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기구 형태로 운영되던 한국해운연합(KSP)이 상설조직으로 전환될지 관심이다.
중앙대 국제물류학과 우수한 교수는 ‘국적선사 아시아역내항로 경쟁력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대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해 KSP를 상시 태스크포스 형태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해운연합 2기, 이른바 KSP 2.0이다.
KSP는 지난 2017년 8월 출범한 뒤 그동안 이슈가 있을 때마다 회원사 대표가 모여 안건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이 운영위원장, 흥아해운 이환구 고문이 간사로 활동했지만 별도 조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보니 항로합리화 등의 핵심 사안이 마무리된 뒤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 교수는 보고서에서 새로운 KSP는 아시아역내선사들의 싱크탱크(Think Tank) 기능을 수행하는 상설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로 합리화 등의 기존 의제를 유지하되 경쟁력 강화나 미래 대응 전략 등 개별 선사가 대응하긴 어렵지만 한국해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들을 발굴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와 선사, KSP 인식차 커
우 교수팀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선사와 정부 사이에 기존 한국해운연합, 즉 KSP 1.0을 놓고 인식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선사 측에선 부정 평가가 많았다. 민간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결정해왔던 영역을 정부가 주도하면서 자율적인 의사 결정이 제약을 받았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특히 의제가 통합 등 정부가 원하는 쪽으로 쏠렸고 정부 정책에 따르는 기업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지원이 이뤄졌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공정행위 가능성이 존재하는 데다 한국선사 간 협력에 집중하다보니 외국선사와의 협력은 제한됐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반면 국내선사끼리 벌이던 경쟁이 일시적으로 완화됐고 통합으로 중견선사의 파산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는 점은 성과로 지적됐다.
정부 측에선 KSP를 우호적으로 보는 시각이 뚜렷했다. 민간 차원에서 자구노력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한 데다 민관 협의 채널 역할을 하면서 해운재건 정책의 기틀을 다졌다는 인식이다. 해양진흥공사 설립, 지원정책 수립, 예산확보 등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는 데 지렛대 기능을 했다는 평가도 제기됐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자율적 조정기능과 노력은 부족하면서 정부지원만을 바란다는 비판도 정부 내에서 감지됐다.
연구팀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KSP 2.0의 방향을 민간 자율기구로 설정했다. 전반적인 운영 규정을 제정해 선사들이 주요 사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의제 설정도 항로합리화나 통합 등 제한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하는 내용으로 다양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략적 제휴 모델로 원양선사와 근해선사 협력, 하역요율 안정화, 환경규제 대응, 부산 북항 터미널 지분 투자, 공동배선과 컨테이너장비 공동이용, 해운디지털플랫폼 구축 등이 꼽혔다.
우 교수는 법인의 정체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사실상 통합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폐쇄적인 전략적 얼라이언스 구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해상구간에서 협력 효과가 제한적일 경우 육상물류와 연계하는 수직적 통합까지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KSP사무국 독립운영도 검토 대상
KSP 조직 구성엔 3가지 안이 제시됐다. ▲선주협회 내에 협회사무국과 운임협의체 KSP사무국을 두는 1안 ▲선주협회 내에 협회사무국과 컨테이너선사협의회(운임협의체·KSP 통합)를 두는 2안 ▲선주협회와 컨테이너선사협의회를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3안 등이다. 어떤 안이든 KSP가 상설기구로 재출범한다는 점엔 변함이 없다.
1안은 한국근해수송협의회(한일항로) 황해정기선사협의회(한중항로)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동남아항로) 등의 운임협의체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필요한 기능을 분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KSP 활동을 위한 실행 조직을 추가로 구성해야 하는 데다 KSP와 협의체 사이에서 역할이 중복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2안은 KSP 실행 조직을 추가할 필요가 없는 데다 컨테이너에 특화된 통합 협의기구를 설치해 선주협회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어 효과적이다. 반면 기존 협의체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사무국과 이원체제로 운영되는 한중항로협의체 개편도 걸림돌이다.
3안은 선주협회와 분리된 컨테이너선사 이익단체를 따로 만들어 자체 의제를 발굴하고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기구로 운영되다보니 선주협회와의 역할 분담이 모호해지고 운영비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우 교수는 또 해양수산부 해운정책과, 해양진흥공사 선주협회 KSP 대표가 참여하는 ‘해운재건 민관 협력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비공식적, 개별적으로 이뤄졌던 정부와의 소통채널을 공식적, 공개적으로 전환하자는 것.
그는 “위원회 구성으로 KSP 활동의 자율성과 정부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면서 정부지원의 대외적인 명분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향후 아시아역내항로 교역량 전망도 연구보고서에 담겼다. 한국-베트남 구간이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한중 구간도 7%대의 견실한 오름세를 보이는 반면 한일 구간은 역신장한다는 관측이다.
우 교수는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열린 최종보고회에서 발주자인 선사 측에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날 행사엔 국적선사 15곳을 비롯해 해수부 해양진흥공사 해양수산개발원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선주협회 해운협의체 등에서 참석했다.
KSP 회원사는 오는 13일 열리는 사장단 회의에서 연구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KSP는 2.0 전환이 확정되면 북항 터미널 지분 참여, 황산화물 규제에 대응한 저유황유 조달 방안 등의 사업을 곧바로 착수하는 한편 내년부터 컨테이너 장비나 서류 등의 자원 공유와 디지털플랫폼 공동구축사업을 벌여나간다는 구상이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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