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출기업이 꼽은 물류난이 가장 극심한 지역은 미국이었고, 피해가 컸던 품목은 농수산물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유통과정에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농수산물의 경우 운임이 크게 상승해 기업들의 물류비 부담이 가중됐다.
최근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우리 기업의 대응현황’ 보고서에서 우리 수출기업 94.9%가 공급망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85.5%가 공급망 교란으로 애로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는 국내 수출기업 1094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공급망 위기는 물류난, 원자재 가격 폭등, 주요 물품 수급 차질 등 생산과 교역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생산시설 폐쇄와 지역 봉쇄로 상품의 조달·생산 과정이 단절되며 공급망 차질이 가속화되고 있다.
수출기업들이 겪고 있는 공급망 교란은 물류난(35.6%)과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익성 악화(27.8%)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급 차질은 11.8%로 높지 않았다.
인력부족이 서안항만 적체 장기화로 이어져
물류난으로 가장 큰 피해를 호소한 곳은 대(對)미국 수출기업이었다. 미국의 주요 항만인 로스앤젤레스(LA)·롱비치항 등 서안항만의 극심한 적체로 수출기업의 36.8%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수입 컨테이너의 40%를 차지하는 LA·롱비치항의 2021년 1~7월 누적 수입 컨테이너는 전년 대비 35% 증가한 600만TEU로 집계됐다. 코로나로 인한 인력 부족 등이 북미 서안항만 적체 장기화로 이어져 우리 기업들의 수출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물류난으로 가장 큰 애로를 겪은 품목은 농수산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선도가 중요한 농수산물은 물류 지연으로 품질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기업 중 절반에 달하는 43.2%가 농수산물 물류난으로 애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신선도 유지를 위해 유통 과정의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콜드체인 운송망의 운임이 일반 컨테이너 대비 약 1.5배~2배 상승해 기업의 물류비 부담이 가중됐다.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동남아시아)과 중남미 수출기업은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지역 봉쇄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베트남은 지난해 1~8월 호찌민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주민 이동을 통제하는 ‘완전 봉쇄령’을 시행, 국내외 기업 8만5000여개사가 운영을 중단하거나 폐업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기타 동남아 국가 및 중남미에서도 강도 높은 지역 봉쇄와 이동 제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국내기업들은 수출 애로로 몸살을 앓았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가 민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기업에서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28.9%) 응답률이 높은 것은 원가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시장 여건에 기인했다.
다수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원자재를 조달해 중간재 생산 후 다시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로,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판매 단가에 반영하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은 플라스틱·고무제품이 가장 심각했다.
운임지원 등 물류안정화 필요
수출기업 10곳 중 4곳은 물류차질 완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함께했다. 특히 물류 및 운임안정화 지원 응답은 중소기업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물류난에 더욱 쉽게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기업 규모가 클수록 리스크 선제 대응에 관심이 높았다.
공급망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요청사항으로는 물류 차질 완화 및 운임 지원 등 물류안정화를 응답한 기업이 39.4%로 가장 많았다. 특히 운임이 큰 폭으로 상승한 미국·유럽 수출기업에서 물류·운임 안정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신선도·품질 유지가 중요한 농수산물과, 미국·유럽 등 최근 항만 적체가 극심한 국가로 수출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빠른 물류 안정화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또한 중남미 일본 동남아 수출기업은 선제 대응 강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다음 지원 요청사항으로는 ‘조기경보 시스템 운영’ 과 ‘주요 품목 비축 확대’ 순으로 집계됐다. 조기경보 시스템운영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20.8%로 물류 안정화 지원 다음으로 높게 나타나 국내외 시장 정보의 적시 공유 수요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수출기업은 공급망 위기 타개를 위해 ‘수입선 다변화’ 및 ‘핵심 품목 비축 확대’ 순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35.9%가 공급 대체선 발굴을 계획하고 있거나 실행 중이라고 응답했으며, 주요 품목의 재고 확보 노력도 17.8%를 차지했다.
반면, 생산감축·중단예정이라는 답변이 15.3%, 대응 전략이 없다는 곳도 12.4%로 나타나 4곳 중 1곳이 공급망 교란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무역협회 박가현 수석연구원은 “최근의 공급망 위기는 국제 정세, 자원 민족주의, 기후변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데다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공급망 위기 극복과 기업의 회복탄력성 제고를 위해 정부는 물류난 등 문제 해결에 힘쓰는 한편, 상시 모니터링 강화를 통해 기업들이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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