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팬오션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지 석 달이 지났다. STX팬오션의 법정관리행은 이 선사가 국내 해운업계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만큼이나 큰 충격파를 던졌다.
대한해운에 이은 국내 1~2위 벌크선사의 경영파탄으로 국내 해운시장의 국제적인 신인도는 급전직하로 나빠졌다. 해외 선주사들이 국내 해운사와의 거래를 꺼리고 있으며 외국 은행권도 한국 선사에 대한 금융을 보류하는 상황이다.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는 우리 해운업계에 오랜 기간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를 두고 강덕수 STX 회장의 책임론이 거세게 불거져 나오고 있다. 법정관리를 갓 졸업했던 범양상선을 인수할 당시 강 회장은 이 회사를 세계적인 벌크 선사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새우가 고래를 집어삼켰다’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STX의 범양상선 인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소화하지 못할 회사를 거둬들여 탈이 나고 말았다는 뼈아픈 목소리도 들린다.
더 안타까운 건 강 회장이 조선 부문을 키우기 위해 STX팬오션을 부실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는 점이다. 지난 5일 열린 STX팬오션 1차 관계인집회에서 조사를 맡은 한영회계법인은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에 신조 발주를 몰아 준 게 회사 부실화의 큰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STX팬오션은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32억1200만달러를 발주했으며 이 가운데 90%에 이르는 28억9400만달러를 STX조선측에 발주를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발주한 선박 59척 중 9척을 빼고 모두 STX에 싹쓸이 발주한 것이다.
그룹 내부간 거래는 오너의 이익을 목표로 진행되기에 사업을 발주한 회사의 수익성은 다음 순위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STX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조선부문을 성장시키고자 했던 강덕수 회장의 의중으로 인해 해운과 조선의 거래에서 해운은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STX팬오션은 3억달러짜리 자동차운반선과 1억400만달러짜리 케미컬탱커, 1억7200만달러짜리 해양작업지원선 발주에서 총 1억2000만달러 이상의 손실을 냈다.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STX팬오션이 13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이다. STX팬오션은 이 밖에도 단일규모로는 가장 큰 40만t(재화중량톤)급 발레 선박 8척, 피브리아 우드펄프 수송선 20척을 발주하며 STX조선을 세계 5위 조선소로 성장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건의 발주금액은 총 18억달러에 이른다.
관계인집회에서 조사위원은 배임 등 지배주주와 임원들의 중대한 과실을 입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공격적인 경영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불운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덕수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서 도의적인 책임에서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의 조선 위주 그룹 성장 전략이 국내 1위 벌크선사의 두 번째 법정관리행이란 파국으로 이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사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국내 4위 조선사인 STX조선의 이익을 위해 국내 1위 벌크선사를 망가뜨린 꼴이어서 해운인들의 안타까움이 크다.
강덕수 회장은 STX팬오션과 STX조선해양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2000년대 중반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샐러리맨의 신화도 저물고 있다. STX팬오션도 법정관리 이후 재매각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해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큰 투자자가 국내 굴지의 해운사를 인수해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다지길 기대해본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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