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과거 죽의 장막에서 어느새 가깝고 친근한 이웃나라로 변모했다. 물류분야에서도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최고의 파트너로 부상했다.
한중수교 20주년을 맞아 중국법인 영업 총경리로 6년간 근무했던 현대로지스틱스 정광호 팀장의 중국 물류 경험담을 게재한다. 지난 2006년 상하이 법인 근무를 시작으로 2008년 선전 분공사 총경리, 2010년 상하이 영업 총경리를 맡았던 정광호 팀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 물류현장의 애환을 생생하고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 네번째로 중국에서 브레이크 벌크 화물을 운송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2011년 10월 국경절 연휴. 필자의 경우도 평소 친했던 가족과 함께 2박3일의 여정으로 상하이에서 가까운 ‘황산’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짧게 여행을 다녀오고 나머지 연휴기간에는 그 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으며 독서 삼매경에 빠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연휴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책상에 쌓여있던 책들은 다시 본연의 자리(?)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P’사의 부장님께서 바쁘지 않으면 사무실로 잠깐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순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분명 ‘국경절 연휴’ 기간이고 이틀 후면 출근을 해서 오지 말라고 해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굳이 연휴기간에….
하지만, 어찌 불편함을 밖으로 표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당장 읽던 책을 책꽂이에 원위치하고 택시를 타고 그 분 사무실로 달려갔다. 국경절 연휴라서 사무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고객사에서 급하게 찾은 이유는 10월말에 수출해야 할 프로젝트 화물 때문이었다. 입찰 참여가 가능한지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파악 차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국경절 연휴기간이지만 한국은 연휴기간이 아니라 근무를 하는 관계로 파악한 내용을 한국으로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사무실 방문을 요청 하셨던 것이었다.
이쯤 되면 물류 하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휴일에 고객이 연락 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급한 문제가 발생한 것과 좋은 정보를 나누어 주는 것. 이 두 가지는 사실 물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좋은 기회가 된다. 급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책을 찾도록 하여 고객에게 피드백하면 되는 것이고 좋은 정보를 나누어 주는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항상 긍정적 접근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
결국 고객사의 도움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됐고 가장 중요한 가격적인 경쟁력을 제시하게 되어 대형 프로젝트 (약 2만7000CBM)를 수주하게 됐다.
늘 그렇지만 기쁨은 잠시.. 프로젝트 화물을 수주한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수시로 화물이 생산되는 공장을 방문해 최종 출하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실제 팩킹 리스트와 출하된 제품의 크기가 동일 한지를 지속적으로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객사의 제품을 만들고 있는 중국 제조사(공장)를 수시로 방문하게 됐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한 것도 있었고 은연중에 ‘압박’을 하기 위해서 수시로 공장을 방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 선적 일정에 맞추어 충분히 생산이 가능하다고 했던 화물이 정해진 날짜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 즉, 벌크 선박은 예정대로 상하이 터미널에 도착해 화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화물은 공장에서 최종 마무리 페인트작업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수출 통관을 해야 하고 선적(Loading)까지 해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둘째, 예상 화물량과 실제 부두에 출하된 화물량이 20%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즉, 부두에 도착해 선박에 선적하려고 할 때 확인을 한 화물량이 기존의 팩킹 리스트 화물 사이즈와 비교해 20% 이상 더 늘어난 것이었다. 중국 공장에서 화물생산을 할 때 제대로 사이즈 측정이 되지 않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대충 생산한 것으로 밖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셋째, 선박회사에서 선적 스페이스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화물의 분할 선적을 요청했다. 벌크 화물을 운송해 보신 많은 선, 후배님들께서도 아시겠지만 기존 물량보다 20% 이상 화물이 늘어나면 선박회사는 얼마든지 선적을 거부할 수가 있고 분할 선적을 요청할 수가 있다.
늘 그러하듯 문제가 있는 이유는 풀기 위해서 있는 것. 중국 속담에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집을 나서면 친구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적인 관계를 중요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중국말로는 시(關係)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이에 버금가는 의미로 “백(background)”이라는 단어를 쓴다.
첫 번째의 문제는 단숨에 ‘관시’로 해결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즉, 중국공장 (생산업체)가 직접 상하이항 터미널과 연락을 한 후, 화물이 50% 정도 반입이 됐는데 전체 화물 모두가 수출통관 승인이 난 것이다. 후에 화물 선적이 가능하다는 통지를 받게 됐다.
일반적인 경우, 화물이 모두 터미널l에 반입이 돼야 하고 모든 화물이 반입이 된 상태에서 통관이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인데 중국 회사간의 ‘관시’를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부두에서 화물의 실제 사이즈를 측량하는 중국회사와 중국공장(생산업체)과의 ‘관시’로 인해 크게 문제없이 (추가비용 및 선적관련 부분) 처리가 되는 모습을 직접 곁에서 보게 됐다. 중국에서의 ‘관시’의 파워가 막강함을 물류를 통해서 직접 체험했던 순간들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문제는 선박을 맡은 필자 회사의 몫이었다. 다행히 한국 국적의 선박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관계로 필자 또한 관시(?)로 밀어붙여 볼 계획이었다.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분할 선적은 차후에 발생되는 추가 주문에 영향이 있으므로 반드시 20% 추가 물량까지도 선적을 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게 됐다. 다행히 한국 국적 선박회사는 그동안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흔쾌히 우리의 요청을 수락해 줬다.
결국, 모든 상황은 ‘관시’로 무리 없이 해결되어, 벌크 선박은 상하이 터미널을 유유히 떠날 수가 있게 됐다. 중국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관시’(관계)라고 본다. 그래서 관계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물류 업무를 함에 있어서 실력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서 업무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관시’의 영향력을 통해 어려운 부분도 차근차근 해결하다 보면 분명 더 좋은 결실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계신 많은 선, 후배님들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관시’가 중국에서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처한 상황에서 최적의 방안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시기 적절히 판단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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