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출입 물류의 원활한 수송과 국가안보를 위해 국적선사를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연관산업인 조선은 막대한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반면 해운은 자구노력만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하루빨리 인식하고 국적선사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운산업은 국방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안보산업인 동시에 국가 경제의 핵심 기간산업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상품들 대부분이 외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 중국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활용품, 유럽의 잡화, 북미의 곡류 등 우리가 사용하는 생필품 대다수는 선박을 통해 우리들에게 온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남북이 분단된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의 해운업은 국가 경제의 핵심 기반이다. 해운업은 국내 수출입 화물 운송의 99%, 국가 전략물자 수입의 100%를 운송하고 있다. 2014년 국내 수출입 화물 8억9210만t 중 99.7%인 8억8960만t이 해상으로 수송됐다. 항공운송은 0.3%인 250만t에 불과했다.
비상사태 발생시 병력·전략물자 수송
특히 원자력발전 연료봉과 부품, 원유, 연료탄, 철광석, 액화천연가스(LNG) 등과 같은 전략물자는 전량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수송권이 외국선사에 배정될 경우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국내 에너지 공급이 원천 차단되는 등 심각한 안보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이유다.
해운은 나아가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참여하는 필수 기간산업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운은 육·해·공군에 이어 제4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해운업은 유사시 전시 병력과 군수품 등 전시화물의 운송을 맡는다.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적선사의 선박과 선원을 동원해 군수품과 전략물자,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50여척의 국가필수선대를 지정해 운영 중이다. 이들 선박에는 외국인 선원 고용도 제한해 비상시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도 국적선박을 즉시 동원할 수 있는 해운안보 프로그램(Maritime Security Program)을 운영하면서 자국선사를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전문가들은 "국적해운사가 파산하거나 외국선사로 넘어가게 되면 우리나라는 운송과 운임의 결정권을 모두 외국에 내주는 결과를 맞게 되며 국가안보와 원활한 수출입물류 지원을 위해선 2곳 이상의 국적선사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국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해운업 지원
해운업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은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같은 장기 불황을 겪고 있음에도 정부 지원의 차이로 국내외 선사들의 경쟁력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자산관리공사(캠코)의 선박펀드 운영과, 2011년부터 무역보험공사에서 수출기반 보험 발행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지원 규모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미흡하다. 국내 해운기업들은 선박과 자산매각, 유상증자 등 갖은 자구노력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실정이다.
반면, 중국·덴마크·독일·프랑스·일본 등 다른 경쟁나라는 해운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고 대대적으로 금융 지원에 힘쓰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행이 코스코에 108억달러의 신용을 제공한 데 이어 중국수출입은행도 2012년 코스코와 차이나쉬핑에 향후 5년간 각각 95억달러씩 지원키로 한 바 있다. 중국수출입은행은 2013년초 5개 민영 중견해운사에 1억6000만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독일이 하파그로이드에 18억달러의 지급보증을 섰으며, 지방정부인 함부르크시도 이 선사에 2013년 7억5000만유로의 유동성을 지원했다.
덴마크 역시 머스크에 62억달러의 금융을 차입하고, 수출신용기금을 통해 5억2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프랑스도 자국 선사인 CMA CGM에 채권은행을 통해 5억달러를 지원토록 한 데 이어 국부펀드를 통해 1억5000만 달러를 지원했으며, 2013년 금융권을 통해 향후 3년간 2억8000만유로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해운·조선·철강·항만 등 연관 산업간 상생 협력 도모
장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해운업계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위기의 해운조선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국회정책세미나에서 획기적이고 적시적인 국적선사 지원과 육성정책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날 김영무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 사무총장은 “국적선사들이 해외선주, 투자자, 금융기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확고하고 적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연장해 상환부담을 완화하고 금리 인하, 신규 선박건조 등 경쟁력 향상에 정부차원의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운 조선 철강 항만 등 연관 산업간 상생 협력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해운업 지원은 효과적인 방안이다.
해양항만산업은 40개 업종 52만명이 종사하고 있고 매출 144조원을 차지한다. 해운업의 장기불황으로 조선, 철강, 금융, 항만 산업은 동반 침체를 겪고 있다.
해운업계는 선도산업인 해운업 지원이 우선돼야 국내 선박투자를 활성화해 조선과 철강업계가 일감을 확보하는 등 낙수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 4조2000억원을 쏟아붓기에 앞서 국내 해운산업 지원이 먼저 실시됐어야 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가전략물자 100%를 운송하고 유사시 제4군의 역할을 하는 해운업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해운산업이 우리나라 안보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국적선사가 있어야 하고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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