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로 지속된 해운 불경기는 선사들에게 수익 향상을 위한 새 돌파구를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동서항로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정기선사 관계자들은 새 돌파구로 ‘남북 항로 진출’을 꼽고 있다. 호주, 중남미, 아프리카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국가들이 포진한 남북항로를 먼저 선점하는 게 향후 정기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대형 외국적 선사들은 남북항로 시장에 공격적 진출을 감행했다. 외국적 선사에 비하면 뒤처지긴 했지만 우리 국적선사들도 점차 남북항로 진출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원양항로, ‘우울한 3월’
3월 초 원양항로의 시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올해 초만 해도 갑자기 몰린 물량으로 ‘반짝’ 성수기를 겪기도 했으나 중국 춘절 연휴 이후부터 물량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북미항로의 운임은 2월 들어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월7일 유럽항로의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기준 1567달러였으나 그 다음주인 2월14일 1379달러를 기록한데 이어 한 주 후인 2월21일에는 1233달러로 하락했다. 급기야 3월7일에는 988달러로 1000달러대가 무너졌다. 유럽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은 3월1일 TEU당 200에서 500달러 사이의 GRI를 계획했지만 시장에 적용하지 못했다. 선사들은 4월1일로 GRI를 미룬 상태다.
북미항로 운임 역시 하락하고 있다. 2월7일 40피트컨테이너(FEU) 기준 2108달러에서 2주 후인 2월21에는 1945달러로 하락해 1000달러 선에 진입했다. 3월7일에는 1784달러까지 떨어졌다.
저조한 운임 추이는 남북항로도 마찬가지다. 호주항로는 오는 4월1일 TEU당 500달러의 기본운임인상(GRI)를 계획하고 있다. 당초 계획은 300달러였으나 운임이 떨어질 때로 떨어진 탓에 다소 높은 500달러로 설정했다. 중국의 춘절 이후로 물량이 준 탓에 4월 GRI가 모두 적용될지는 불투명하다. 반면 선사들의 운임 인상 의지는 강하다.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협의협정(AADA) 관계자는 “춘절 들어 운임이 떨어질 데로 떨어졌으므로 이번 운임인상에 대한 선사들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밝혔다.
중남미항로의 운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일부 선사들은 지난 3월1일 남미 동안 지역에서 TEU당 750달러, 남미 서안에서 TEU당 650달러의 GRI를 계획했으나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중남미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은 3월14일 이후 남미 동안과 서안의 TEU당 500달러에서 750달러 사이 GRI를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모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남미항로는 지난 연말 연이은 GRI로 운임을 한껏 끌어올려놨으나 올 들어 연이은 운임 하락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아프리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운임의 변동폭이 크지 않다. 서아프리카의 경우 중고차와 헌 옷, 레진이 주요 수출 품목이다. 중고차와 헌 옷 수출 현황은 올 초부터 이어진 침체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1,2월 비수기에서 벗어나면서 레진 물량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대표적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BAF(유류할증료)가 높아져 선사들이 이익을 내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프랑스 선사 CMA CGM은 아시아-동아프리카항로에서 TEU당 150달러의 GRI를 4월1일부터 실시한다. 아프리카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아프리카 지역은 진출한 선사 자체가 많지 않고 개발이 덜 됐기 때문에 시황이 크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곳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외국적 선사, 남북항로에 아낌없는 투자 중
3월 중순 시황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호주, 중남미,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북항로는 선사들의 ‘틈새 시장’으로 각광받아 왔다. 영국 해운전문 언론 로이즈리스트는 정기선사들이 아시아-유럽 항로나 북미 항로에서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중남미, 아프리카와 같은 ‘남북 항로’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양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 역시 “정기선사들은 이미 개발된 동서항로의 취항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동서항로에서 대규모 얼라이언스를 구성해 공동 배선하는 것 또한 동서항로 개척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라고 밝히기도 했다.
남북항로에 강세를 보이는 건 외국적 선사들이다. 선복량 기준 세계 컨테이너선사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일찌감치 중남미와 아프리카 시장 선점에 나섰다. 독일 선사 함부르크수드의 경우 호주와 중남미 지역에서 탄탄한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 선사 CMA CGM 역시 호주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는 선사 중 하나다. 이 밖에도 CSAV와의 합병을 추진 중인 독일의 하파그로이드는 이번 합병을 통해 중남미 시장의 패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호주항로는 지난 한해 선복량 증가로 몸살을 앓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호주항로에는 2300TEU급 선박들이 주로 투입됐으나 현재는 3500TEU에서 4000TEU급 선박들이 기항하고 있다. 유럽항로와 미주 항로를 기항하던 선박들이 1만TEU급 ‘컨’선들의 등장으로 호주항로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일본선사 케이라인은 올해 아시아-유럽 항로에 1만4000TEU급 선박 5척을 투입한 후 기존 아시아-유럽 항로를 취항하던 선박을 호주와 아프리카 항로로 투입시킬 계획이다.
작년 한해 선사들이 잇따라 호주항로에 신규 취항하면서 공급도 늘어났다. 에버그린, 양밍, PIL, 시노트란스가 공동배선한 ‘CAT’ 서비스에는 3500TEU급 선박이 6척 투입됐으며 국적선사 한진해운, CMA CGM, ANL이 공동 배선한 ‘AAZ(Asia-Australia-New Zealand)’ 서비스에는 2200TEU급 컨테이너선이 6척 투입됐다. 선사들의 잇따른 신규 취항과 케스케이딩(전환배치)에 따른 선복량 증가는 향후 호주항로가 동서항로에 이어 새로운 주력시장으로 떠오를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파그로이드는 동서항로보다 남북항로에 초점을 맞추고 성장 중인 함부르크수드와의 합병을 통해 중남미 지역을 선점하려 했었다. 함부르크수드와의 합병은 무산됐으나 이번 칠레선사 CSAV와의 합병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중남미 지역의 패권 장악을 시도한다. 올해부터 중남미 지역에서는 연이어 대규모 국제적 스포츠 행사가 열린다. 중남미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들은 올해 브라질 월드컵과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으로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 세계 3위 선사인 CMA CGM은 올해 아프리카 시장으로써의 공격적 진출을 선언한 바 있다. 아프리카 선사 델마스의 인수를 통해 일치감치 아프리카 시장의 성장을 알아 본 CMA CGM은 아프리카 항만에 최적화된 아프라막스 선박을 전면에 내세운 캠페인을 시작한다. 지난 1월 아프리카의 모잠비크 항을 연결하는 리노 익스프레스를 개시했으며 2월에는 코파칸과 소말리아를 연결하는 노우라 익스프레스를 개설했다. 또 아프리카 모리타니에 두 곳의 지점을 세울 계획이다.
지난 1999년 아프리카 시장을 집중적으로 서비스하는 정기선사 사프마린을 인수한 머스크라인 역시 남북항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선사다. 최근 몇 년 새 정기선사들이 실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나 머스크라인은 꾸준히 호실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머스크라인의 영업 이익은 15억7100만달러로 2012년의 5억2500만달러에서 무려 66% 급증했다. 순이익 역시 4억6100만달러에서 15억1000만달러로 70% 증가했다.
선사 관계자들은 머스크라인의 ‘호실적’ 배경으로 남북항로에서의 입지 강화를 꼽는다. 머스크라인의 수송량은 2013년 880만FEU로 전년대비 4.1% 증가했다. 동서항로가 2%의 물동량 성장을 보였고 남북항로는 4%의 성장을 이뤘다.
남북항로 중에서도 아프리카 항로는 진출한 선사가 그리 많지 않아 정기 선사들의 마지막 남은 미개척 시장으로 불리고 있다. 과거에는 머스크라인과 그 계열사인 사프마린이 아프리카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싱가포르 선사 PIL과 CMA CGM, 국적선사 한진해운 등이 뛰어 들어 조금씩 붐비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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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선사, “남북항로보단 실적 개선”
국적선사들 또한 남북항로 진출에 대한 필요성을 간파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 2011년 컨테이너사업팀에 ‘남북항로팀’을 따로 개설해 호주, 아프리카, 중남미, 러시아 지역을 전담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2010년 아시아와 남미를 잇는 ‘ALX 서비스’를 개설해 남미시장에 진출했다. 2012년에는 서아프리카 노선에 본격 진출했으며 작년에는 인도 문드라, 파키스탄 카라치, 아랍에미레이트 제발알리, 케냐 뭄바사,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을 잇는 동아프리카 노선을 신설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적자에 신음해야 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영업손실 2424억원, 당기순손실 6801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 영업손실 1097억원에서 적자 폭이 120% 늘어났고 순손실 역시 6379억원에서 6.6% 확대 됐다. 현대상선 역시 지난 한 해 3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손실의 경우 2012년 -5096억원을 기록한 것에 비해 작년에는 3301억원으로 35% 개선됐다. 일각에서는 양대 선사가 국적선사들의 남북항로 진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하지만 지금은 실적 회복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 말하고 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제외한 나머지 국적선사들의 남북항로 진출은 사실상 미비한 상황이다. 국적선사들의 관심은 동남아항로에 쏠려 있다. 유럽과 미주항로가 포화 상태인 현재 그다지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진출할 수 있는 항로는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항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적선사는 동남아항로에서 총 133만9598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실어 날라 외국적선사가 76만8410TEU를 기록한 것에 비해 2배가량 많은 양을 수송했다. < 이명지 기자 mj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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