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유조선사들의 선원난이 확산하고 있다. 박성진 한국유조선사협회 회장(SJ탱커 대표이사)은 기자와 만나 “국적선은 정부 정책으로 한국인 선원을 반드시 태워야 하지만 이들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젊은 해기사들은 대형 선사에만 취업하려고 하고 이마저도 많은 비율이 30세를 전후해 하선한다. 현재 중소형 유조선사에 취업하는 한국인 선원의 평균 연령이 70~80대를 웃돈다. 그만큼 선사들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안전 사고 위험도 높아지는 거지.”
“한국인선원 의무승선 줄이거나 임금 지원해야”
정부는 현재 국적 외항선에 한국인 선원을 의무적으로 태우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필수선박과 지정선박 제도다.
전쟁이나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민경제에 중요한 물자와 군수물자를 수송토록 하는 제도가 필수선박이라면 지정선박은 한국인 선원 숫자를 유지하고 고용 안정을 도모하고자 도입한 제도다. 이들 선박으로 지정되면 해기사만큼은 모두 한국인 선원을 태워야 한다.
박성진 회장은 “유조선사협회 회원사 선박 40척이 지정선박인데 이들 선박은 한국인 선원 150명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인 선원을 채용하는 데 드는 높은 비용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국가필수선박과 달리 지정선박은 의무만 있고 한국인과 외국인 선원 간 임금 차액을 보전받지 못한다”며 “외국인보다 연간 1억원가량 높은 한국인 선원의 높은 임금을 중소 유조선사들이 혼자서 감내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선원노련과 해운협회 해양수산부가 15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외국인 선원 대신 한국인 해기사를 고용하는 회사에 1명당 최대 1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도 정규직 선원 채용만 대상으로 해 정작 지원이 절실한 중소 선사는 외면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해법으로 외국인 선원 채용 확대와 해외 선원 양성 기관 설립안을 제시했다. 한국인 선원을 구하지 못하는 1만t 이하의 내외항 국적 유조선에 한해 의무적으로 승선해야 하는 한국인 선원 수를 줄이고 외국인 해기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외국인 선원 제한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한국인 선원을 충분히 공급하는 환경을 만들고 지정선박에도 임금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협회와 해운조합이 주도해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동남아 국가와 협약(MOU)을 맺어 선원 양성학교를 지어야 한다. 학교에서 현지인 선원을 배출해 한국 선박에 의무적으로 승선시키도록 하면 현재의 선원 인력난이 개선될 거라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원노조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산항 예선료 환급 지난해 7월부터 적용
박 회장은 대산항 예선료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유조선사협회 회장단은 지난 17일 예선업협동조합과 2022년 7월부터 2027년 6월까지 총 5년간 대산항 예선사들로부터 오른 요율에 상응하는 지원금을 매달 1억원씩 받는 데 합의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치 지원금 12억원을 먼저 받은 뒤 오는 7월부터는 매달 1억원씩 주기적으로 환급받는 내용이다.
대산에서 유조선사와 예선업체들의 요율 갈등이 촉발된 건 4년 전이다. 예선업협동조합 대산지부는 2019년 3월 예선 배정 규정을 기존 자유계약제에서 공동배선제로 전환하면서 예선료 할인율을 35%로 통일하는 방식으로 요율 인상을 꾀했다.
그전까지 최대 60%의 할인율을 적용받던 유조선사들은 크게 반발했다. 선사들의 부담은 최대 2.5배까지 급증하는 반면 대산항 예선업체들의 매출액은 77% 이상 늘어난다고 주장하며 인상된 예선료 납부를 거부했다.
선사들이 요율 인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결성된 조직이 바로 유조선사협회다. 협회는 출범 후 4년 동안 이어진 긴 협상 끝에 드디어 예선료 분쟁을 봉합하게 됐다.
박 회장은 “예선료를 올린 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환급 기간을 소급 적용하지 않고 지난해 6월부터 총 5년간 지원금 형태로 늘어난 비용을 일부 돌려받기로 했다”며 “조만간 회장단 회의를 열어 지원금을 회원사에게 어떻게 배분할지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화주에게 유가할증료 변동을 즉시 적용하지 못하는 현행 장기운송계약(COA) 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COA는 화주와 선사가 특정 기간 동안 지정된 구간에서 화물을 운송하기로 약정한 계약이다. 계약 기간 동안엔 오른 유가를 운임에 포함하지 못해 선사들이 이를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박 회장은 “현재의 COA 제도는 계약 기간이 6개월이라면 그동안 유가가 올라서 운항 비용이 크게 늘어나더라도 이를 선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유가가 급등하면 오른 비용을 바로 운임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또 국내에 유조선 안전성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없어서 선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정유회사들은 국제정유회사해사포럼(OCIMF)에서 개발한 SIRE(Ship Inspection Report) 검사를 유조선이 의무적으로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GS칼텍스나 SK 등과 계약한 선사는 SIRE 검사에 더해 화주가 자체 실시하는 검사도 추가로 받아야 한다.
문제는 검사를 받으려면 유조선이 반드시 부두에 정박해야 함에도 화주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자가 부두를 선박 검사 장소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울산항에 있는 한 부두를 유조선 검사 장소로 지정해 놓고 있지만 선박이 몰리다보니 일정을 조율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박 회장은 “일부 화주들이 SIRE 검사와 자체 검사까지 요구해 선사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 데다 화주들이 자가 부두에선 선박 검사를 못 하게 해 선사들이 외국으로 나가서 검사를 받는다”며 “그렇다 보니 검사 비용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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