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9 09:26

기자수첩 / 택배기사가 동네북인가

 

최근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KBS 2TV ‘왕가네 식구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고받은 대화에 택배기사를 비하하는 내용이 담겨 씁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극중 인물들은 택배기사 고민중(조성하 분)을 대놓고 무시하며 “세상에 택배가 웬 말이냐. 누가 알까 겁난다”, “다 말아먹고 지금은 택배 한다”, “사람 인상이 참 좋다. 험한 일(택배) 안 하게 생겼는데 안됐다”고 하는 등 택배업을 비하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씁쓸하지만 택배기사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은 사실이다. 택배기사가 시간당 평균 배송하는 물품 12.6개, 개당 4.7분이 소요된다. 10시간을 꼬박 일해야 배달할 수 있는 양이 126개다. 택배기사들은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30초가 아까워 4층까지 뜀박질을 하기도 하고 밥 먹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을 빵이나 라면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택배기사가 이렇게 고생해서 받는 돈은 묵직한 쌀자루를 나르던 가벼운 책 한권을 나르던 모두 건당 700~900원 수준이다. 하루평균 126×800=10만800원이다. 이 금액에서 기름값과 식비 등을 제외해야한다. 더구나 택배배송을 위해 불가피하게 임시주차를 해놓는 경우 불법주차로 간주돼 벌금을 물어야 하는 사례도 빈번해 실제 수익은 더 낮다.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곧 택배 서비스의 품질저하로 연결된다. 지난해 12월2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택배 관련 피해 건수는 1만5100건으로 지난해 1만662건과 비교해 4438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미흡한 지원도 문제다. 지난해 12월20일 서울시의회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행위 신고포상급 지급 조례안’을 가결시켜 2015년 1월부터 본격시행을 앞두고 있다. 일명 ‘택배 카파라치’로 불리는 이 제도는 비영업용 화물자동차의 택배운송을 신고하면 1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택배 카파라치가 본격화되면 서울시 택배차량의 약 30~40%에 달하는 비영업용 차량 1만대가 적발시 벌금(70만원)을 물어야 한다. 그렇잖아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에게는 그나마 잡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잃게 만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인기드라마 속 연기자들의 택배기사 비하 발언은 택배기업들이 자초한 일인지도 모른다. 택배기업간 과당경쟁으로 2000년대 초반 4000원대에 달하던 개인고객 택배요금은 2012년 3000원대로 내려갔고, 2000년대 초반 3000원대 달하던 기업고객 택배단가는 2012년 2000원대로 하락했다. 국내 택배 단가는 미국 1만원, 일본 7000원, 중국 3000원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택배업계에서는 택배법 제정, 표준운임제 도입 등을 통해 단가를 높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앞서 택배업계 스스로 과당경쟁에 치중해 택배기사 처우를 외면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또 택배업계는 택배법 제정이나 표준운임제 등에 의존하기보다 경쟁업체와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품질’이나 ‘서비스’ 등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일본의 한 택배업체는 택배원이 한 지역의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오랫동안 형성해 방범 역할도 하고, 독거노인의 고독사도 방지하는 등 ‘소통’을 기반으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국내 택배기업들도 더는 단가인하를 통한 경쟁이 아닌 서비스품질을 높이는 등 차별화된 자사만의 특별한 전략을 내세워 기업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물류 현장에서 고생하는 택배기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한다면 실질적으로 고객과 얼굴을 맞대는 그들의 서비스도 향상될 것이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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