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 있다. 애쓴 일이 소용없게 돼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과 같다는 의미다. ‘다시’를 뜻하는 고유어 ‘도로’와 헛수고를 일컫는 한자어인 ‘徒勞’를 적절히 혼용한 훌륭한 조어(造語)다. 비슷한 말로 도로무익(徒勞無益)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에 대한 여러 근원설화가 전해진다. 사모한 여인을 한순간의 실수로 파랑새로 날려 보낸 젊은 탁발승의 이야기에서부터 머리가 나쁜 한 스님이 ‘아미타불’과 ‘나무아미타불’을 헷갈려하다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 한 노파가 두통병에 걸린 스님의 병을 ‘도로병’(徒勞病)이라고 진단하고 낫게 했다는 이야기 등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가 많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해양수산부가 폐지 5년 만에 다시 정부조직에 편입될 예정이다.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하마평도 세간의 입길을 타고 있다. 서강대 전준수 교수부터 시작해 새누리당 박상은 서병수 유기준 의원, 주성호 국토해양부 차관, 최장현 위동항운 사장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다.
정작 해양수산부 부활을 두고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1월22일 내놓은 정부하부조직개편안은 해양계 기대와 거리가 멀었다. 국토해양부의 항만·해운·해양환경·해양조사·해양자원개발·해양과학기술연구개발 및 해양안전심판에 관한 기능,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산·어업·어촌개발, 수산물유통,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양레저스포츠기능이 해양수산부로 이관되는 것으로 잠정 확정됐다. 조선·해양플랜트, 기상·기후 등의 업무는 기존 소관부처인 지식경제부와 기상청에 남게 됐다.
그동안 해양계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해양수산부는 과거 해양수산부와는 다른 통합 해양행정과 물류를 소관하는 강력한 부처로 거듭나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옛 해운·항만·물류 및 해양환경, 수산 업무에서 나아가 분산돼 있는 해양 관련 행정들을 신설되는 해양수산부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요구였다. 정권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혀 줄 해양에 대한 여러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수 있는 힘 있는 부처 탄생을 기대한 까닭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는 당초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인수위가 작명한 이름에서부터 신설 해양수산부는 통합 해양행정 부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항공과 철도 등 일부 물류기능은 과거처럼 찢어지게 됐다. 5년 전 폐지됐던 해양수산부가 그대로 복원되는 이른바 ‘도로 해양수산부’인 셈이다. 인수위가 부처 이기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해운시장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공교롭게도 해양수산부를 폐지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해운산업은 깊고도 넓은 어두움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그 터널은 신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해운사들의 회사채 상환 규모가 2조원에 달하고 이중 1조5천억원이 상반기에 집중돼 있다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분석에서 해운업계의 위기감이 오롯이 묻어난다.
불황의 지속과 함께 정부의 해운산업 지원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해운 불황 이후 해운업계가 요구해온 선박금융공사 설립은 금융권과의 힘겨루기로 답보상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선박매입프로그램 연장은 건설 등 우선순위에 밀려 올해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강력한 해양수산부의 설치가 무엇보다 필요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제 해양수산부 기능 강화의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해양계의 염원이 신정부에서 ‘도로아미타불’이란 탄식으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국회의 지혜와 결단을 주문한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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