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공동행위를 했다고 판단해 국내외 선사에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가운데 해운업계가 행정소송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 김영무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정위 전원회의 결과가 나온 뒤 약 한 달 정도 지나서 피심인들에게 의결서가 통지되는 것으로 안다”며 “선사들이 이의 제기를 할지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이의 신청을 하게 되면 행정소송은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의 신청하는 데 30일의 기간이 주어지고 공정위가 재결하는 기간은 기본 60일이지만 최대 90일까지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의 신청을 할 경우 선사들은 재결서가 나오기 전까지 과징금 납부를 유예받는다. 하지만 이의 신청을 포기하고 행정소송에 곧바로 들어가면 과징금은 의결서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내야 한다.
김 부회장은 “경쟁법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이의 신청을 하더라도 공정위의 전원회의 결과가 뒤집힌 사례는 거의 없다고 대답하더라”며 행정소송으로 직행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경쟁법 전문가들은 이의 신청은 과징금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 절차이지 해운사의 무혐의를 끌어내는 절차는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전원회의에서 내린 판단을 공정위가 재심의해서 스스로 뒤집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결국 해운업계가 이의 신청을 진행할 경우 대응 논리도 무혐의를 목표로 해 온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
해수부 신고 절차를 마쳐 합법성을 인정받은 기본운임인상(GRI)을 적용한 해를 제재 기간에서 제외시켜 전체 과징금 규모를 낮추는 식의 기술적 논리를 개발하는 게 현실적이다. 대신 최저운임(AMR) 같은 120건의 부속합의를 부당 공동행위로 규정한 공정위 판단을 일정 부분 수용해야 한다.
이 같은 전략이 추후 진행할 행정소송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카르텔일괄정리법서 해운 제외하고 20년 뒤 뒤집어
김 부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과징금 부과 결정에 맞춰 발표한 ‘공정위 심결 10대 오류’를 토대로 공정위 판단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우선 공정위는 1981년 해운기업에 경쟁제한행위등록증을 발급한 데 이어 1999년 2월 시행한 ‘공정거래법 적용이 제외되는 부당한 공동행위 정비 법률’(카르텔일괄정리법)에서 해운산업을 제외하는 등 해운 공동행위를 보장해오다 20년이 지나 이를 뒤엎는 자기모순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성토했다.
카르텔일괄정리법은 특정산업 보호·육성 등을 이유로 정부가 허용해 오던 공동행위 중 경쟁제한성이 크거나 국제기준에 비춰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공동행위를 금지한 법안이다. 이 법이 도입되면서 변호사 행정사 공인회계사 관세사 주류업 보험업 농업 해외건설업 등의 공동행위가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김 부회장은 중립위원회(운임동맹사무국)가 운임 감사를 벌여 합의를 위반한 선사에 총 6억3000만원의 벌과금을 부과한 사실을 근거로 공정위가 공동행위 탈퇴 부당 제한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도 사실을 왜곡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벌과금 부과가 동맹 탈퇴를 못하게 막는 행위가 아닌 데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1983년 발효한 ‘정기선동맹의 행동규칙에 관한 협약’에서도 동맹 회원이 부정행위를 하면 벌칙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심사보고서에 운임동맹이 가입과 탈퇴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고 공정위가 인식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공개했다. 실제로 심사보고서 상엔 운임동맹인 IADA와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를 설명하면서 조사기간 동안 회원사가 동맹을 자유롭게 가입하고 탈퇴한 사실을 서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선사 영업팀장들이 카카오톡으로 운임 공동행위가 대외적으로 알려져선 안 된다는 내용을 주고받은 점을 들어 선사가 담합의 위법성을 인지했다고 결론 내린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영업팀장들이 운임 협의 내용을 비밀에 부치려고 한 건 밖으로 알려졌을 경우 지금처럼 화주단체의 반발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걸 우려했기 때문이지 위법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란 설명이다.
김 부회장은 설사 선사 직원들이 위법하다고 생각했더라도 그게 합법적인 해운 공동행위를 불법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거 불법이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면서 행한 합법적인 행동이 불법이 될 수 없는 이치다.
김 부회장은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절차상 흠결이 해운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해운법 본연의 취지를 훼손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며 “공정위의 심결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AMR 신고를 했느냐 안했느냐는 해운 공동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지만 해운사는 이조차도 적법한 절차를 지켰다”며 “해운 공동행위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지도 않았고 화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공정위는 이를 외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스코 꼼수 물류자회사 설립 결사반대
김 부회장은 포스코가 자회사인 포스코터미날을 2자물류자회사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에도 칼날을 세웠다.
그는 “포스코는 2자물류자회사를 만들어도 절대로 해운시장에 진출 안 하고 덤핑운임도 요구 안 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수퍼갑인 포스코의 지난 행태를 보면 믿을 수가 없다”며 포스코터미날의 2자물류자회사 전환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포스코가 지난 2020년 2자물류자회사를 설립하려고 했다가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철회한 뒤 1년이 지나 포스코터미날을 2자물류 자회사로 전환하는 꼼수 전략을 들고 나왔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이 밖에 톤세제 적용 선사를 대상으로 법인세 절감분의 일정 금액을 선원복지기금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운협회 내에 기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해 기금을 조성한 뒤 한국인선원 고용을 장려하고 지정선박 운영을 지원하는 데 쓴다는 구상이다.
그는 “선사들이 톤세제로 아낀 비용을 선원 복지와 해기사 양성에 사용함으로써 톤세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고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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