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해운업이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 같은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 윤희도 연구원은 28일 "한국 선사들이 세계 1~3위권 선사들의 독주와 자국 수출 물량을 등에 엎고 고성장 하는 중국 선사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가 2~3위 선사들과 전략적제휴(alliance)을 구축하겠다고 했다"며 이 같이 진단했다.
넛크래커(nut-cracker)는 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기계를 뜻하는 말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즈앨런&해밀턴 컨설팅회사가 내놓은 한국보고서에 처음 사용한 용어다. ‘한국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 마치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처럼 됐다’는 보고서의 표현에서 유래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윤 연구원은 2005년 덴마크 머스크라인이 당시 세계 3위 선사였던 영국 네덜란드의 P&O네들로이드를 인수합병하면서부터 한국 해운업은 넛크래커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세계 1~3위 선사인 머스크(덴마크) MSC(스위스) CMA CGM(프랑스)은 18일 P3네트워크라는 얼라이언스를 내년 4월부터 발족한다고 발표했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는 합작운항사를 설립하고, 이 독립 법인에 세 개의 회사가 총 255척(260만TEU)의 선박을 투입해 공동운항을 시작할 계획이다.
260만TEU의 선복량은 한진해운 자사선 기준 선복량의 8.7배에 달하는 규모다. P3네트워크는 기존의 선사들이 운영해 오고 있던 선복 공유(slot sharing) 중심의 CKYH(한진해운 소속), G6(현대상선 소속) 얼라이언스와는 다른 개념으로, 세 개 선사들의 장점을 살려 독립적인 마케팅체제와 운임정책을 가져간다.
1~3위 업체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아시아-유럽항로가 45%, 아시아-북미항로 22%, 유럽-북미항로 41%로 높아져 해운업계의 절대강자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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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연구원은 "점유율이 높아지는 만큼 P3네트워크는 EU와 미국 당국 등의 반독점 금지법 저촉 여부를 승인 받아야 설립이 가능하지만, 설립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컨테이너 해운 전문 조사기관인 프랑스의 알파라이너는 이번 1~3위 선사의 동맹 구축에 대해 시장 경쟁, 서비스, 운임 측면에서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우선 P3네트워크 때문에 아시아-유럽항로의 경쟁강도가 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P3네트워크와 경쟁해야 하는 선사들은 기존의 제휴체제를 확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서비스의 경우 P3네트워크 설립으로 3개 선사들의 취항 회수는 줄어들겠지만, 광범위한 선복 공유 등으로 서비스 가능한(운송이 가능한) 지역은 더욱 넓어질 것을 전망됐다. 예를 들어, 3개 선사는 현재 주간 단위로 총 9회의 아시아-유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향후 8회로 줄여도 이전과 같은 공급능력(선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파라이너는 마지막으로 운임은 중·장기적으로 상승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엔 해운기업들이 새로운 제휴체제를 구축하면 단기적으로 시장 운임이 상승하기도 했지만 제휴체 결성 후 시장의 경쟁강도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 운임 상승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2011년 말 나타난 2~3위 선사들의 협력체제 이벤트와 G6 구축은 세계 컨테이너 운임이 상승세로 돌아서는데 영향을 미쳤지만, 컨테이너 수요가 부진해지자 올해 들어선 운임 하락세를 막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윤 연구원도 알파라이너의 분석을 토대로 "당분간 운임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관측했다. 컨테이너 해운수요가 집중되는 계절적 성수기에 컨테이너 운임도 상승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 들어선 성수기에 운임이 하락하는 현상이 2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성수기 효과로 운임이 오르기 시작하는 5월부터 연중 고점을 형성하는 8월까지 4개월 동안 과거 운임지수 증감율을 제시했다. 상하이항운거래소에 따르면 상하이발 운임지수(SCFI)는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11%, 2% 올랐으며, 지난해엔 13% 하락했고, 올해 가장 최근 운임지수는 4월 말에 비해 12%나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선사들의 노력과 성수기 기대감으로 운임이 반짝 상승한 후 수요 부진으로 다시 하락하는 과정의 반복인 셈이다.
그는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 성장하는 노선에서 번 돈으로 아시아-유럽, 아시아-미주항로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 머스크가 2011~2012년 불황 때만큼 운임인상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머스크가 주도하지 않으면 운임은 오르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성수기에도 하락하고 있는 운임이 8~9월 비수기에 진입하면서 오르기는 어렵다. 최근 SCFI(927.53p)가 역사적 저점(2011년 12월16일 853.61p)에 근접하고 있는 만큼 지수의 추가 하락 여지는 크지 않지만 추세적인 반등 또한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윤 연구원은 해운업 위기설이 잦아 들기 전까지는 보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해운사에 대한 투자의견 '중립'을 유지했다. 우리나라 선사들은 미국과 유럽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그는 올해 유럽과 미주항로 물동량이 감소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영국의 클락슨은 올해 컨테이너 해운수요와 공급이 각각 5.4%, 5.8%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아시아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운송된 수요는 작년에 1.9% 감소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2% 감소했다고 말했다. 클락슨의 수요 증가율 전망치도 하향 조정돼야 함을 의미한다.
윤 연구원은 "적극적인 영업활동으로 전체 수요가 감소하는 시장에서도 해운사의 수송량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지만, 운임이 충분히 오르지 못해 흑자전환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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