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항로가 7월부터 시작돼 10월까지 이어지는 전통적 ‘성수기’를 맞이하고 있다.
8월 한껏 끌어 올린 운임과 함께 미국과 유럽의 경기회복 전망은 원양항로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작 원양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인상을 하지 않으면 계속 하락하는 운임과 따라주지 않는 물동량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1만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등장 또한 선사들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계속 하락하는 운임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부분의 선사들은 9월 원양항로에서 운임인상(GRI)을 공표했다. 선사들은 “9~10월이 성수기라는 건 옛말”이라 평하고 있다.
운임 유지를 위한 ‘GRI의 만성화’
선복 기준 세계 컨테이너선사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북미항로에서 7, 8, 9월 연속 운임 인상을 실시했다. 머스크는 9월1일부터 미 서안 지역의 20피트 컨테이너(TEU)당 320달러, 40피트 하이큐브 컨테이너 기준 506달러, 미 동안 지역의 20피트 컨테이너당 480달러, 40피트 하이큐브, 리퍼 컨테이너당 675달러의 운임 인상을 적용한다.
프랑스 선사인 CMA CGM은 9월 북미 서안에 TEU 당 400달러, 북미 동안에 TEU 당 600달러 GRI를 계획했다. 독일 선사 하파그로이드 또한 9월1일자로 북미서안에서 TEU 당 400달러, 북미 동안에서 TEU 당 600달러의 운임 인상을 발표했다.
유럽항로의 경우 현대상선이 9월1일자로 TEU 당 515달러의 운임 인상을 공표했다. 현대상선은 7월부터 유럽항로에서 운임 인상을 꾸준히 해 왔다. 스위스 MSC는 올 3월부터 운임 인상을 해 왔다. 9월1일에도 어김없이 TEU당 500달러의 운임 인상이 예정돼 있다. CMA CGM은 북유럽항로에서 TEU 당 450달러의 GRI를 예고했다.
머스크는 지중해항로에서 TEU당 500달러, 북유럽항로에서 TEU 당 400달러의 GRI를 계획 중이다. 하파그로이드 또한 9월2일자로 아시아-유럽 항로에서 TEU 당 500달러의 GRI를 공표했다. 홍콩선사 OOCL은 북유럽과 지중해, 흑해에서 각각 TEU 당 500달러의 GRI를 9월1일자로 발표했다.
8월 초 선사들의 운임 인상은 ‘다소’ 성공적이었다. 상하이항운교역소(SSE)가 발표한 컨테이너운임지수(SCFI)에 따르면 8월2일자 상하이-북미 간 운임은 40피트컨테이너(FEU)당 2069달러로 7월26일 FEU 당 1942달러에 비해 127달러 상승했다.
상하이-유럽 간 운임 또한 20피트 컨테이너(TEU)당 1501달러로 7월26일 TEU 당 1360달러를 기록한 것에 비해 141달러 상승했다. 외신에 따르면 8월 운임 인상으로 인해 선사들은 기존에 목표했던 운임 인상 목표액의 30~50%를 달성했고 운임 시황을 유지한다는 목적을 이뤘다.
꾸준한 운임 인상은 유럽과 북미 시장의 ‘호황’을 나타내는 걸까. 선사들은 이러한 질문에 고개를 젓는다. 한 선사 관계자는 “운임을 매달 올려야 운임 회복을 할 수 있다. 월초에 운임 인상을 하면 중반 즈음 가면 다시 운임이 떨어진다. 그러면 그 다음달에 또 운임 인상을 함으로서 운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라며 운임유지를 위한 GRI가 ‘만성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운임 회복되자마자 하락…북유럽 1200弗 대 진입
선사들의 이러한 말을 뒷받침 하듯이 유럽과 북미 항로의 운임은 8월 초 운임인상 시기를 기준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8월23일자 SCFI는 미서안에서 40피트 컨테이너(FEU) 당 1889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그 전주인 8월16일의 FEU당 1941달러보다 52달러 떨어진 수치이다. 한국발 운임은 상하이발보다 낮은 FEU 당 180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 동안은 FEU 당 3408달러로 8월16일 FEU 당 3361달러보다 47달러 감소했다. 한국발 운임은 FEU 당 3000~3200달러로 서안에 비해서는 다소 높은 편이다.
“(운임은) GRI를 통해 끌어 올리면 얼마 안가 다시 내려간다”는 선사 관계자들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북미 항로의 운임은 8월 초 선사들의 GRI 이후 점점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8월2일자 미 서안 항로 운임은 FEU당 2069달러, 8월9일자 운임은 1994달러로 8월 들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유럽 항로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8월23일자 북유럽 항로의 SCFI는 TEU 당 1238달러로 8월16일 1334달러에 비해 96달러가 하락했다. 8월23일 지중해 항로의 운임은 TEU 당 1244달러로 전 주보다 68달러 하락했다.
북유럽 항로의 운임 또한 선사들의 월초 운임인상으로 1500달러 대를 찍었던 8월2일자를 시작으로 8월달 들어 점점 하락하고 있다. 8월9일 TEU 당 1436달러, 16일 TEU 당 1334달러로 하락한 데 이어 23일에는 운임이 1200달러 수준에 진입했다. 한국발 운임 또한 TEU 당 1200달러에서 1300달러 대로 선사들은 파악하고 있다.
드류리가 집계한 아시아-유럽 수출 항로의 운임 수준은 올 1월 TEU 당 1570달러에서 6월 915달러로 꾸준히 하락해 왔다. 유럽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6월달 TEU 당 514달러로 운임이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선사들이 운임 인상을 통해 7월에서 8월 사이 겨우 운임을 끌어 올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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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 추구 ‘양날의 칼’
이러한 운임의 하락은 선사들의 잇따른 대형선 발주와 물동량 약세와 관련 깊다. 지난 7월 최초 기항지로 부산항을 선택한 머스크의 1만8000TEU급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머스크 맥키니 몰러>호를 시작으로 선사들의 대형선 발주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초대형 선박의 투입으로 아시아-유럽 항로에서는 8800TEU급의 선복 능력 향상이 이뤄졌다.
MSC 또한 1만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대에 발을 내밀었다. 외신에 따르면 MSC는 장기 용선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에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신조 계약을 체결했다. 이 밖에도 중국선사 차이나쉬핑(CSCL)이 지난 5월 현대중공업에 1만8000TEU급 선박을 발주했으며 쿠웨이트의 유나이트아랍쉬핑(UASC) 또한 동급 선박에 대한 투자의향서를 현대중공업과 체결한 상태이다.
‘규모의 경제’ 에 기댄 초대형 선박의 잇따른 발주는 원양항로에서 선복량의 과잉이라는 ‘자충수’를 불러 왔다. 아시아-유럽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의 대형화는 기름값을 아끼면서 물량은 두 배로 선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관계자는 “초대형 선박 발주 경쟁은 선복량 과잉으로 이어지면서 선사들 사이에서는 제 발등 찍기가 아니냐는 우려 또한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머스크가 1만8000TEU급 선박을 발주하면서 나머지 선사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그만한 크기의 선박을 발주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겼다”고 말하며 선복량 과잉에도 불구하고 초대형선 발주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언급했다.
물동량의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형 선박의 발주 경쟁은 선사들에게 저조한 소석률(선복 대비 화물 적재율)이라는 과제를 가져다 줬다. 유럽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7월 초에는 북유럽으로 향하는 배의 소석률은 90%를 보였었고 지중해로 향하는 배는 많이 비었었다. 현재 소석률은 80~90%이다. 그리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나 이는 선사들이 임시 휴항과 같은 방법으로 선복량을 조절한 결과다”라고 밝혔다.
북미 항로의 소석률은 더 심각해 70~80% 수준으로 상당히 저조한 편이라고 선사들은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8월20일부터 시작된 현대, 기아자동차 노조 파업으로 인해 자동차 부품 또한 수출에 차질을 빚어 소석률은 더 떨어질 것으로 선사들은 예측하고 있다.
미국 항만조사기관인 피어스에 따르면 올 2분기 북미 항로 물동량은 344만8774TEU로 전년대비 0.1% 하락했다. 6월 물동량은 114만7377TEU로 5월보다 0.3% 하락했다.
아시아-유럽 수출 항로의 물동량은 2분기 들어 점차 상승세를 보였다. 아시아-유럽 수출 항로의 6월 물동량은 124만4178TEU로 5월 119만9087TEU보다 9.7% 성장했다. 유럽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2분기는 유럽 지역 국가들의 반짝 경기 회복으로 인해 물동량의 성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추세가 성수기인 3분기까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라고 현재 시장 상황을 평가했다.
화주들 인식 변화로 성수기 공식 깨졌다
이런 상황에서 선사들은 올 9월 GRI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유럽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11월 비수기가 오기 전인 9월 운임 인상에 총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밝히며 “추석이나 중국의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물량이 늘어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연휴를 앞두고 물량이 ‘반짝’ 늘어나는 시기에 GRI를 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사 관계자들은 전통적 성수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유럽과 북미 항로를 취항하는 외국적 선사 관계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발생한 국제적 경기 침체로 한국 시장에선 전통적 성수기, 비수기가 모호해 진지 오래다. 그저 운임 인상을 통해 적절한 운임 수준을 겨우겨우 맞춰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가올 성수기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국제적 경기 침체 뿐만이 아니라 문화의 변화도 전통적인 성수기 개념을 바꿔 놓고 있다. 9월이 성수기라 불리는 건 원양항로에서 8월 휴가철이 끝나고 나가지 못한 ‘물량 밀어내기’로 인해 많은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다가 중국의 국경절과 추석 등 명절 휴가를 앞두고 있어서 긴 휴가를 맞이하기 전 물량을 보내려는 화주들의 움직임 또한 한몫을 했었다.
그러나 휴가를 앞둔 시기에도 물량은 예전처럼 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선사 관계자는 “10여 년 전만 해도 아시아권에서는 휴가를 앞두고 미리 물량을 보내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으나 이제는 휴가를 앞두고 미리 일을 하는 관습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 이명지 기자 mj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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