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남 편집위원 |
물론 선박은 건조 과정에서부터 고도의 수학 원리와 과학이론이 필요하고 항해술이나 적화법 등에도 어려운 수식이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요금을 계산하는데 동원된 수식 치고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고등수학 공식이었던 기억은 지금도 머리속에서 지울 수가 없기에 해운과 관련된 항만요율 문제만 거론되면 복원할 수도 없는 공식의 기억만으로도 늘 옛 향수를 달랠 수 있어서 흐뭇하다는 생각이다.
도선료를 두고 원가계산을 기초로 한 요율체계와 추가부담 요금의 예측을 주제로 벌이던 숱한 논쟁은 우여곡절과 난상토론만 거듭한 끝에 원위치하고 드디어 협상에 의한 빅딜로 들어가 그간의 숱한 노고는 덮은 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최종 결말을 내고 종식시켰던 것이다.
노사간의 임금협상 문제나 수송수단의 운송요금 결정 및 용역의 댓가로 치르는 각종 수가 계산도 필요한 각종 팩터를 기초로 해서 정밀한 수식으로 계산해 내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해결방법일 것 같지만 이들 대개의 실제 해결방법은 난항 끝에 주는 쪽과 받는 쪽, 이른바 이해 당사자간 ‘양보와 협상의 산물’로 얻어지는 결정이 되레 최선이란 철학(?)이 지금이나 당시 필자가 공감했던 평소의 소신이기도 하다.
일종의 밀실 담합으로 양 업계 대표들이 분명 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적선 때문에 외국적선들로부터도 제 요율을 못 받게 됐으니 우리 배들은 그대로 두고 외국선에만 25%의 인상율을 원안대로 적용 실시하는 조건으로 매듭을 짓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능사는 아니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국제 선박대리점을 비롯한 국내 주재 외국선사들이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
당시 경제기획원(EPB) 산하의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내외국선 간에 요율 차별을 두는 것은 독과점방지법에 위반된다며 차별대우를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력히 으름장을 놓는 터였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나라에서도 각종 항만요율체계에서 예외적으로 자국선 우대규정을 두는 것은 국제 상거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태클’을 걸어왔다.
마침 당시 전 세계 해운업계를 긴장시킨 미국의 신해운법(New Shipping Act, 1984)이 발효를 앞두고 미 연방해사국(Maritime Administration)이 연방해사위원회(Federation of Maritime Committee)를 앞세워 정기선동맹헌장(Code of Conduct for Liner Conferances)과 독과점 규제(Anti-Trust Law)니 차별정책 (Discriminal Pollicy) 금지니 하며 요란스러웠고 또 후진국이나 개도국들의 각종 정부지원(Subsidy Policy) 금지대책 등을 강력히 들고 나와서 길게 시행은 못하고 말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따라서 그 밖에도 “우리 화물은 우리가 만든 우리 배로!”란 슬로건 아래 해운진흥법에 근거한 자국선 우선 정책의 대표적인 악법(?) 사례인 ‘웨이버제도(Waiver/국적선불취항증명서)’와 계획조선제도 등도 입방아에 올라 영아기부터 각종 지원정책의 울타리, 온실 안에서 성장해온 우리 해운은 대내외적으로 큰 장애물을 맞게 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용자 단체의 총수격인 선주협회 조상욱 회장(두양상선 사장) 취임 후 한국해양대학 항해과 4기로 동기동창인 인천항 최학영 도선사가 느닷없이 전국도선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것이었다.
이를 두고 요율문제가 나오면 으레 반대를 일삼는 난공불락의 선주협회를 무마하기 위한 전략적 의도가 있는 회장선출이 아니냐는 우스개 말이 나왔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학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국가차원에서 현재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집권초기의 임명직 정부인사 지명을 두고 ‘고소영’과 ‘강부자’ 인사란 부정적 이미지의 비아냥거림이 널리 회자되어 인사 신조어가 됐듯이 해운계, 특히 도선업과 관련해서도 한국해대의 경우가,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만 해도 목포해대와 몇몇 해군출신이나 전수과 졸업생을 제외하곤 도선사나 선장 양쪽 거의가 대개는 동창이었던 것.
졸업기수를 크게 따지는 상선사관학교의 특성상 3군사관학교와 마찬가지로 선후배간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해 졸업 후 승선근무나 육상 취업 후도 그 서열이 고스란히 연장 적용되다시피 하기에 나도는 재미있는 루머가 많았다. <계속> < 서대남 편집위원 dnsuh@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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