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선 홍수 등 공급 과잉으로 유럽과 북미에 있던 대형선이 근해항로에 재배치되며 국적선사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양진흥공사는 컨테이너선 수급 상황과 중단기 전망을 담은 ‘시황 하락에 따른 컨테이너선사 대응 현황’ 보고서에서 컨테이너 운임이 급락하면서 공급 조절에 집중하고 있는 글로벌 선사들의 행보에 주목했다.
선사들은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북미와 유럽에서 운임이 떨어지자 대형선을 중·단거리 노선에 재배치하고 있다.
프랑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상위 20대 컨테이너선사들의 북미·유럽항로 선복량 비중은 지난해 6월 46%에서 올해 42%로 4%포인트(p) 떨어졌다. 지난 1년간 북미·유럽 투입 선복량은 전년 대비 41만TEU 감소한 반면, 유휴 선복은 1만TEU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해진공은 “신조선 투입까지 고려하면 최소 40만TEU 이상이 아시아역내와 중동 등의 타 항로로 전배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팬데믹 호황기에 북미항로를 강화했던 선사들은 올해 수익성 악화로 사업 비중을 축소했다. 이스라엘 짐라인은 49%에서 43%로 6%p, 대만 완하이라인은 40%에서 28%로 12%p 각각 사업 비중을 축소했다.
북미 해운시장에 처음 진출했던 소형 선사들도 운임이 급락하자 뱃머리를 다른 항로로 돌렸다. 중국 CU라인, 보야(博亞)국제해운(BAL컨테이너라인), 미국 파샤그룹, 싱가포르 트랜스파쉬핑 등이 북미시장에서 철수한 선사들이다.
궤를 같이해 선사들이 뱃머리를 돌린 중동 아시아역내 호주 등의 항로는 선복량과 선박 사이즈가 크게 늘면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됐다.
올해 6월 아시아역내와 중동에 투입된 선복량은 전년 대비 8.3% 13.4% 증가한 292만TEU 340만TEU로 각각 집계됐다. 유럽역내와 남미도 각각 16.7% 12.6% 급증한 107만TEU 349만TEU로 각각 나타났다.
선복이 크게 늘면서 운임도 급락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역내는 84%, 중동은 62%, 남미는 68%, 호주는 92% 떨어졌다.
원양항로에 투입했던 선박이 아시아역내와 중동 등 중·단거리 노선에 선박 재배치를 확대하면서 대형사와 중소 선사 간 경쟁이 불가피했다. 보고서는 “대형 선사들의 선박 재배치 확대는 아주항로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벌이고 있는 국적 컨테이너선사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급량 폭증에 신조선을 3개월에서 1년가량 연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보고서는 “조선소는 수주잔량 증가에 따른 인력 부족에 처해 있는 반면, 선사들은 공급과잉에 따른 수익성 악화 위험에 노출됐다. 이에 신조선을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사들은 선복량 조절은 쏟아지는 신조선 홍수에 속수무책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과거 2014~2015년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ILWU) 태업, 2016년 한진해운 파산, 2018년 미·중 무역 분쟁, 2020년 코로나19 발생 등의 돌발 변수는 수요 증가와 공급 감소를 동반하면서 시황 개선으로 이어졌지만 현재 절대 공급이 증가하는 시기엔 운임 방어가 어렵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中 경제 부진에 컨운임 약보합세 구현” 전망
올 한 해 공급이 수요를 크게 앞지르며 운임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2023년 교역량이 약세를 보이며 수요 증가율이 0.3%에 그친 반면, 신조선 홍수에 공급은 6.8% 늘어날 것으로 점쳤다.
대형선 인도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여름 성수기 진입에도 예상보다 부진한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 등으로 컨테이너 운임이 약보합세를 구현할 거란 설명이다.
폐선 규모도 미미해 공급과잉 우려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5월 69만TEU 규모의 신조선이 해운시장에 쏟아진 반면, 폐선은 5만7000TEU에 불과하면서 노후선 해체를 통한 공급 조절 효과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공급량이 크게 웃돌면서 선사들이 공격적으로 화물 유치를 하면 운임이 떨어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보고서는 “스위스 MSC와 프랑스 CMA CGM 등이 최근 중고선 매매를 통해 선대 확대를 지속 중인 선사들이 소석률 제고를 위해 공격적인 운임 인하에 나설 경우 경쟁 심화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선사들은 항로 포트폴리오 다변화, 비용 절감 등의 노력을 이끌어갈 전망이다.
보고서는 “수요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늘어나는 공급량을 선박 재배치, 슬로우스티밍(저속운항), 항로 조정만으로는 온전히 흡수하기 어려워 장기적으로는 계선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백홀 및 양방향 영업 강화를 통한 공컨테이너 회송비 절감, 냉동·냉장 및 특수화물 사업 확대, 노후 장비 매각 등 다양한 노력이 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국가 경제 정책 변화 등 주요 변수
해진공은 올 하반기 주요 변수로는 ▲美 ILWU 노사 협상 최종 비준 ▲파나마 가뭄에 따른 흘수 제한 ▲주요국 경제 정책 변화를 들었다.
ILWU-PMA 간 노사 협상은 13개월간의 소모전 끝에 지난달 14일 잠정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조원 투표 후 비준까지 절차가 남아있는 데다 최종 종결까지 3~4개월가량 추가 소요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변수인 파나마운하 통항은 최근 집중 호우로 추가 조치는 연기됐지만 가뭄이 지속될 경우 흘수 제한이 강화되면서 수송량 감소와 운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았다. 이 밖에 각국 은행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소비 둔화에 따른 부양책, 통화 정책 등도 교역량에 영향 미칠 요소로 꼽았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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