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비 상승에 사업전략 차질…BAF 징수등 대책부심
●●●국제유가가 사상최고치를 향해 가파른 상승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재스민’ 혁명이 촉발시킨 중동발(發) 민주화 운동이 전 세계에 기름값 상승이란 악재를 낳고 있어 아이러니다. 고유가로 산업계가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당장 화섬 수출업계가 원료 단가 상승으로 큰 타격을 입은 데다 수출 둔화도 우려된다. 해운·물류산업도 유가 고공행진에 비상이다. 산업 특성상 기름 소비가 많은 해운·물류기업들에겐 유가 상승은 곧 비용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벙커C유 가격 2달새 100弗 이상 급등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해 쓰고 있는 두바이유 가격은 1일 기준 배럴당 106.44달러를 기록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2월21일 배럴당 100달러(100.36달러)를 넘어서면서 2008년 9월 이후 2년5개월여 만에 세 자릿수에 진입했다. 특히 지난달 24일엔 110달러(110.77달러)까지 돌파하며 시장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도 1월31일 28개월여 만에 배럴당 100달러(100.14달러)를 넘어선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가 3월1일 115.42러를 찍었다.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 되면서 이 지역에서 주로 쓰는 두바이유와 브렌트유 가격이 큰 상승 폭을 그린 것이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은 중동 지역의 정정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란 점에서 향후 흐름을 점치기 쉽지 않다. 현재 세계 원유생산량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리비아 반정부 시위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뿐 아니라 이란과 오만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어 시장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선박 연료로 쓰이는 벙커C유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항에서 판매되고 있는 벙커C유(IFO 380CST 기준) 가격은 1일 현재 t당 630달러를 기록했다. 싱가포르항 벙커C유 가격은 두바이유와 브렌트유가 고점을 기록했던 지난달 24일 664달러까지 올라간 바 있다. 지난해 12월 t당 500달러대를 넘어선 뒤 2개월만에 100달러이상 상승했다. 싱가포르항은 그나마 다른 항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부산항에서 거래되고 있는 벙커C유 가격은 1일 현재 655달러를 기록했다. 2월 말 680달러까지 올랐다가 하락한 수준이다.
국제유가의 상승에 따라 해운업계의 비용도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국내 외항해운선사들이 쓴 연료비는 총 5조5055억원으로 운항원가의 27.5%를 차지했다. 국제유가가 고점을 기록했던 2008년 5조원대를 처음으로 넘어선 뒤 2009년에도 비슷한 규모를 보였다.
한진해운의 경우 2007년까지 1조원대를 넘지 않던 연료비가 2008년 1조6700억원으로 훌쩍 늘어났으며 2009년과 2010년에도 1조3500억원 1조6600억원을 연료유 구입에 썼다. 특히 2008년엔 연평균 연료유 가격이 t당 505달러로 급등한 결과 전체 매출액(9조3558억원)의 17.8%를 연료 소비에 쓰게 됐다. 사상초유의 해운불황기였던 2009년엔 대대적인 선박계선과 항로 중단에도 불구하고 연료비가 1조원을 뛰어넘으며 수지 악화의 단초가 됐다.
지난해 들어 선박을 계선하기보다는 항로에 배선하는 대신 감속운항(슬로스티밍) 전략으로 연료유 절감에 나섰으나 역시 원가 항목 중 연료비 비중은 2008년 수준에 육박할 만큼 한진해운에 큰 부담이 됐다.한진해운은 올해 남북항로와 유럽항로에서의 노선 확대를 계획하고 있어 연료유 소비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와중에 유가 상승이 향후 영업전략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상선도 연간 연료비가 2007년 8150억원에서 2008년 1조48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으며 2009년에도 1조1300억원에 이르렀다.
선사들 BAF 대대적 인상 예고…‘분리 징수도’
해운선사들은 단기간에 이 같이 유가 수준이 크게 오르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쓸 수 있는 카드가 유가할증료(BAF) 인상 또는 도입이다. 통상적으로 선사들은 유가 인상분의 40%를 자체 흡수하고 60%를 BAF를 통해 보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항로 취항선사들은 3월 들어 전체운임에 포함돼 있던 BAF를 별도 징수하는데 혈안이다. 종전과 같이 운임에 포함돼 있다면 BAF가 오를수록 오히려 기본운임은 하락하는 식이어서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증가를 전혀 보전할 수 없는 셈이다. 선사들은 유럽항로 BAF를 20피트 컨테이너(TEU)당 575~600달러에서 600~645달러로 크게 올렸다. 한진해운은 별도로 연료보전할증료(FRC)를 추가로 부과하고 있는데, 이달 들어 TEU당 295달러에서 320달러로 인상했다.
북미항로에서도 유가연동할증료(플로팅BAF)가 크게 인상될 예정이다. 한진해운의 경우 4월1일부터 미서안과 미동안의 BAF를 100달러 150달러씩 인상할 계획이다. 현재 징수되고 있는 BAF 수준은 368달러 727달러다. 미동안 BAF의 경우 900달러에 육박하는 BAF가 부과되는 셈이다. 북미항로 취항선사들은 유가가 크게 올랐던 2008년 하반기께 플로팅BAF를 첫 도입한 뒤 분기별로 이를 적용시켜오고 있다. 호주항로 취항선사들도 이달 26일부터 BAF를 475달러에서 525달러로 50달러 인상하는 한편 총액운임에 포함돼 있던 BAF를 별도 적용하는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호주항로에선 2009년 상반기부터 BAF가 운임에 포함된 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항로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화주들의 반발이 없을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BAF를 분리 안할 수가 없다”며 “유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기 때문에 적용을 안 한다면 선사들의 채산성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BAF 적용이 쉽지 않은 항로도 있다. 근해항로가 그렇다. 한일항로의 경우 몇 년째 BAF가 TEU당 84달러로 동결돼 왔다. 유가가 크게 올랐던 지난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역협회 화주협의회와 취항선사단체인 한국근해수송협의회가 협의를 통해 BAF 수준을 결정하는데, 화주협의회가 BAF 인상에 손사래를 쳐왔던 까닭이다. 취항선사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연료비만 두 자릿수로 늘어났다”며 “고정돼 있는 BAF 인상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중항로의 경우 수출노선은 아예 BAF가 없다. 이 항로는 운임도 30~50달러 수준이어서 유가 급등이 선사들에게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게다가 부정기선업계의 경우 전용선 계약이 아닌 일반 장기운송계약(COA)의 경우 연료유 할증 합의가 없을 경우 선사가 연료비 상승분을 모두 부담해야 해 고충이 크다. STX팬오션 등 주요 벌크선사들은 화주와 계약할 때 유가할증료 조항을 명시하도록 영업담당자들에게 지침을 내린 상태다.
BAF 도입과 함께 선사들은 감속운항에도 한층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기선업계를 강타했던 감속운항 바람이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선사들은 지난해 감속운항 전략으로 선박 속도를 15~17노트까지 줄이는 수퍼슬로스티밍(고강도감속운항)을 실시했었다. 16노트(시속 약 30㎞)선의 운항 속도에서 연료비가 최대 15% 절감된다는 게 선사들의 공통적인 분석임에 비춰볼 때 선박운항을 줄이는 것은 연료비 절감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선사들은 좀 더 싼 연료유를 찾는데도 분주하다. 연료유 가격이 싼 항만으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이 대표적이다. 1일 현재 로테르담항의 연료유 가격 수준은 t당 594달러로, 부산항에 비해 60달러이상 저렴하다. 싱가포르항도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항구보다 연료유 가격이 싼 항만으로 통한다.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항 연료유 가격도 싱가포르항과 비슷한 632달러 수준이다.
택배업계 유가인상 보전 요원…‘유가할증료 도입’ 시급
항공업계도 유가 상승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연간 3300만배럴의 연료를 쓰는 대한항공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3300만달러(약 376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의 연료비 비중은 지난해 4분기 전체 영업비용(2조7088억원) 중 33.7%를 차지해, 1년 전 32.4%에서 1%포인트 이상 확대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 연간 107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항공사들은 유가할증료 도입 외에 월간 연료유 사용분의 25~30%를 헤지하는 방법으로 유가상승에 대비하고 있다. 이밖에 선박평형수 최소화, 연료유 적재 최소화 등도 연료비 절감을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유가할증료로 연료비 일부를 보전하는 선사나 항공사와 달리 유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전혀 가격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택배기업들은 유가 상승이 가장 부담스럽다. 3000~4000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택배 빅4 기업의 경우 대략 유류 가격이 ℓ당 200원 오를 경우 한달에 4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으로 따져 50억원의 비용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략 영업이익률이 5% 안팎에 머물고 있는 택배기업의 특성상 50억원의 비용 증가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택배기업 한 관계자는 “기름값이 상승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며 “유가보조금이 있다지만 2008년에 만들어진 거라 현실에 안맞는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유류할증제 도입인데, 담합 문제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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