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을 30분 보관하고 2800만원의 비용을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뜩이나 요즘 해상운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제물류주선(포워딩)업계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내 포워더인 A사는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중국에서 수입되는 8100kg짜리 항공기엔진을 국내로 수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12월11일 새벽 2시 중국동방항공 자회사인 중국화물항공에 실려 온 화물은 오전 11시36분 인천공항 위험물터미널에 입고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서정인터내셔날에 위탁해 운영하는 이 창고는 외국항공사에서 수송한 대부분의 위험물을 처리한다. 화주가 별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외국항공사가 운반한 위험물은 이 창고로 자동 반입된다.
인천공항 위험물창고 7곳 중 서정만 프리타임 없어
A사는 이날 점심시간엔 조업을 하지 않는다는 서정 측의 안내를 받고 오후 1시6분에 화물 반출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운영사가 제시한 비용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30분가량 이용한 창고 비용으로 자그마치 2795만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창고보관료 2751만원, 조업료(THC) 44만원이었다.
운영사 측에서 화물유치권을 행사하며 보관료 지불을 요구하자 A사는 화물을 빨리 빼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금액을 고스란히 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30분이란 짧은 시간에 수천만원의 보관료가 청구됐을까? 해답은 무료보관기간, 이른바 프리타임(Free Time)에서 찾을 수 있다. 프리타임은 창고 운영사가 화주에게 일정기간 무료로 화물 보관을 제공하는 제도다. 화물이 원하지 않는 창고로 임의 배정돼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걸 방지하는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공항과 항만에선 프리타임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특히 항만 야적장(CY)은 일반적으로 일주일 정도의 무료 장치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항에선 항공화물 특성상 하루 정도의 프리타임이 주어진다.
현재 인천공항에서 위험물을 취급하는 창고는 총 7곳 정도다.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직접 운영하는 창고 2곳과 아시아나에어포트 한국공항 스위스에어포트 AACT 서정인터내셔날 창고 등이다.
이 가운데 프리타임을 적용하지 않는 창고는 서정인터내셔날이 유일하다. 서정 창고는 10분을 보관하든 10시간을 보관하든 하루치 보관료를 내야 한다. 요율은 종가율 기준 0.77‰, 종량률 기준 kg당 13.20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사는 30분 동안 창고를 이용하고도 24시간 꼬박 보관한 비용을 물었다. 항공기 엔진의 가격이 18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라 할증까지 더해지면서 보관료도 훌쩍 뛰었다.
서정을 제외한 6곳의 위험물 창고는 화물이 반입되면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24시간 동안 보관료를 받지 않는다. 만약 A사가 이 화물을 다른 위험물창고에 맡겼다면 100여만원의 비용만 내면 됐다. 화물이 서정 창고에 자동 반입되면서 무려 28배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한 셈이다.
다른 창고 보관료는 달랑 ‘100만원’
상황을 알게 된 A사는 창고 운영사 측에 지불한 창고료를 일부 할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프리타임을 적용받지 못해 반시간만 보관하고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된 만큼 운영사 측에서 합리적인 비용을 책정해 주길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서정인터내셔날은 이 같은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인천공항공사에서 창고 요율을 정하고 자신들은 그 요율을 따르는 구조라는 게 그 이유였다. 서정인터내셔날 임원은 본지와 한 전화통화에서 “공항공사에서 정한 요율 그대로 창고료를 받고 있고 영업초과이익이 발생하면 공항공사에 지급한다”며 자신들은 위탁 운영사기 때문에 요율을 정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창고 소유자인 인천공항공사의 입장은 어떨까? 공사는 이 사건에서 한 발짝 물러난 모습이다. 위험물창고는 공사에서 소유한 시설물이긴 하지만 서정에서 운영 전반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창고료 분쟁은 운영사와 이용자 간에 해결할 사안이란 식이다.
공사는 지난 2015년 위험물창고를 아시아나에어포트에서 인수한 뒤 운영사로 서정인터내셔날을 선정했다. 서정은 5년간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지난해 1월 다시 재계약에 성공했다.
공사는 위험물창고 요율을 공사에서 승인하는 구조를 두고 “임대운영사의 임의 인상으로 이용자가 과다한 사용료를 부담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는 정상적인 운영 체계”라고 주장했다. 공사 관계자는 “2002년 요율 체계가 수립된 이후 지금까지 변경되지 않고 있고 창고를 이용하는 화주와 포워더에 운영사인 서정인터내셔날이 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위험물창고에 프리타임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엔 “창고 매출이 40%가량 감소해 정상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운영수익을 공항공사와 공유한다는 서정인터내셔날 주장엔 “위험물창고 매출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발생할 경우 일부를 공사에 납부하게 돼 있지만 대부분 납부금액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에 480만원(월평균 40만원)의 수익을 배당받았고 지난해는 상반기까지 이익금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창고 운영사와 창고 소유자인 인천공항공사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동안 터무니없는 비용을 지불한 물류기업의 애간장은 타들어 가고 있다. A사는 관할 관청인 국토교통부와 국회 국제물류협회 등에 인천공항 위험물터미널의 비상식적인 요율 체계를 고발하고 개선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인천공항에서 외국적 항공사를 이용하는 거의 모든 위험물 화주는 공공기관인 인천 공항공사가 소유한 서정 창고를 자동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구조”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공사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프리타임을 제공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내 수출입업체의 대외 경쟁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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