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컨테이너선사에 80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해 국가적으로 큰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2018년 12월 목재수입단체의 고소를 계기로 해운사 불공정행위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는 올해 5월 동남아항로를 취항하는 컨테이너선사 23곳이 불법 담합을 했다고 판단한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채택했다. 심사보고서엔 국적선사 12곳과 외국적선사 11곳에 2003년 10월부터 2018년까지 약 15년간 동남아항로에서 벌어들인 매출액의 8.5~10% 규모로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는 의견이 담겼다.
공정위가 부당 공동행위 근거로 제시한 건 크게 ▲가입 탈퇴 자유 제한 ▲운임 신고 누락 ▲화주 협의 미준수 등 세 가지다. 심사보고서대로라면 국적선사는 최대 5600억원, 외국선사는 2400억원의 과징금을 각각 내야 한다.
컨테이너선사를 대상으로 한 가격담합 조사와 과징금 부과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운법 29조는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의 공동행위를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더욱이 목재수입업계가 고소를 취하하고 해운사 선처를 탄원했음에도 직권조사를 벌여 과징금 부과 결론을 내 원성을 샀다.
해운업계는 공정위가 부당공동행위 근거로 내세운 내용들이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와 아시아역내협의협정(IADA)이 공동행위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은 선사에게 벌과금을 부과한 조치를 해운법의 ‘가입탈퇴 제한 금지’ 규정을 어긴 근거로 판단한 건 국제협약의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정기선동맹의 행동규칙에 관한 협약’은 동맹에 참여한 회원이 부정행위를 했을 경우 벌금 같은 제제를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와 부산 인천 여수 광양 목포 등 주요 항만지역은 공정위 조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 6월 세계 3대 해양강국 도약을 목표로 출범한 ‘해양수산 관련 지식인 1000인 모임’(1000인 모임)도 해운사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화주단체인 무역협회는 공정위 조치로 오히려 화주가 수출입 물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정치권도 공정위의 부당한 과징금 부과를 비판했다. 국회 농해수위는 정기 컨테이너선사 간 공동행위를 해운법에 따라 규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고 김도읍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부산 국회의원 14명은 공정위 조치를 “지난 2017년 한진해운 파산으로 고사 직전 상태인 한국 해운산업을 완전히 질식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공정위 이슈는 국정감사에서도 큰 이슈가 됐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 10월 열린 공정위와 해수부 국감에서 과징금 부과로 한국 해운산업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 목소리로 공정위를 질타했다.
정치권은 나아가 공정위가 해운사 공동행위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 개정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지난 7월 정기선 해운사 공동행위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적시한 해운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지난 9월 말 농해수위 법안 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하루속히 결론을 내려달라는 해운업계 요구에 공정위는 신년 1월12일 세종 심판정에서 전원회의를 열기로 확정했다. 해운업계는 해운시장에선 공동행위가 대형선사에 대항해 중소선사들이 안정적으로 운항하고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는 논리로 무혐의를 받아낸다는 계획이다.
만일 단 한 푼이라도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국적선사들은 외국에서 도미노 제재를 받게 돼 경영 불능 상태에 빠지고 외국 선사와의 경쟁에서 도태될 거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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