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8 09:33

여울목/ 해운업계에 필요한 ‘온고지신’의 미덕

●●●STX팬오션이 회생계획을 인가받은 뒤 회사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회생계획에 담긴 대로 출자전환과 감자를 진행하는 한편 회사 부실의 낙인이 돼버린 STX를 떼는 사명변경을 추진한다.

STX팬오션의 법정관리행은 오너의 잘못된 선택이 기업을 어떻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보여준 단적인 예다. STX팬오션은 벌크선 시장이 사상 최고치 운임을 경신했던 5년 전 거품 시황 때나 갑작스런 시장 붕괴 상황에서도 다른 선사들처럼 무분별한 용대선 플레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운송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는 등 불황에 대비한 전략을 착실히 밟아 나갔다. 하지만 STX그룹 강덕수 회장의 조선 성장 정책을 배경으로 한 계열사 고가 발주가 결국 발목을 잡고 말았다. 비해운계 출신의 오너 경영자가 ‘잘 나가던’ 벌크선사에 부실기업이란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말았다.

비슷한 예로 대한해운을 들 수 있다. STX팬오션에 이어 국내 2위 벌크선사를 자처하던 대한해운의 경우 시황 고점 당시 행한 무리한 용대선시장 투자가 결국 화를 불렀다. 이진방 회장은 시장에 낀 거품을 감지하지 못한 채 속칭 ‘막차 타기’ 투자로 선친이 일군 견실한 회사를 붕괴시키고 말았다. 이진방 회장이 거품 시황의 샴페인에 취해 해운역사의 과거 교훈을 망각했던 결과다. 대한해운은 2년간의 법정관리라는 혹독한 시련을 거친 뒤 삼라마이더스(SM)그룹에 인수되며 재도약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인수한 모회사가 해운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라는 점은 대한해운의 과거 영광 재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때 국내 벌크선 시장을 호령했던 쌍두마차가 모두 오너의 잘못된 선택으로 국내 상위권 해운사에서 법정관리 기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두 회사 중 한 곳은 인수합병을 통해 2년여 만에 부실을 모두 털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한 회사는 회생계획 인가를 받고 정상화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너에 의해 잘못 끼워진 단추가 두 회사를 ‘평행이론’의 궤도에 올려놓은 셈이 됐다.

국내 해운업계는 일본 해운사의 위기극복전략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한국법인에서 10년간 대표이사직을 역임한 케이라인(K-Line) 후타가와 가즈히코 임원은 최근 열린 KMI 해운전망대회에서 일본 해운사들이 해운 침체기에 취했던 여러 생존 대책들을 가감 없이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케이라인을 비롯한 일본 해운사는 오일쇼크가 해운업계를 강타했던 지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20년 동안 해운사 구조조정과 비용 달러화, 사업포트폴리오 다양화 등 기업 체질 개선에 골몰했다. 특히 케이라인은 불황에 대비한 장기계약 중심의 경영전략과 환율, 연료 가격, 선원임금 등 비용부문의 정기적인 계약갱신을 통해 사업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일본 해운사들은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국내 해운사들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올해 흑자 경영의 전망을 밝히고 있다.

국내 중견기업 한 오너는 최근의 해운 시황을 두고 “해운산업합리화 때도 경험하지 못한 사상 최악의 불황기”라고 말했다. 궤를 같이 해 리먼 쇼크 이전의 해운호황도 유래 없는 최대호황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STX팬오션이나 대한해운의 경영자들이 지난 호황기에 불황기를 대비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듯 지금의 혹독한 경험이 향후 국내 해운산업 발전에 ‘훌륭한 보약’ 역할을 하길 기대해본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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