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팬데믹)으로 해운사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코로나사태가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3월 17일부터 20일까지 4일간 선주협회 회원사 74곳(컨테이너 17, 건화물 31, 유조선 19, 기타 7)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8%가 ‘코로나사태가 금융위기보다 해운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답했다. 46%가 ‘비슷하다’고 답했고 ‘적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업종별로 느끼는 영향의 강도는 차이를 보였다. 컨테이너선 부문은 59%가 코로나 영향이 금융위기를 뛰어넘는다고 답한 반면 벌크선 부문에선 32%만 같은 답을 내놨다. 유조선 부문은 42%가 코로나의 영향을 더 크게 봤다.
선사들은 코로나사태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응답자의 49%가 코로나19가 해운에 미치는 영향이 해소되는 데 3~6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는 의견도 38%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컨테이너선업계의 인식이 더 비관적이었다. 컨테이너선사의 53%가 6개월~1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3~6개월은 35%였다. 벌크선 쪽에선 58%의 기업이 3~6개월을 택했고 29%가 6개월~1년을 꼽았다. 유조선사의 경우 47%가 3~6개월, 42%가 6개월~1년을 예상했다.
또 80%에 가까운 기업들이 코로나사태가 해운업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매출과 물동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39%가 ‘나쁨’ 23%가 ‘심각’ 16%가 ‘매우 심각’을 택했다. 특히 컨테이너선사는 ‘심각’ 이상이 53%로 절반을 넘었다.
지난달 해운기업 매출 감소 폭은 1년 전에 비해 평균 27%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컨테이너선사에서 20.8%, 건화물선사에서 22.6%, 유조선사에서 29%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대다수 선사들은 필요한 지원책으로 경영자금 지원을 꼽았으며 지원이 2개월 이내에 이뤄져야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답했다.
KMI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선사들은 정부의 빠르고 강력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며 “해상직원에 상륙 불허 등의 강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어 선원 안전용품 수급 등 현실적인 도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각국항만 규제조치로 적체현상 심화
더 큰 문제는 항만들도 코로나사태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점이다. 입항이 제한되면서 선사들의 사업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선주협회가 발간한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각국의 항만관리대책’에 따르면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낸 미국은 코로나19 방역대책의 하나로 자국항만에 기항하는 외국선박에 질병이나 사망자가 있을 경우 입항 15일 전에 보건당국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외국선박 관리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미국은 선박이 14일 이내 중국을 기항했거나 중국 방문 승선자가 있을 경우 당국에 신고하고 선원들이 상륙할 수 없도록 했다. 중국인 선원 또는 중국에서 14일 이내에 출발했던 선원은 미국항만에서 교대가 금지된다. 14일 이내에 이란이나 중국에서 출발한 선박은 선원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뒤 하역작업을 하도록 했다.
중국은 각 항만마다 별도의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말레이시아 이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9개국을 입항 제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상하이항은 이들 9개국을 기항한 선박의 선원은 지속적으로 체온을 재도록 하고 있고 톈진항에선 9개국에 기항한 선박에 승선 중인 선원이 기침이나 발열이 있으면 입항을 불허하고 있다.
칭다오항은 9개국을 기항한 선박은 도착 7일 전 매일 선원 체온을 확인하고 만약에 승선 중인 선원이 기침이나 발열 시 접안을 금지하는 한편 접안 24시간 전 항만당국으로부터 접안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 허베이성과 저장성 여권 소지자와 두 지역을 14일 내 방문한 사람의 입국을 제한 중이다. 대부분의 터미널에서 본선 선원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고 선원 하선을 금지했다. 선박 입항 전엔 건강설문지를 내도록 하고 있다. 또 3월7일자로 14일 이내 우리나라 경북지역과 이란 테헤란 지역 방문자의 입국을 막았다.
베트남은 전 항구에 걸쳐 코로나19 위험국에 기항한 선박은 묘박지에서 검역을 시행한 후 입항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일체의 선원 교대나 상륙도 금지했다. 검역 과정에서 체온이 37.5°를 넘는 선원이 발견되면 묘박지에서 14일간 격리검역을 받아야 한다.
싱가포르는 최근 14일 이내에 중국을 기항했거나 방문한 승선자가 있으면 입항 24시간 전에 관련 당국에 신고토록 하는 한편 14일 이내에 우리나라 대구와 경북, 중국 전역(홍콩 마카오 포함),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페인에 체류했던 선원들의 상륙을 금지하고 있다. 선원과 승객을 대상으로 1일 1회 체온 체크를 해 38도 이상인 사람은 격리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수도 마닐라와 루손섬 봉쇄를 선언한 필리핀의 경우 북항 세관 폐쇄로 통관이 지연되고 있고 냉동컨테이너 플러그 부족으로 냉동화물 하역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외국 상선 하역은 크레인과 컨베이어 등의 기계를 이용한 작업만 가능하다. 봉쇄정책은 이달 말까지로 연장됐다.
호주 퀸즐랜드항만은 지난 14일간 중국 허베이성을 방문한 선원이 있는지, 열 감기 인후염 두통 호흡곤란 같은 코로나 감염 증상이 있는 선원이 있는지 등을 도선사 승선 2시간 전에 관제센터(VTS)에 통보하고 해당사항이 있으면 정부 승인이 날 때까지 해상이나 묘박지로 이동해 대기하도록 했다.
미국 다음으로 확진자를 많이 낸 스페인은 모든 자국 항만에서 긴급 상황 외에 외국선박의 선원교대를 불허했다. 외국선박 선원의 상륙을 막는 한편 하역인부들과의 접촉을 금지했다. 영국은 중국 선원이나 중국에서 승선한 선원의 교대를 제한했다.
선주협회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각국 항만 규제조치와 하역작업 인부들의 재택근무 등으로 항만 적체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외국항만 입항 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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