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중동 등 주요 국가에서 일본 물류시장에 진출하려는 수요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뢰와 신용을 중요시하는 일본계 물류회사들은 신생업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거래처와 물류거래를 하지 않는 폐쇄적인 영업방식을 추구하죠. 일본 포워딩시장을 공략하는 우리나라와 개발도상국 포워더들의 다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일본의 포워딩(국제물류주선)시장은 우리나라와 자주 비교된다. 포워더 수가 4000여개에 달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700여개의 업체들이 물류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영업방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 포워더들이 저렴한 물류비용을 무기로 신규 화주를 유치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오랜 거래관계와 인맥을 바탕으로 하는 고정 화주와의 장기거래가 주류를 이룬다. 제조업체의 물류를 주선하는 경우 물류업체가 협력사로서 출하·서류대행·통관 업무를 맡기 위해 공장에 상주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물류기업들이 대규모 조직으로 구성된 데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지점들이 원동력이다.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영업환경이 거래처와의 안정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 신규 포워더나 해외에 소재한 물류업체들은 일본 물류시장을 개척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지난달 일본 포워딩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ICL JAPAN 이인철 대표이사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의 18년 포워딩경력을 무기로 일본 도쿄에 사무실을 열었다. 이 대표는 한일 간 해상·항공 수출입운송 외 일본-아시아역내시장의 해상·항공운송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거라는 구상을 밝혔다. 특히 일본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 물류업체와 니치(niche)마켓으로 꼽히는 동남아시아 물류업체들의 일본 대리점을 맡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일본어로 시작된 물류인의 길
이 대표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2001년 당시 첫 직장생활을 한일 합작 포워더인 태영산구국제물류에서 시작하면서 물류인의 길을 걷게 됐다고 운을 뗐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송장(인보이스) 등 각종 문서를 일본어로 작성해야 하는 물류업이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약 5년이라는 짧고도 긴 기간 동안 포워더의 기본업무와 한일 간 해운물류시장을 파악한 그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기 위해 2007년 돌연 일본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 물류기업에 호기롭게 취업한 그였지만 일본과 한국의 업무처리방식이 큰 괴리를 보여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한다.
“2007년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 포워딩시장의 생리를 처음 접했습니다. 업무의 흐름이나 절차 등이 여러모로 달라서 처음에 이해하느라 고생이 많았죠.(웃음) 우리나라는 전산화에 힘입어 화물수출 절차가 대거 간소화됐지만, 일본은 아직도 옛것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BL(선하증권)도 직접 포워더 사무실에 방문해 코깃데(수표)로 납부하는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을 정도죠.”
한국과 일본에서의 포워딩 경력이 곳곳에 알려지자 그는 지인의 소개에 힘입어 한 국내 포워더의 일본지사를 세우는 중책을 맡게 됐다. 회사 설립 과정에서 그는 각종 행정절차와 부동산 거래에 필요한 핵심내용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당시의 오랜 노력과 시련이 그가 ICL JAPAN으로 독립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고.
“포워더를 창업할 때 행정적인 문제를 두루 해결하면서 일본 진출이 힘든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특히 부동산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일본 임대업자들은 법인의 사업분야, 대표자의 국적, 신규법인 여부 등을 고려해 공간을 내주거든요. 제아무리 많은 돈을 제시해도 통하지 않죠. 이번에 ICL JAPAN을 세울 때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외국인인 데다 신규법인이다보니 15곳 중 13곳이 입주를 거부하더라고요.”
이 대표는 “ICL JAPAN의 보금자리를 최종 확보하기까지 건물주가 허가한 후 5주의 기간이 추가로 소요됐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절차와 매뉴얼에 충실하면 가장 쉽게 사업할 수 있는 곳이 일본이다”고 평가했다.
▲ICL JAPAN 이인철 대표이사는 일본과의 수출입물류를 희망하는 국내 포워더와 동남아·중동 포워더들의 물류파트너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일노선·일본-동남아 물류시장 개척
이 대표가 추진 중인 사업모델은 한일 구간 해상·항공운송 주선업무다. 등락을 거듭하는 세계 경제상황과 별개로 한일 구간의 물동량이 그동안 꾸준했던 점에서 타 국가보다 안정적이라는 게 지난 18년간 한일 물류시장을 파고든 그의 결론이다. 이를 위해 일본 현지 로컬영업보다 국내 포워더들의 일본 파트너로 활약하는 대리점영업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미네이션(계약) 화물들은 대체로 수출자가 운송주선업체를 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과 수출입물류를 희망하는 한국 화주들의 안전한 적기운송을 위해 파트너영업을 주력할 계획입니다.”
그는 한일 구간 외에도 일본-동남아 구간의 물류시장 개척을 꿈꾸고 있다. 일본과의 교역을 희망하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주요 아세안 국가들의 수요가 상상 이상이지만 실제 일본과 물류업무를 진행하는 포워더가 극히 드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화물을 쥐락펴락하는 일본 포워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막 속의 진주’같은 동남아계 포워더와 거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을 상상 이상으로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본과 물류사업을 추진하는 동남아계 포워더들이 대부분 퇴짜를 맞는 경우가 많아요. 일본이 신뢰와 신용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다보니 기본적으로 동남아시장에 대한 불안함이 깔려있습니다. 더군다나 기존 화주와의 거래를 중시하다보니 제아무리 화물을 가져와도 받지 않는 편이죠. 최근 한국계 포워더들이 동남아에 많이 진출하는 편인데 그들의 일본파트너로 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남아시장이 기대됩니다.”
얼어붙는 한일관계에도 꿋꿋하게 나갈 것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수입절차 간소화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그는 당분간 한일 물류시장도 먹구름이 자욱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화위복’의 자세로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또 ‘꼼꼼함’으로 승부하는 일본계 포워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인 특유의 빠른 일처리로 시장 차별화에 나설 것이라는 계획을 내비쳤다. ‘꼼꼼함’과 빠르고 적극적인 화주 응대로 고품질 물류서비스를 제공해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각오다.
“한일 물류시장의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우선 2020년 7월에 개최되는 도쿄올림픽 관련 주변 국가의 물류수요를 최대한 유치할 계획입니다. 10여년 전 발발한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와는 다른 고통의 시간이 되겠지만, 저는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전진할 것입니다. 한일 물류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동남아와 중동국가와의 교역을 이끌어내 ‘세미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도약하겠습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