 선주들이 사실상 이 같은 제도를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박상익 본부장은 “예비원 제도는 정규직 선원을 대상으로 하는데 현재 대부분의 선박이 선기장을 제외하고 외국인선원을 태우고 있는 데다 외국인선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선사는 없다”며 “선사가 60% 이상의 한국인 선원을 고용하지 않는 이상 이 제도를 실현시키기 어려운데 현재 이 기준을 충족하는 선사는 없다”고 전했다.
 
그는 “(선주들이) 누적해서 선원법을 계속 위반해왔지만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 하지 않다가 외국인선원 고용 위반 사례를 고소고발하는 과정에서 예비원 제도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선주가 예비원 제도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는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갑식 현대상선 노조위원장은 “현대상선은 35% 정도의 예비원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정상적으로 안 돌아가는 직급이 있다”며 “6개월 승선 후 휴가를 주는 제도가 활성화되려면 정상적으로 35% 이상의 예비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10%는 상징적이지 의미가 없는 숫자”라고 말했다.
 
윤기장 동진상선 노조 위원장은 “정규직 선원이 34%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예비원을 강제해서 늘리라고 하면 정규직 선원을 쓰는 선사에게 역차별이 된다. 선박관리회사에 위탁한 선사는 정규직이 없기 때문에 예비원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정규직을 점차 늘려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면 예비원 문제도 함께 해결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철중 선주협회 부산사무소장은 “선원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백업(backup) 요원을 두라는 게 예비원 제도의 취지”라며 “하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사용자와 선원들의 의지와 상관 없이 국회에서 벌칙조항을 만들어버려 (선사) 대표자들이 범법자가 될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는 “MLC는 예비원 제도가 없는 대신 근로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반면 선원법은 근로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MLC 도입을 고민하면서 예비원 부분도 현실에 맞게 노사간 협의해서 개선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정규직(선원)을 쓰는 회사에 혜택을 주는 게 좋을 거 같다”며 “신용도를 높여 주거나 대형화주 입찰에서 국가나 고용환경에 기여한 명목으로 가산점을 준다면 선사와 선원이 상생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김두영 의장은 “실정법을 어기는 부분을 그 누구도 이의제기 안 하면서 당연시하는 게 문제”라며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국적 선박엔 비정규직이 존재해선 안 됨에도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노사정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철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교수(해사법학회장)도 “예비원을 처음 도입할 때와 지금은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에 정부가 함께 나서서 노사정 3자가 대토론해서 해결해야지 노사에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며 “선원법 하위법령을 땜질식으로 바꾸던 지금까지의 대응에서 벗어나 해양수산부에서 책임의식을 갖고 정부입법으로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교수는 “경사노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고용창출인데, 예비원 문제가 고용창출과 직결돼 있다”며 “학교에서도 적극 참여해서 예비원 문제를 개정해서 털고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해운노조협의회와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선주협회 한국해양대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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