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들 대체품목 발굴 고민
●●●지난해 평판디스플레이(LCD, LED)의 초강세로 초호황기를 맛본 항공화물시장이 올해 예사롭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LCD수요가 급감하면서 상반기 실적도 곤두박질 쳤다. 7, 8월에 접어들어서도 수요 부진의 여파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LCD 수출이 미국경기 회복과 함께 하반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미국, 유럽에서 불거진 재정위기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으면서 기대감마저 제동이 걸려 버렸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한국지부의 CASS(화물정산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가입 항공사들의 올 상반기 한국발 항공화물실적은 31만3224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만8212t보다 17.2% 감소했다.
특히 항공화물시장의 주요 수출지역인 미국과 유럽의 경기침체로 수출물량이 급감했다. 항공사들은 북미지역에 6만3327t을 수송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7% 감소했으며 유럽지역도 6만8812t을 수송해 27.1% 감소했다. 미주 유럽으로 대거 수출되던 평판디스플레이의 부재가 가장 큰 타격을 줬다. TV 판매 부진으로 현지에 재고가 쌓이면서 수출물량이 줄고 TV용 LCD 패널 가격도 상당히 하락한 상태다. 스마트폰, 태블릿PC 강세에 비해 PC나 TV 수요가 상대적인 열세에 놓인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무선통신기기의 높은 성장에도 LCD와 노트북 등의 주요 중량 항공화물 부진으로 중량기준 실적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LCD 물량감소로 항공사 전체물량 감소
공급과잉 상태인 LCD패널 제조업체들의 생산 공장 건립에도 차질이 생겼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에 건설하려던 8세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공장 착공을 연기했다.
전 지역에서 수송량이 줄어든 반면 중동지역은 오히려 25.6%가 늘었다. 이란, 사우디, UAE 등으로 자동차부품 수출이 증가하면서 물량이 늘었다.
항공사들과 대리점의 수송실적도 감소했다. 10대 항공사들의 상반기 수출물량은 전년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대한항공은 13만5714t을 수송해 굳건히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전년대비 22.1% 급감했다. 큰 포지션을 차지하던 미주 유럽행 LCD 화물이 줄자 감소폭을 그대로 떠안았다.
아시아나항공은 13.1% 감소한 7만7224t을 처리했다. 아시아나항공은 LCD, 광학기기, 편직물 등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최근 화물기가 추락하면서 적잖은 타격을 받았지만 9월 계획했던 미주 마이애미와 포틀랜드 신규노선 취항은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다. 향후 2~3년의 영업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10대의 화물기를 운영하던 아시아나는 화물기 추락으로 1대를 소실했지만 종전 공급을 맞추기 위해 얼마 전 화물기 1대를 임차했다.
캐세이패시픽은 1만342t을 처리해 지난해보다 0.9% 감소했다. 다른 항공사들의 수송량이 급감하면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선전했다는 평가다. 캐세이패시픽 관계자는 “한국시장에선 수송량을 유지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상반기 화물수송은 감소했다” 며 “아무래도 스팟 물량보다 안정적인 수송계약을 늘려 꾸준한 물량을 유지하려는 영업방식이 상반기를 잘 버텨낼 수 있게 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미주 화물량이 많았던 폴라에어카고는 7955t을 수송해 전년대비 24.2%나 급감,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이 가운데 북미지역 수송실적은 2545t을 기록, 지난해 상반기 4194t보다 39% 감소했다.
타이항공은 6058t을 처리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7% 감소했다. 타이항공은 LCD 패널 물량 감소와 노키아 휴대폰 물량이 줄면서 수송량이 크게 줄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항공사들은 LCD를 대체할 품목을 찾는데 혈안이다. 그 중 자동차 부품이 수요가 늘면서 새로운 효자품목으로 거론되고 있다.
LCD 빈자리 자동차 부품이 채우나
무역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평판디스플레이와 칼라 TV 항공화물은 각각 76%, 67% 감소한 반면 자동차 부품은 13% 늘었다. 한국산 자동차 판매 증가로 A/S 부품 항공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 유럽, 러시아 등 현지에 진출한 자동차 제조업체의 생산이 확대되고 일본 부품업체들의 공급 차질로 한국에서 나가는 부품 증가가 꾸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EU FTA로 자동차 부품에 부과되던 4.5%의 관세가 철폐되면서 수출에 대한 기대도 크다. 아시아나항공은 LCD 시장을 대체할 스마트 제품 수요가 항공화물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천공항공사는 하반기 전망보고서에서 “믿을 것은 자동차 부품”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의 다섯번째 해외생산거점인 체코공장과 러시아공장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으며 지속적인 성장세가 기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은 보급률이 어느 정도 정점에 달했지만 태블릿 PC의 보급이 본격화되고 있는 점에서는 아직 초기단계라고 파악했다.
대리점 업계는 LCD를 대체할 품목으로 자동차부품을 정했지만 당장의 부족한 수요를 채우기에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워낙 LCD 물량이 줄어 요즘 부쩍 늘고 있는 자동차부품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기존에 전체 수송에서 차지하고 있던 LCD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푸념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자동차 수요가 늘면서 타이어까지 항공으로 실어 나르는 등 자동차 부품 물량이 늘었지만 원래 해상으로 수송되던 화물이라 수요를 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품목”이라고 말했다. ‘형만 한 아우 없다’고 LCD와 같이 꾸준한 수송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수송할 물량이 없다는 점도 문제지만 점점 내려가고 있는 항공운임도 항공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인천-유럽(런던)운임이 평균 kg당 4000원에서 2500원 선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항공사 한 관계자는 “9월부터 입찰에 들어가는 삼성과 LG가 운임을 5% 가량 낮추는 조건을 내세울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운임을 인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대리점과 화물칸할당협정(BSA : Block space agreement)을 맺고 있는 항공사들의 상황은 나은 편이다. BSA는 항공사가 대리점에 일정부분 화물칸을 반기 또는 연간 계약 판매하고 화물을 싣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전세화물칸 개념이다. 화물칸을 빌린 대리점은 수익을 남기기 위해 무조건 많은 화물을 촘촘히 실어야 이득이다. 항공화물시장 호황기에는 BSA를 맺게 되면 대리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화물칸 확보가 장점이지만 물량이 적을 때는 화물칸을 채우지 못해 속이 탈 수 밖에 없다.
항공사와 BSA를 맺고 있는 한 콘솔(화물혼재)업체는 “화주와의 신뢰도를 위해 BSA를 맺고 있지만 시황이 나아지지 않다보니 그만 두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항공사입장에서는 BSA를 맺은 경우 운임이 떨어져도 안정적인 수익이 확보되지만 대리점은 손해를 본다.
한 외국항공사 관계자는 “이렇게 시황이 안 좋다고 하지만 유럽노선 등에 BSA를 맺은 몇몇 항공사는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리점도 삼성과 LG의 물량을 싣지 않는 곳은 항공운임 하락에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삼성과 LG의 LCD 화물을 싣지 않는 항공화물 대리점들은 항공사의 운임이 내려가면서 화주에게 통상 항공운임의 10%를 받던 마진을 20% 이상 남길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물량이 없는 곳은 수요에 목말라하며 허덕이는 곳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국내화물을 취급하는 대리점들은 물량은 줄어도 수익은 높은 편이다.
항공화물대리점도 상반기 LCD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으며 오히려 상위 10위권의 대리점들은 항공사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상반기 10대 대리점이 수송한 화물은 10만4798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4만8138t 보다 29.3% 가까이 줄었다.
범한판토스는 상반기 1만8189t을 취급해 지난해 같은 기간 3만3124t보다 무려 45.1% 감소했다. 중동과 CIS(독립국가연합) 지역에서 스마트폰과 자동차 부품 수출에서 소폭 증가했지만 전 지역 물량이 크게 감소했다.
범한판토스 관계자는 “수송물량 중 디스플레이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시장 감소보다 큰 감소폭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로지텍은 1만1797t을 수송해 전년 동기 2만1182t보다 44.3% 수송량이 급감했다. LG와 삼성의 LCD 수출물량을 도맡아 처리하다보니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의 물량을 싣는 한 대리점 관계자는 “삼성 물량을 수송하는 대리점은 대부분 물량이 저조하다”며 “그나마 GM 자동차 물량이 크게 늘면서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콘솔업체인 코스모항운은 1만2482t을 수송해 전년대비 19.7%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대기업 하청업체들의 물량을 처리 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콘솔업체에게 넘어오는 LCD 물량은 대폭 줄었다.
코스모항운 관계자는 “자동차부품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LCD 부품의 경우 많이 줄어 미주, 유럽 물량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콘솔업계에 따르면 현재 LA향 콘솔화물은 40%이상 줄어 처리할 물량이 없는 형편이다.
대한통운은 20.9% 급감한 1만1224t을 처리했다. 대한통운측은 IT제품 물량 감소폭이 컸지만 구체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DHL글로벌포워딩은 35.8%가 급감한 9978t을 처리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글로비스의 자동차부품을 수송하다 계약이 끝나면서 수송량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대리점들의 상반기 수송실적이 모두 크게 감소한 가운데 유독 긴테츠월드익스프레스(KWE)는 오히려 물량이 33%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 KWE는 상반기 물량증가는 특별히 물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수입자가 운송사를 지정(노미네이션)한 화물이 꾸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0대 대리점에 속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대리점들은 상반기 심각한 침체를 경험했다. 월 300t가까이 처리하던 한 대리점은 3분의 1토막 난 물량을 싣고 있기도 하다.
하반기에도 성수기 기대 힘들다
상반기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항공업계는 하반기에도 큰 기대를 두지 않는다. 지난해 하반기 화물기를 늘린 외항사의 공급량이 여전한 가운데 8월 말에도 화물기 투입이 늘면서 3분기 성수기 기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론은 ‘2분기보다는 호전되지만 성수기까지 가지 않을 것’으로 모아졌다.
루프트한자가 8월말부터 화물기를 투입할 예정이며, 카타르항공 1대, 실크웨이항공이 1대를 투입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항공화물수요는 늘지 않는데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9월에는 연기됐던 대한항공의 국제선 화물기가 취항한다. 근 1년을 기다려 취항하게 되는 화물노선은 중국 상하이, 애틀랜타, 시애틀을 잇게된다.
7월 한-EU FTA가 발효되면서 항공을 이용한 수출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지만 수입화물만 늘고 오히려 한국발 수출은 줄었다. 관세청이 발표한 ‘7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對EU 수출은 49억81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5.3% 감소했다. 자동차 수출물량은 93.8%나 늘었지만 항공시장의 주력 수출물량인 반도체와 액정디바이스는 각각 47.6%, 44.8%가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독일법원이 삼성전자의 태블릿 PC 갤럭시 탭 10.1에 대해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판매를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리면서 하반기 유럽행 항공화물 수요에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 4월부터 애플은 삼성이 특허법을 위반하고 디자인을 도용했다며 전 세계적인 소송을 시작했고 법원은 네덜란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지역에 갤럭시 탭10.1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삼성은 현재 항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국항공사 관계자는 “11월까지 물량이 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를 대비한 물량이 9월 중순부터라도 늘어야 하는데 예약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내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유럽행 물량이 다시 늘겠지만 한 달을 내다보기 힘든 항공업계엔 먼 미래다. 하반기 전망에 대해 한 대리점 관계자는 “미국신용등급 하락 등 세계적인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긍정과 부정도 얘기하기 어렵다”며 “성장세가 회복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스마트기기로 기존 IT제품 수요가 줄면서 하반기에도 항공화물 중량 감소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산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수출로 물량 반등은 있겠지만 LCD의 완전한 침체로 의미있는 수준의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대한항공은 “하반기 자동차 , LCD, 전자 부품 등을 위주로 수요회복세를 조심스럽게 전망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하반기에는 일본부품 소재와 IT제품 재고 및 생산시설 회복으로 일본발 항공화물의 증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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