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
●●● 옛날에는 ‘명의’하면 엑스레이(X-ray) 없이도 내장을 다 들여다 본 듯 보이지 않는 병소를 환히 보듯 하고 환자의 말만 듣고도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의사를 명의라 했다. 우리나라의 허준이나 중국의 화타나 편작이 하나같이 이렇게 알려져 있다.
그러면 오늘날 명의의 정의는 어떠한가? 무릇 환자들은 누구나 위와 같은 명의를 만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명의를 만나봤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하기야 오늘날처럼 내장을 들여다보는 일은 기계가 다 해 주고, 인터넷에서 명의라고 소문난 의사에게 진료를 받더라도 세 시간 기다려 삼 분 남짓 진료를 받는데 그가 명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니, 환자를 삼 분 밖에 못 봐주면서 설령 그가 참으로 명의라 하더라도 어떻게 명의의 실력을 보여줄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예의 그 ‘명의’를 만나봤다. 본 정도가 아니고 그 분은 나의 현재 주치의이니까 명의임을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 내가 평촌으로 이사를 오니 집 바로 앞에 H대 성심병원이 있었다.
그곳의 환경이 좋다기에 ‘이런 곳에서 진료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생각이 들었던 참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모 대학병원 의사에게 심장내과 전문의 소개를 부탁했더니 바로 그 H대학병원의 심장전문의 O선생을 소개해 줬다.
나와 첫 진료 때 O선생은 내가 가져간 예전 병원의 차트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나에게 상세히 묻고 열심히 들었다. 적어도 30분 이상은 소비했을 거다. 그리고는 나에게 “자, 이제 신체 상태를 잘 알았으니 앞으로 30년간 건강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계획을 짜자!”고 하는 게 아닌가?
이에 나와 함께 간 내 아내는 폭소를 터뜨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받았던 시기였는데, 당시 수술 부위가 다시 협착 돼 앞으로 몇 년을 살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장 나부터도 몇 년을 살 지 모르겠는데 앞으로 30년이라니….
하지만 한번 크게 웃고 나니까 정말 내 건강이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건강이 그렇게 나쁘다면 아무리 농담이라도 의사가 그런 태도를 보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 내 건강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으로 믿고 싶어졌다.
이런 첫 대면 이후 두 번째 진료 때, 다리가 붓는다고 했더니 약을 바꿔주며 사흘 후에 다시 오란다. 사흘 후에 가보니 다리가 붓지 않았고, 그는 나에게 약을 잘 못 써서 미안하다며 이제부터는 바꾼 약으로 계속 쓰자고 했다. 나는 이렇게 사과하는 의사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그 때 부정맥 증세가 있어서 겁을 먹고 있던 터라 여러 날 출장을 가도 괜찮은지 물었고, 의사가 가도 좋다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이후로도 겁을 먹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내게 O선생은 “나의 건강상태로는 규칙적으로 조깅을 해도 될 정도니 아무 염려 말고 다녀오라”며 “자기가 건강을 보증한다”고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환자의 건강을 보증하는 무모한 의사도 있구나’ 하며 내심 놀랐지만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 좋은 의사도 무서운 데가 있었다. 내가 불면증으로 잠을 못자 일주일분의 수면제를 먹고도 보름치를 더 달라고 하자 단호하게 거절하며 “정신력으로 극복하세요! 지금 마음이 무너지면 우울증에 걸려서 다음부터는 정신과를 거쳐 나에게 진료 받으러 오게 됩니다”란다. 이에 나는 “알겠습니다” 하고는 그날부터 수면제 먹지 않고 밤낮으로 일에만 몰두했더니 불면증이 사라졌다.
농담 한 마디로 ‘환자와 의사’라는 무거운 관계를 허물고 마음 편한 인간관계를 조성하고 환자가 겁먹고 있을 때는 자신감을 심어주며 환자가 뒷걸음질 칠 때는 물러나지 말라고 호되게 질책도 해주고 자기가 잘 못 쓴 약에는 즉시 사과하고 시정하는 나의 주치의의 모습에서 나는 여러 가지 인간적인 면을 발견했다. 나는 오늘날의 ‘명의’란 이런 의사라고 확신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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