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봄에 피는 진달래꽃은 ‘참꽃’이고 진달래가 지면서 연이어 피어나는 철쭉꽃은 ‘개꽃’이라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왜 진달래에는 ‘참’이 붙고 비슷한 생김새에 비슷한 빛깔의 같은 과(科) 꽃인 철쭉에는 ‘개’가 붙었을까하는 자문자답을 했던 때는 내 나이 불혹이 지나서였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쭉이 진달래에 비해 훨씬 아름답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 생명인 꽃이고 보면 ‘참’과 ‘개’가 전도돼야 하지 않을까. 진달래가 ‘참’이 된 그 꽃잎은 먹을 수도 있고, 단 술이나 떡을 빚거나 그 뿌리가 약재로 쓰이는 등, 꽃으로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쓸모 있는 완전한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말에서 ‘개’란 접두어는 개떡, 개살구, 개나리, 개똥, 개꿈 등이 말해주듯이 진짜가 아닌 가짜 혹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 우선적인 것이 아니라 차선적인 것‘을 뜻한다.
또 개(犬)를 의인화하여 속담으로 그리고 비아냥거리는 말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녹아들어 유머와 기지가 번뜩이는 말들도 많다. 천하게 벌어서라도 떳떳하게 살면 된다의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요, 미워하는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싫어하는 짓만을 골라 한다의 ‘개 꼬락서니 미워서 낙지 산다’다. 본바탕이 좋지 아니한 것은 어떻게 하여도 좋아지지 아니한다의 ‘개꼬리 삼년 묵어도 황모(黃毛)되지 않는다’고, 어떤 것을 좋아하면 모든 것이 그것 같이만 보인다의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했고, 어떤 일을 남에게 시키더라도 그의 능력을 잘 살려서 하라는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아라’라고 하며,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이 ‘개도 주인을 알아본다’고, 명절 같은 날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지냄을 이르기를 ‘개 보름 쇠듯’이요, 분주하고 고생스러울 때나 신세가 고달플 때 하는 넋두리가 ‘개 팔자가 상팔자’다. 그리고 또 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개똥밭에 인물 난다’, 징벌적 의미에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다.
소설가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풍속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소설가 이문구는 단편 ‘장천리 소태나무’에서 개와 사람을 능청스러운 충청도사투리로 비교했다. “사램이 개허구 겨뤄봤자 사램이 이기면 개버덤 나은 늠이구, 개헌티 지면 개만두 못한 늠이구, 개허구 비기면 개 같은 늠인디, 그 노릇을 허라구유?”
역시 충남 보령이 고향인 젊은 소설가 김종광은 얼마 전 장편 ‘똥개 행진곡’으로 보신탕 문화에 희생되는 이 땅의 수많은 식용견(食用犬)을 대변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나폴레온처럼 사람의 말과 글에 능숙한 개가 나타나 전국의 똥개들을 이끌고 ‘개와 인간의 공존’을 외친다는 우화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똥개는 사람 대접받는 애완견도 아니고, 군견과 경찰견· 안내견처럼 직업이 있는 개도 아니다. 똥개들은 2018년 개띠 해에 뭉쳐 일어나 성명서를 뿌린다. 진돗개와 삽살개처럼 자신들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신탕이 되지 않도록 요구하고, 애완견으로 대접받는 외래종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주장한다. 똥개들은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새 노랫말을 붙여 부른다. ‘바람처럼 왔다가 보신탕으로 갈 순 없잖아. 우리 개들이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개떼가 시위를 벌이다가 사람들과 충돌하자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5만 마리가 넘는 똥개를 도살한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개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으로 갈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인다. 도살당하지 않은 똥개 3만 마리가 산에 모여 장기전에 돌입하자 군견과 경찰견이 산을 에워싼다. 포위된 똥개들은 먹이가 부족해지자 서로 물고 뜯는 동족상잔을 벌인다. 전염병까지 돌아다녀 똥개들이 하나둘씩 쓰러진다. 혁명은 물거품이 되고 살아남은 똥개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임꺽정’ ‘태백산맥’같은 소설을 패러디하면서 우리 시대의 해학도 곁들인 소설이다.
작가는 “어릴 때 시골집에 개가 7~8마리는 항상 있었는데, 어른들이 정겹게 키우다가 잡아먹기에 그때부터 개가 이상한 건지, 사람이 이상한 건지 생각했다”며 소설을 쓴 배경을 밝혔다.
이렇게 ‘똥개 행진곡’은 똥개를 최하층 민중에 비유하고, 탐욕과 허위에 가득 찬 인간 사회가 진짜 ‘개판’이라고 조롱한 소설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소설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 선거 시비에 휘말리자 한 지역구 당선자는 “지역에서 죽어라 전투를 벌이고 오니 사령부가 ‘개판’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 말이 나오고 열흘이 지나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충돌해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젊은 여성 당원이 조준호 전 공동대표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사진이 압권이었다. ‘똥개 행진곡’ 마무리 부분에서 혁명을 외친 똥개들이 산에 고립되자 먹이를 놓고 싸우는 장면을 절로 떠올리게 했다.
우리말에선 개가 남을 비하(卑下)할 때 자주 이용된다. ‘개와 똥을 다투랴’는 속담은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헛소리를 ‘개똥철학’이라고 한다. 인민을 굶주리게 한 김일성 주체사상은 벌써 개똥철학이 된 지 오래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음지(陰地)에서 개똥철학을 신봉하는 사람은 개처럼 똥을 보고 침을 흘리는 꼴이다.
진짜 개와 똥을 놓고 다퉈서 이기면 다행이지만 비겨봤자 개보다 나을 게 없다. “개와 비긴 사람은 보신탕에 손대지 말라. 몸보신 하겠다며 달려든다면 동족의 살을 물어뜯는 광견(狂犬)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개 이미지가 나빠져 보신탕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개들이 아우성 칠 듯하다.
“빨갱이들이 왜 이렇게 나대느냐?” “빨갱이들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설쳐도 되는 거냐?” “걔네 막장 드라마를 보면 TV 드라마가 정말 재미없어지더라.”….
오늘따라 조선 숙종 때 소론(少論)의 거두였던 조지겸(趙持謙·1639~1685)의 우언시(寓言詩) 싸우는 개 / 鬪狗行(투구행)가가 떠오르는 것일까.
鬪狗行(투구행)
뭇 개들 사이좋게 지낼 때는
꼬리 흔들며 잘도 어울려 다니지
누가 썩은 뼈다귀를 던져주었나
한 마리 일어나자 우르르 달려들어
으르렁 거리며 서로 싸우네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어 소란스럽네
추우(騶虞)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늘 위 구름에 높이 누워 있어서지
동물의 행태를 통해 인간사를 말하려는 의중이 행간에 드러난다. 평소에는 친한 듯 지내다가도 뼈다귀만 발견하면 목숨 걸고 싸워 차지하려고 드는 개들의 모습에는 이익이 나타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낚아채 가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덧씌워져 있다.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영상이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승자는 없고 모두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스무 살 전후의 젊고 패기 찬 선비의 눈으로 보니 정계의 진흙탕에서는 개싸움이 다반사였다. 훗날 당쟁의 일선에 섰던 그도 한때는 구름 위 높이 누운 전설의 짐승 ‘추우(騶虞)’처럼 살리라 다짐했으리라.
왜 이리도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란 속담이 가슴에 와 닿을까!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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