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국내 원양선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유동성 확보입니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올해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6766억원을 연장해 주고 1조200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출자 전환할 경우 별도 추가자금 없이 위기극복이 가능하다고 봐요.”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상근부회장은 지난달 29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정상화를 위해선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해운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 천명이 중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회사채 연장과 출자전환이 성사될 경우 부채비율 감소와 신용등급 향상, 해외투자 유치 등의 효과로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올해 갚아야 할 공모회사채는 각각 3166억원 3600억원이다. 해운기업의 부채를 출자전환한 예는 이스라엘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 은행권은 자국선사인 짐라인 지원을 위해 14억달러를 출자전환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중국정부, 해운산업에 254억弗 지원
김 부회장은 2008년 예기치 않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대폭락한 뒤 각국 정부가 자국 해운에 대폭적인 지원을 감행한 반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경우 자국 최대 선사인 코스코에 중국은행에서 108억달러의 신용을, 중국초상은행에서 49억달러의 대출을 제공했다. 또 중국 수출입은행은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에 5년간 95억달러를 지원했으며, 5개 민영해운기업에도 1억6000만달러를 공급했다. 덴마크정부는 머스크에 수출신용기금 5억2000만달러와 62억달러의 금융차입을 지원했다.
우리나라는 2009년에 구조조정선박펀드(캠코선박펀드)를 도입해 4700억원을 지원했으며 2013년 이후 3년간 ‘회사채신속인수제도’를 통해 9254억원을 양대 원양선사에 지원했다. 김 부회장은 캠코선박펀드를 “저가매입과 고금리 적용으로 선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은 지원책”, 회사채신속인수제도를 “높은 상환 비율과 고금리로 회사의 경영여건을 더욱 악화시킨 정책”이라고 각각 평가절하했다.
회사채신속인수제도는 만기 도래한 회사채의 80%를 정책금융기관에서 인수하는 회사채 시장 정상화 정책이다. 하지만 연장 시 원금의 20%를 상환해야 하고 재발행 금리가 기존보다 두 배 이상 높은 10~12%대에서 책정돼 기업들의 부담이 컸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산업 구조조정 정책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정부는 구조조정 핵심으로 “개별회사 유동성문제는 자체 노력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기조를 천명했다. 아울러 해운업 지원책으로 부채비율 400% 이하의 선사에 한해 총 12억달러를 지원하는 선박 신조금융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했다.
김 부회장은 “양대 원양선사의 유동성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소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2009년 이후 원양선사는 전용선과 LNG선, 유상증자, 부산신항 지분매각 등의 자구계획을 통해 5조82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했으나 회사채 연장 시 20% 상환과 높은 이자 납부, 영업손실 보전 등에 사용해 신규 선박 건조 등 경쟁력 향상엔 이 자금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양대선사가 부채 400%를 맞추기 위해선 한진해운 8131억원 현대상선 6838억원 등 총 1조5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신조금융 지원 규모가 1조4700억원임에 미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정책금융기관 해외선사 지원규모 국적선사 5배
김 부회장은 해외선사 위주로 지원하고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의 선박금융 행태에 대해서도 쓴소리했다. “해외 대형선사에만 좋은 조건의 금융을 제공해 저가로 국내에서 선박을 대거 건조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국내 해운과 조선산업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그는 “국내 정책금융기관은 2009년 이후 해외 선사에 108억달러를 지원한 반면 국적선사엔 19억달러를 지원하는 데 그쳤다”며 “특히 머스크는 우리나라 국책은행이 빌려준 42억달러를 통해 1만8000TEU 20척, 1만4000TEU 9척, 2만TEU 11척 등 4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지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해외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두고 경쟁한다고 하는데 해외PF에서 얼마나 고용이 창출될지 의문”이라며 “해외금융은 자제하고 독일 산업 발전에 기여키 위해 노력하는 독일계 은행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해양금융부서가 통합해 2014년 설립된 해양금융종합센터에 대해선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실적은 제자리”라며 “실질적으로 3개기관이 별도로 운영돼 시너지 효과는 미미한 데다 아직도 본사에서 선박금융 심사와 승인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3개 정책금융기관의 연간 선박금융 지원액은 20조원에 이르며 공동지원 금액은 18.5%인 3.7조원, 78척이었다. 이중 국적선사 지원은 6척에 불과하다.
김 부회장은 3개 정책금융기관의 선박금융파트를 화학적으로 통합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선사 비중을 50%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선사 지원은 국내 선사 고사와 발주력 상실을 초래한다는 이유다. 실제로 국책은행의 ‘해외선사 사랑’으로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내수비중은 5% 안팎에 불과한 실정이다. 50%에 달하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턱없이 낮은 규모다.
머스크 트리플E선박 1회 운항에 56억 절감
국책은행 주도의 선박은행(Tonnage Bank) 설립도 제안했다. 우리나라 대형선사들은 유동성난으로 현재 선박 대형화와 친환경선박(에코선박) 발주 경쟁에서 도태된 실정이다. 머스크의 대형에코선박인 트리플E시리즈의 경우 기존 1만3000TEU급 선박과 비교해 단위(TEU) 당 비용이 250달러가량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1만8000TEU로 환산할 경우 한번 운항할 때마다 56억원가량을 절감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전 세계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대는 총 316척이다. 이 중 국적선사가 운영 중인 선박은 34척(한진해운 24척 현대상선 10척)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용선이 19척에 이르러 용선 정리비용만 4000억~5000억원에 이르는 실정이다. 신조발주량도 전 세계 209척 중 국적선사는 용선 6척에 그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정책금융기관에서 1만8000TEU급 대형에코선 20척을 지은 뒤, 이를 국적선사에 대선해줄 경우 해운과 조선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대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출범한 해운보증기구인 한국해양보증보험의 경우 안정적 운영을 위해 조선 및 기자재 부산시 등에서 출자에 참여해 출범 초기에 3000억원 이상의 출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견 및 중소선사에 대한 보증상품과 선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상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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