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 ‘BAF 별도 징수’ 키워드
●●●지난해 말부터 시황약세로 속앓이했던 북미항로가 4월 말 2011년 운송계약(SC) 체결을 마무리했다.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인상된 운임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럽항로는 지난해까지 강세를 보였던 시황이 급격히 내림세를 타면서 근심이 크다. 게다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유가는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선사들은 운임하락을 방어하는 한편 유가할증료(BAF)를 효과적으로 부과하는 전략을 향후 실적 개선의 화두로 삼았다.
북미항로 SC서 인상 가이드라인 적용 실패
북미항로에선 선사들과 화주들의 SC 체결이 4월까지 마무리되면서 5월부터는 새롭게 계약한 운임수준으로 운송이 이뤄질 예정이다. 당초 선사들은 태평양항로안정화협정(TSA)이 제시한 미서안 400달러 미동안 600달러(40피트 컨테이너 기준)의 운임인상을 고수한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유럽항로 운임이 급전직하로 내려간 상황에서 북미항로에서만큼은 운임회복을 성공시키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약세를 띤 물동량이 문제였다.
북미항로 물동량은 지난해 3분기 성수기를 기점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LA항 수입 물동량은 지난해 3분기 114만1천TEU에서 4분기 98만2천TEU 올해 1분기 91만1천TEU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롱비치항 수입 물동량도 지난해 3분기 89만4천TEU를 고점으로 4분기 83만4천TEU 1분기 66만7천TEU로 약세 기조를 나타냈다.
선사들은 지난 1분기 동안 자동차 관련 물량들이 늘어난 반면 가전제품은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자동차 관련 물량이 두 자릿수로 늘어났지만 삼성이나 LG의 가전 물량이 예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며 “특히 삼성전자 가전 물량은 작년 대비 50%나 줄었다”고 전했다.
다만 일부 선사들은 가전사들이 1분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향후 판매확대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큰 만큼 물동량도 동반 상승할 것이란 낙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미 FTA 발효를 앞두고 자동차 물동량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긍정적이다. 반면 중국선사인 하이난PO쉬핑과 그랜드차이나쉬핑, 대만선사인 TS라인 등이 대거 북미항로에 진출한 점은 운임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어 우려스런 대목이라고 선사들은 전했다.
향후 전망이 다소 낙관적이라고 하지만 SC 협상은 줄다리기가 계속된 모양새다. 선사들은 운임인상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 반면 대형화주들은 한 푼이라도 더 깎기 위해 혈안이었던 까닭이다. 선사들은 태평양항로의 손익분기점(BEP) 수준을 40피트 컨테이너(FEU)당 1900~2000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적자운항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번 SC에서 선사들은 중소화주들을 대상으로 200~250달러 정도 인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안항로의 경우 FEU 기준으로 2300달러 안팎까지 인상된 것이다.
문제는 삼성이나 LG 등 대형화주였다. 대형 가전사들은 SC 협상에서 BEP보다 낮은 수준을 요구해 선사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선사들은 화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선사들은 SC 체결이 여의치 않을 경우 지난 2009년 첫 도입해서 효과를 봤던 별도의 운임인상(GRI)을 실시해 수익 개선을 꾀한다는 전략을 구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현재 수요가 안 좋아 시장이 약세이긴 하지만 연간 전망은 밝은 편”이라며 “SC에서 당초 계획보다 낮은 수준으로 계약한 뒤 6~7월에 GRI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항로, 물동량 급감에 선복과잉 ‘설상가상’
유럽항로는 물동량이 최근 급감한데다 선복마저 과잉현상을 빚으며 선사들을 옥죄고 있다. 유럽항로 물동량은 올해 2월 물동량이 급감, 운임하락의 도화선이 됐다. 영국 컨테이너트레이드스터티스틱스(CTS)에 따르면 2월 아시아-유럽항로 수출물동량은 83만TEU를 기록, 1월의 131만1천TEU에서 36.6% 폭락했다. 지난해 같은 달의 94만3천TEU와 비교해서도 11.9% 감소했다.
유럽항로는 그동안 태평양항로의 시황약세를 상쇄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던 터라 시황의 급작스런 하락반전은 선사들에게 큰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선사들의 대형선 투입이 이어지면서 운임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머스크라인은 세계 최초의 1만TEU급 이상 컨테이너선인 <엠마머스크>호를 포함해 1만5천TEU급 선박들로 구성된 중국-유럽 노선인 AE7을 서비스 중이다. 머스크라인은 최근 유럽항로 시황이 기울자 전체 12척으로 운항하고 있던 이 노선에서 1만5천TEU급 선박 2척을 빼는 대신 8950TEU급 선박을 투입해 운항기간 단축과 선복감축을 동시에 꾀했다. 선박 교체로 해당 노선의 선복량은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MSC는 지난해부터 1만4천TEU급 선박들을 유럽항로에 순차적으로 투입 중이다.
프랑스 선사 CMA CGM은 중국-유럽 노선인 FAL5 서비스에 1만3800TEU급 컨테이너선을 대거 투입했으며 CKYH얼라이언스는 2분기부터 유럽항로 개편을 통해 취항선박 규모를 평균 8천TEU로 대형화했다. 특히 한진해운과 코스코는 6번째 유럽항로를 열면서 1만TEU급 선박을 배선했다. 새롭게 한국을 취항하게 된 이 노선엔 선박 10척이 투입돼 감속운항 방식으로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물동량은 감소세인 반면 선박량은 크게 늘어나면서 유럽항로의 운임은 다시금 빠른 하강세를 보이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재 부산-유럽간 수출항로 운임은 TEU당 평균 1천달러대 안팎을 기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적선사들의 경우 1300~1400달러대를 부과하고 있는 반면 외국선사들은 물량 유치를 위해 저가영업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상반기 2300~2500달러대와 비교해 반토막 난 셈이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유럽으로 주당 1만5천TEU가량이 움직이는데 최근 들어 화물을 조금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선사들의 경쟁으로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며 “시황 주기가 짧아진데다 해운동맹도 없어져 예측이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세계 해운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중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국국제해운망에 따르면 중국-북유럽 수출항로 운임은 최근 99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1년 전의 1800달러대에 비해 역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른 선사 관계자는 “중국 중심으로 스케줄이나 해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정작 중국이 약세를 띠고 있어 걱정”이라며 “예전처럼 중국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선사들은 이렇다할 운임회복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도 한동안 운임약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유럽항로에선 선사간 양극화 조짐도 포착되고 있다. 수송기간이 짧거나 기항요일이 유리한 선사들은 다소 상황이 좋은 반면 그렇지 못한 선사들은 발을 굴리고 있다. 게다가 자동차 관련 화물을 싣는 선사들은 긍정적인 입장인 반면 이 화물에서 배제된 선사들은 향후 시황을 불투명하게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자동차 수출은 EU 뿐 아니라 비EU 지역에서도 크게 늘어나며 관련 수송선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러시아를 포함한 비EU 지역에 대한 자동차 수출대수는 7만239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7670대 보다 두 배 가까이(92.2%) 증가했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EU 회원국으로의 수출대수인 7만6366대를 육박하는 수치다. 결과적으로 자동차 관련 반제품(CKD)이나 부품 수송도 같이 늘어나 선사들에게 힘을 보탰다.
1분기 수익성 악화 유가상승이 ‘주범’
해운업계는 기본운임 회복과 별도로 현재 상황에선 BAF의 원활한 징수가 무엇보다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으며 선박연료유인 벙커C유 가격도 싱가포르항 기준으로 t당 670달러(IFO 380 CST 기준)를 넘어선 까닭이다.
지난해 310만t의 연료를 쓴 한진해운의 경우 올해 연료유 가격이 t당 100달러 가량 오른다고 가정할 경우 3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추가 발생하게 된다. 한진해운은 유가상승 여파로 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4분기 865억원에서 올해 1분기 152억원으로 82.4% 급감할 것으로 추정됐다. 매출액은 2조3704억원에서 2조1892억원으로 7.6% 감소할 전망이다.
현대상선도 1분기에 유가상승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24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 전환했다. 매출액은 2.8% 감소한 1조7492억원을 거뒀다. 현대상선은 계절적 비수기로 운임은 약세를 보인 반면, 영업원가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연료비가 크게 올랐다고 실적악화 배경을 말했다.
선사들은 향후 BAF 징수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BAF는 과거 별도 부과체제에서 기본운임과 합산해 부과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정기선항로의 양대축인 북미항로와 유럽항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재 북미항로는 서안 468달러 동안 879달러(이상 FEU 기준), 유럽항로는 680달러의 BAF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총액(올인) 개념의 운임구조여서 BAF는 실제 징수가 안 되고 있는 형편이다. BAF가 올라가면 기본운임이 낮아지는 현상도 총액 운임구조에 따른 결과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긴급유가할증료(EBS) 형태로 연료비 보전을 꾀하는 선사들도 눈에 띈다. MSC는 5월15일부터 아시아발 유럽행 해상화물에 대해 20피트 컨테이너(TEU)당 200달러의 EBS를 부과할 계획이다. 국적선사 관계자는 “유가가 크게 오른 만큼 선사들이 BAF 별도 징수가 하나의 큰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 BAF를 징수하는 화주가 10%도 안되는데, 이런 체제가 계속될 경우 올해에도 휘청거리는 선사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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