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운기업들은 불황의 거친 파도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운임은 급전직하로 하락했으며 연료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기선사들은 2010년 반짝 흑자 경영에 성공한 뒤 1년 만에 다시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우리나라 양대 국적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해 수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823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9조5233억원으로 1% 감소에 그쳤지만 순이익은 2010년 2896억원에서 큰 폭의 적자로 전환했다. 컨테이너부문에서 5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반면 벌크 부문에선 535억원의 영업이익을 일궜다. 지난해 정기선 시장의 극심한 부진을 읽을 수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3670억원 4732억원의 영업손실과 순손실을 각각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액은 7조1878억원으로 10%가량 뒷걸음질쳤다.
지난해 적자경영 ‘선사들 자승자박’
세계 1위 정기선사인 머스크라인도 적자 성적표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AP묄러-머스크 그룹의 정기선 부문은 영업손실 4억8300만달러 순손실 6억200만달러를 냈다. 2010년에 영업이익 28억2천만달러 순이익 26억달러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한 뒤 1년 만에 다시 적자의 늪에 빠졌다. 머스크라인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21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다 하반기 부진으로 연간 실적에서 손실을 입었다. 통상적으로 정기선 시장의 성수기라 일컬어지는 하반기에 오히려 극심한 침체로 빠져들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 7위 정기선사인 싱가포르 APL은 지난해 4억46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를 피해가지 못했다. 매출액은 전년대비 5% 감소한 79억달러였다.
반면 독일 하파그로이드는 흑자 성적을 낸 것으로 파악돼 눈길을 끈다. 하파그로이드는 영업이익(EBIT) 1억100만유로를 거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10년의 5억8천만유로에 비해 5분의 1토막 난 실적이긴 하지만 이익을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매출액이 1억유로 하락했음에도 비용절감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까지 지난해 영업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선사들도 대부분 큰 폭의 적자를 낸 것으로 관측된다. 코스코나 차이나쉬핑 짐라인 양밍 CSAV 등이 지난해 3분기까지 심각한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기선사들은 지난해 적자경영의 쓴잔을 마셨지만 물동량 실적에선 성장곡선을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머스크라인은 지난해 7%나 늘어난 1620만TEU의 컨테이너를 수송했다. 아시아-유럽항로에서 16%, 아프리카, 남미항로에서 각각 19%, 17%의 물동량 성장을 보였다. APL의 지난해 수송물동량은 5% 늘어난 298만FEU였으며, 하파그로이드도 물동량이 2010년 494만7천TEU에서 지난해 520만TEU로 5.1% 늘어났다고 밝혔다.
결국 선사들의 덤핑 경쟁이 실적 악화의 주범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운임하락은 유럽항로에서 가장 심각했다. 지난해 초 1400달러선(20피트 컨테이너 기준)이었던 상하이-유럽항로 운임은 연말께 490달러선까지 추락했다. 1년 새 3분의1 토막이 나 버린 것이다.
머스크라인은 컨테이너당 평균 운임은 40피트(FEU) 기준 2828달러로 1년 전 3064달러에서 7.7% 하락했다고 말했다. APL의 경우 평균 운임이 2010년 2790달러에서 2500달러로 10% 하락하면서 적자성적표의 단초가 됐다. 하파그로이드도 컨테이너당 평균 운임이 20피트(TEU) 기준 1569달러에서 1532달러로 2.4% 하락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운임하락 폭이 다른 선사에 비해 크지 않았던 게 흑자경영의 키워드였다.
운임하락은 오롯이 공급과잉의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로이즈리스트인텔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컨테이너선대는 5047척 1534만TEU로 2010년의 1417만TEU에 비해 8.3% 늘어났다. 이 가운데 1만TEU급 초대형선은 총 110여척 140만TEU가 운항 중으로 대부분 아시아-유럽항로를 운항거점으로 삼고 있다. 물동량 성장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선복이 집중 투입된 유럽항로를 중심으로 운임 약세가 표면화 됐다. 특히 지난해 10월 말부터 출범한 머스크라인의 매일운항 서비스인 데일리머스크는 운임 급락에 기름을 부었다.
연료비 상승이란 또 다른 악재는 선사들을 그로기 상태로 내몰았다. 연료비가 늘어남에도 선사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운임에 반영시키지 못했다. 선박 연료로 쓰이는 벙커C유의 t당 평균가격(380CST 기준)은 2010년 465달러에서 지난해 653달러로 40% 이상 치솟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들어선 750달러대까지 급등했다. 이란 사태 등의 중동 정정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기자본까지 개입하고 있어 유가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선사들의 고민이다.
머스크라인은 지난해 68억달러를 연료유 구입에 쓴 것으로 집계됐다. 2010년의 48억달러에서 20억달러나 늘어났다. 1년 사이 무려 2조2천억원을 연료비로 더 쓴 것이다. 그 결과 머스크라인 전체 비용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전 21%에서 지난해 26%로 확대됐다.
G6 유럽항로 첫선, 운임회복 도화선 될까
올해 들어 선사들은 지난해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분명한 듯 보인다. 서비스 재편과 선복감축, 잇따른 운임회복, 유가할증료 별도 징수 등에서 선사들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올해 정기선업계 최대 화두는 ‘합종연횡’이었다. 정기선사들은 유럽항로에서 데일리머스크에 맞서 강력한 구조개편 드라이브를 가동했다. 세계 2위와 3위 선사인 스위스·이탈리아 MSC와 프랑스 CMA CGM의 제휴를 시발점으로 현대상선이 속한 뉴월드얼라이언스(TNWA)와 그랜드얼라이언스(GA)가 G6로 뭉쳤으며 한진해운의 CKYH얼라이언스는 대만 에버그린과 손을 잡았다. 서비스 제휴로 노선을 확대하면서도 선박취항에 따른 비용은 절감해 올해를 흑자전환 원년으로 삼겠다는 회심의 카드다.
이들 가운데 G6가 가장 먼저 첫 서비스를 선보인다. G6는 3월부터 아시아-북유럽 노선 총 6곳을 띄운다. 취항선박도 최대 1만4천TEU급으로 대폭 커진다. 이 중 우리나라 기점 노선은 9일 광양 취항과 함께 시작될 예정이다. 운항선대 8000TEU급 컨테이너선 10척 중 현대상선이 8척을, 하파그로이드와 OOCL이 각각 1척씩 배선한다. G6는 부산과 중국 다롄·신강을 기점으로 북유럽을 잇는 루프2는 취항을 잠정 연기함으로써 전체적으로 10%의 선복감축 효과를 얻었다.
CKYH·에버그린 그룹도 3월 말부터 서비스 개편에 나선다. 이 그룹은 북유럽 노선 7곳을 선보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CKYH의 4개 노선과 에버그린의 3개 노선이 선복맞교환(스왑) 방식으로 통합운영된다. 한진해운은 궤를 같이해 기존 CKYH얼라이언스의 우리나라-북유럽 노선인 NE6을 단독 배선으로 전환한다. 현재 NE6은 한진해운이 8척 코스코가 2척을 배선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이달 25일 광양 입항을 시작으로 1만1천~1만3천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0척을 모두 자사 운영 선박으로 투입할 방침이다.
MSC와 CMA CGM도 4월 초부터 총 6곳의 북유럽 노선을 취항할 예정이다. CMA CGM은 별도로 머스크라인과 지중해 노선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취항선복 감축과 비용절감의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 머스크라인은 또 최근 표면화되고 있는 컨테이너 장비 부족을 이유로 한 항차를 빈 컨테이너만 나르는 이른바 ‘블랭크운항’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머스크라인의 북유럽항로 선복은 15%가량 감축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항로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임회복도 본격화된다. 지난 1월에 이은 운임회복 프로그램 제2라운드에 돌입하는 셈이다.
선사들은 이달부터 아시아-유럽항로에서 TEU당 700~900달러에 이르는 운임인상(GRI)을 실시한다. 시기적으로 3월은 비수기에 속하지만 선사들은 기어코 칼을 빼들었다. 운임회복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경우 운임은 현재 수준의 갑절인 TEU당 1500달러안팎까지 껑충 뛰게 된다. 이 같은 폭으로 운임이 인상된 전례는 일찍이 없었다.
1월 GRI로 운임하락 방지 또는 소폭 인상이란 효과를 봤다면 이번 GRI를 수익을 챙기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선사들을 배수진을 치게 만든 배경이 됐다. 특히 지난해 데일리머스크 서비스로 경계의 눈초리를 한껏 받았던 머스크라인이 가장 먼저 운임인상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선사들은 이와는 별도로 그동안 운임에 포함돼 부과됐던 유가할증료(BAF)를 별도로 떼어 내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현대상선이 TEU당 80달러의 VOB(Various Ocean BAF)를 도입한 것이 이런 맥락이다. 다른 선사들도 50달러 이상의 BAF를 별도로 부과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진해운은 BAF 860달러 외에 580달러의 FRC(유가회복할증료)도 징수한다고 화주들에게 공지한 상태다.
선사들은 중동항로에서도 이달부터 TEU당 500달러의 운임을 올린 뒤 중순께 북미항로에서 FEU당 300달러를 인상키로 했다. 중동항로도 유럽항로와 마찬가지로 운임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운임동맹이 폐지된 유럽항로와 달리 중동항로와 북미항로에선 중동운임협정(IRA)이나 태평양항로안정화협정(TSA) 등을 중심으로 운임회복에 나서는 만큼 성공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선사들은 관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운임인상안을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석률 상승 호재에 선사들 자신감
소석률(선복 대비 화물 적재율)이 높다는 점은 선사들에게 호재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선사들은 2월 말 현재 유럽항로와 북미항로 소석률이 90%를 훌쩍 넘기고 있다고 전했다. 화주들이 대대적인 운임회복 공습을 피해 물량을 밀어내기 한 효과가 크다. 운임회복을 화주들도 수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적선사 한 관계자는 “현재 지중해 항로의 경우 선적예약이 힘들 만큼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유럽항로의 경우 1만~1만5천달러의 적자운항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선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운임회복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사들은 이번 운임회복의 성패 여부를 대형화주와의 재계약에서 찾는다.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와 같은 일반화주들을 대상으로 한 운임인상은 성공적인 진행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수송계약(SC)을 마친 대형화주들의 경우 인상분 적용이 어려운 까닭이다. 연초 체결한 SC에서 대형화주들의 운임은 지난해 연말 시장운임을 기준으로 적용됐다. 이번 GRI가 적용된 일반화주 운임에 견줘 3분의1 수준이다. 한진해운이 삼성 LG 현대·기아자동차를 전담하는 ‘키어카운트팀’을 최근 발족한 것은 대형화주에 대한 선사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시사한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현재 선사들이 지난 1월에 체결했던 대형화주들과의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운임회복을 하려고 한다”며 “대형화주들의 운임을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선사들의 이번 노력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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