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 은 제목만 떠 올려도 50년 전 처음 본 20대 학창시절이나 최근 실버극장에서 다시 봤을 때나 한결같이 필자가 애주가라서 그런지 몰라도, 먼저 연상되는 것이 하이델베르크대학(Ruprecht-Karls-Universitat Heidelberg)의 신입생 맥주 신고식에서 학생이 된 왕자, 카알(Karl) 역을 맡은 ‘에드먼드 퍼덤(Edmond Padom)’이 동료 학생들과 함께 글래스 가득 찬 맥주잔을 높이 들고 권주가 “Drink, Drink, Drink!”를 부르던 너무나 신나고 흥겹던 장면이 가슴을 부풀리며 떠오르는 뮤지컬이다.
황태자가 어릴 적부터 자라 온 카를스부르크 궁정은 인간 본연의 활달하고 유쾌한 모습보다는 위선적이고 경직된 생활로 가득 차 있어 그는 항상 궁정에서 웃음을 잃은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루이스 칼헌(Louis Calhern)이 분한 부왕은 왕실의 재정을 위해 이웃 나라 공주 요한나(베타 존/Betta St. John)와 약혼을 시켰으나 미남 청년 황태자가 호감은 가지만 딱딱하고 세련된 인간미가 부족하다고 퇴짜를 놓자 정혼녀인 공주가 원하는 온화한 매력을 배우러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간다.
유학을 온 황태자 칼은 학교 옆 호텔을 장기 숙소로 잡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란 철학을 가진 요트널 가정교수(에드먼드 그웬/Edmund Guenn)와 집사 조셉 루츠(에스 젯드 사칼/S. Z. Sacal)를 동행하고 입학을 하자마자 기숙사 주인의 조카딸로 부속 비어홀 여급 업무를 맡고 있는, ‘케티’ 로 분한 ‘앤 블리스(Ann Blyth)’와 이내 친해지고 급기야 두 청춘넘녀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에서 새장에 갇힌듯 바깥 세상이 그리워 담을 넘은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특종을 찾는 ‘브레들리 신문기자(그레고리 펙)’를 만나, 삶의 재미와 낭만을 찾는 얘기와 비슷한 스토리를 연상케 한다.
따라서 늘 바깥 세상으로 나아가 호탕하게 젊은 시절을 보내기를 바라던 황태자는 1386년에 설립된 유서깊은 고풍의 명문 하이델베르크대학 캠퍼스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학풍을 익히고 젊음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린다.
한편 이 대학에서는 신입생이 선배들 앞에서 대형 컵에 담긴 맥주를 단숨에 마셔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데 황태자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전통에 따라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필자도 50여년 전에 호된 음주 신고식으로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듯,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신입생 환영회란 미명아래 상급생들이 후배들 군기잡기 신고식으로 술잔 가득 따른 ‘뿅가리주’라 부르는 대형 술사발을 얼차려 자세로 쳐들고 ‘원셧’으로 이를 단숨에 마시게 했던 관습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요즘 호프집의 맥주컵 만큼 큰 술잔을 높이 들고 황태자는 테이블 위까지 구둣발로 올라가 마구 어우러져 술잔을 부딪치며 단숨에 들이키고 목청높여 고성으로 ‘Drink, Drink, Drink’ 를 함께 부르며 젊음을 한껏 불사르던 감격적인 모습은 황태자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기억되어 훗날에도 추억으로 반추한다. 글래스를 맞대며 우정을 나누던 젊음의 순수성과 로망은 청춘시절 짧은 한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에 그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으로 회자되고 노년이 된 지금 이 순간도 그 모습을 회상하면 이 필자 가슴도 청춘예찬에 몰입, 흥분의 도가니로 치닫는다.
신분을 속이고 학생들이 기숙하는 호텔 하숙집에서, 비록 맥주 서빙 등 허드레 일과 뒷 치다꺼리를 하지만 뛰어난 미모와 고운 성품, 올 곧은 자태의 케티를 만난 황태자는 자연스레 시랑에 빠져 경호 겸 감시를 전담하는 궁중 파견인들의 눈을 피해가며 뜨거운 사이의 연인으로 발전한다.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을 키우고 곳곳을 몰래 다니며 젊은 청춘남녀만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을 맘껏 즐기며 황홀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황태자는 급거 귀국을 하게 된다.
부왕의 서거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 칼은 사랑하는 연인 케티를 한없이 그리워하면서도 결국은 하이델베르크로 돌아오지 못하는 신분으로 변하게 되고 곧 오겠다던 약속은 지킬 수 없는 공허한 이별의 서곡이 되고 만다. 특히 왕실의 관례상 평범한 여자를 왕비로 삼을 수 없는 전통때문에 두 연인은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운명에 처하게 된 것. 애틋한 사랑을 신분이나 조건에 의해 이루지 못하는 비애가 그 누구에게나 짠한 공감을 주는 영화다. 그래서 황태자 카알 하인리히와 케티의 만남을 통하여 순수하고 티없이 맑고 고귀한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이 작품는 감동 만점의 평가를 받으며 신나는 음악, 그러나 애당초부터 이룰 수 없는 슬픈 사랑으로 생각사록 영혼마저 저미는 비련으로 여러 사람의 뇌리에 여운을 남긴다.
궁중의 물질적인 풍요속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던 황태자가 평범한 대학생활에서 만끽하는 젊음과 삶의 환희, 신분을 초월하여 있는 그대로를 소박하게 드러냄으로써 황태자의 첫눈에 드는 신데렐라같은 케티의 순박하고 진실한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사랑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주는 감명은 남녀노소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있는 뮤지컬로 손꼽히고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함께 맺지 못한 비극적 사랑을 테마로 한 원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거듭 언급커니와 맥주 신고식때의 ‘축배의 노래’와 케티와의 첫 데이트 때 황태자가 사랑의 고백으로 부르는 ‘세라나데’에 이어 마지막 이 영화 또 하나의 압권, 왕이 된 옛 황태자가 야간열차를 타고 지방 시찰을 가다 예정에 없던 하이델베르크 역에서 갑자기 열차를 세운 것. 옛 사랑 케티가 있는 호텔 비어홀을 찾아 그녀를 다시 만나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라며 눈물어린 포옹을 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내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로 답하는 두 연인의 극적인 해후의 짧은 만남의 기쁨과 영원한 이별을 아쉬워하며 함께 부르던 그 노래 ‘청춘찬가’와 ‘내 가슴 속 깊이 간직한 그대의 사랑’은 늦은 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필자의 귀에 쟁쟁, 숨막히게 가슴을 자멱질한다.
1902년 독일 희곡작가 ‘빌헬름 마이어 홸스터(Wilhelm Meyer Forster)가 쓴 희곡 ‘옛 하이델베르크(Alt Heidelberg)’를 유럽 인기 여세를 몰아 1924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페라 형식으로 올렸고, 그후 1927년에 무성영화로 선을 보인 다음, 1954년에 천연색 영화로 화려하게 빛을 본 이 작품은 뮤지컬 형식을 가미해 당시 인기 오페라 가수 ‘마리오 란자(Mario Lanza)’의 육성을 삽입, 대박을 터뜨렸던 불후의 뮤지컬 명작이기도 하다.
처음에 앤 블리스와 함께 MGM과 전속 계약, 38세에 요절한, 마리오 란자를 캐스팅했으나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은 트러블로 인해 에드먼드 퍼덤을 긴급 출연시켜 이미 녹음된 란자의 노래를 립싱크(Lip-sync)로 대체 제작하고도 성공한 뮤지컬, 이 영화는 첨엔 ‘커티스 베르나르도’, ‘마빈 르로이’에 이어 최종적으로 ‘리처드 소프’ 감독에 의해 완성됐고 1950년대에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 국도극장과 함께 일류 개봉관으로 명성을 날렸던 국제극장서 국내 처음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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